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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침묵의 책임, 방관의 무게, 선택의 기억)

by dailyroutine15 2026. 4. 2.

솔직히 저는 레미제라블을 처음 봤을 때 그저 슬픈 뮤지컬 영화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40살이 넘어서, 다시 보니 이 영화가 제 과거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가 부당하게 책임을 뒤집어쓰고 떠나던 날,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괜히 나까지 불편해질까 봐 그저 모른 척했던 기억이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랐습니다.

침묵의 책임

1830년대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레미제라블은 단순히 한 남자의 구원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영화는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죄 자체가 아니라 그 죄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라는 걸 정확히 보여줍니다.

장발장(Jean Valjean)은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을 감옥에서 보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형량 자체가 아니라 형량이 늘어난 이유입니다. 처음 5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탈옥을 시도할 때마다 형량이 추가되어 결국 19년이 되었습니다. 이는 '누적 처벌 시스템(Cumulative Punishment System)'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여기서 누적 처벌 시스템이란 한 번의 잘못이 반복적인 처벌로 이어지면서 개인이 사회에 복귀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구조를 의미합니다(출처: 법무부).

저 역시 비슷한 상황을 목격했습니다. 회사에서 거래처 문제가 터졌을 때, 실제로는 여러 사람이 관련되어 있었지만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면서 한 동료에게만 책임이 씌워졌습니다. 그날 이후 회의 자리에서 그의 말은 자연스럽게 묻히기 시작했고, 점심시간에 함께 앉던 사람들도 하나둘 거리를 두었습니다. 뒤에서는 그의 성격이나 과거까지 끌어와 평가하는 말들이 돌았습니다.

나폴레옹 시대 이후 프랑스 사회는 겉으로는 혁명을 경험했지만, 실제로는 신분제와 계급 차별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공장 노동자 팡틴(Fantine)이 미혼모라는 이유로 해고당하고 거리로 내몰리는 장면은 당시 사회가 얼마나 비정했는지 보여줍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제가 함께 일하던 동료가 떠올랐습니다. 그 역시 한 번 '문제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히자 누구도 그를 고용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방관의 무게

레미제라블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장발장이 아니라 오히려 경감 자베르(Javert)입니다. 자베르는 법과 원칙을 철저히 따르는 인물로, 한 번 죄를 지은 사람은 영원히 죄인이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태도를 심리학에서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부릅니다. 확증 편향이란 자신이 가진 기존 믿음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증거는 무시하는 경향을 말합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제 경험상 이건 생각보다 흔한 일입니다. 회사에서도 한 번 실수한 사람에게는 계속 의심의 눈초리가 향합니다. "그 사람 요즘 좀 그렇지 않냐"는 말이 한 번 돌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모든 행동이 부정적으로 해석됩니다.

1832년 6월 봉기는 실제 역사적 사건입니다. 당시 프랑스는 1830년 7월 혁명 이후에도 여전히 왕정을 유지하고 있었고, 선거권은 극소수 부유층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이에 학생과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바리케이드를 쌓고 저항했지만, 시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해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이 사건을 직접 목격했고, 그 경험을 소설에 담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혁명군 리더 앙졸라(Enjolras)와 그의 동료들이 바리케이드에서 마지막까지 싸우는 장면은 비장합니다. 하지만 제가 주목한 건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창밖에서 지켜만 보던 시민들입니다. 그들은 혁명군이 흘리는 피를 보면서도 창문을 닫고 등을 돌렸습니다. 두려움 때문이었겠지만, 그 침묵이 결국 혁명을 실패로 이끌었습니다.

저 역시 그때 그 시민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동료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걸 알면서도, 제가 나섰다가 불이익을 받을까 봐 모른 척했습니다. 심지어 그가 "내가 그렇게까지 잘못한 거냐"고 물었을 때 "조금만 더 조심하지 그랬어요"라는 무책임한 말을 해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위로도, 공감도 아닌 그저 책임을 피하기 위한 말이었습니다.

주요 인물들의 선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장발장: 자신을 배신한 사람조차 용서하고 구원하려 함
  • 자베르: 법과 원칙에만 집착하다 결국 스스로를 파괴함
  • 시민들: 두려움 때문에 침묵하고 방관함

선택의 기억

영화는 1848년 2월 혁명의 성공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바리케이드 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승리를 외치는 모습은 1832년 봉기에서 희생된 이들의 피가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1848년 혁명 당시 하루 만에 1만 명 이상의 시민이 바리케이드에 모였다고 합니다(출처: 프랑스 국립기록원).

제가 이 영화를 보며 깨달은 건, 사람은 자신이 했던 행동보다 하지 않았던 선택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그 동료는 결국 회사를 떠났고, 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그 자리에 남았습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그때의 장면과 그가 했던 질문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1980년 초연 이후 40년 넘게 사랑받고 있으며, '오페라의 유령', '캣츠', '미스 사이공'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로 꼽힙니다. 영화에서는 배우들이 현장에서 직접 라이브로 노래를 불렀는데, 덕분에 감정의 진정성이 더욱 살아났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이 소설을 완성하기까지 17년이 걸렸습니다. 그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단순히 혁명의 성공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모여 역사를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역시 이제는 압니다. 제가 그때 한마디라도 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걸. "그때 한마디 해줄걸"이라는 후회가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습니다.

레미제라블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낼 것인가, 아니면 침묵으로 방관할 것인가. 저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죄 자체가 아니라 그 죄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며, 그 시선을 만드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선택은 예상보다 훨씬 오래, 우리 안에 남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2SnRFI4e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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