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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 리스트 (인간의 선택, 역사적 책임, 변화의 가능성)

by dailyroutine15 2026. 3. 22.

영웅은 처음부터 영웅이었을까요? 오스카 쉰들러는 전쟁 초기 나치 당원이자 기회주의자였습니다. 유대인의 재산을 헐값에 빼앗고, 강제 노동으로 돈을 벌던 사업가였죠. 그런 그가 어떻게 1,200명의 생명을 구한 인물이 되었을까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며 학창 시절 따돌림당하던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지 못했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용기 없이 외면했던 순간들이 쉰들러의 초반 모습과 겹쳐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변화했듯, 저 역시 결국 행동했고 그 작은 선택이 상황을 바꿨던 경험이 있습니다.

인간의 선택

1939년 9월,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으로 약 270만 명의 유대계 폴란드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시기 크라쿠프로 이주한 오스카 쉬들러는 전형적인 전쟁 수혜자였습니다. 그는 유대인 소유 법랑 공장을 헐값에 인수하고, 유대인 투자자들의 재산을 사실상 탈취하다시피 한 불공정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여기서 '법랑(琺瑯)'이란 금속 표면에 유리질 코팅을 입힌 제품을 의미하며, 당시 군수용 냄비 제조에 널리 쓰였습니다. 쉰들러의 공장은 독일군 납품 계약까지 따내며 승승장구했죠.

그런데 쉰들러가 변한 결정적 순간이 있었습니다. 1943년 3월, 크라쿠프 게토(Ghetto) 청산 작전 때였습니다. 게토란 나치가 유대인을 강제로 격리 수용한 구역을 말합니다.쉰들러는 언덕 위에서 빨간 코트를 입은 어린 소녀가 학살 속을 헤매다 결국 시신 더미에서 발견되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며 학교에서 친구가 괴롭힘당하는 걸 보고도 모른 척했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엔 '괜히 나까지 피해 볼까 봐' 외면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불편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쉰들러 역시 그 순간 이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아몬 괴트 수용소장을 술과 뇌물로 매수하며 유대인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장은 더 이상 이윤을 내는 곳이 아니라 생명을 구하는 피난처가 되었죠. 일각에서는 쉰들러를 미화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저는 그의 변화 자체가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영웅이 아니어도, 상황 속에서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요.

역사적 책임

홀로코스트(Holocaust)는 나치 독일이 조직적으로 유대인을 학살한 사건으로, 약 600만 명이 희생되었습니다.여기서 홀로코스트란 그리스어로 '완전히 태우다'는 뜻으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집단 학살을 상징하는 용어입니다. 영화는 이 참상을 흑백 화면으로 담담하게 보여주며, 빨간 코트 소녀만 유일하게 컬러로 처리해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했습니다.

쉰들러는 1944년 말, 전쟁이 끝나가자 유대인 노동자 1,200명의 명단을 작성했습니다. 일명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입니다. 그는 이들을 체코 브륀네츠로 옮겨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구해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쓴 돈은 당시 화폐 기준 105만 6천 달러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150억 원에 달합니다. 공장 이익금 전액과 개인 재산을 모두 쏟아부은 셈이죠.

저는 이 부분에서 역사적 책임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쉰들러는 나치 당원이었고 초기엔 유대인을 착취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행동으로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물론 수백만 명이 희생된 비극 속에서 1,200명을 구한 것이 전체 역사를 상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선택은 '방관자'와 '행동하는 자'의 차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제가 결국 따돌림당하던 친구에게 먼저 말을 걸고 같이 다니기 시작했을 때, 다른 친구들도 하나둘씩 그 친구에게 다가갔던 것처럼요.

쉰들러의 행동이 모든 걸 해결한 건 아니지만, 최소한 1,200명에게는 살아갈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것이 개인이 역사 앞에서 질 수 있는 책임의 한 형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변화의 가능성

전쟁이 끝난 후 쉰들러는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연합군 입장에서 그는 나치 당원이자 전범 용의자였고, 아르헨티나와 독일에서 시도한 사업들은 모두 실패했습니다. 1963년 그는 파산을 선언했고, 1974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를 기억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쉰들러 유대인들(Schindlerjuden)'이라 불리는 생존자들과 그 후손들이었죠.

쉰들러는 나치 당원 중 유일하게 예루살렘 시온산에 묻혔습니다. 시온산은 유대교에서 다윗 왕의 묘가 있고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한 곳으로, 유대인들에게는 정신적 고향과 같은 성지입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그가 유대인들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인물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쉰들러는 전쟁이 끝나기 직전 이렇게 말합니다. "이 차를 팔았으면 열 명을 더 구할 수 있었는데. 이 배지를 팔았으면 두 명을 더 구할 수 있었는데." 저는 이 장면을 보며 제가 친구를 도왔던 경험과 달리, 더 일찍 행동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떠올랐습니다. 물론 쉰들러처럼 수백 명의 생명을 구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작은 행동이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이라고 느꼈습니다.

변화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쉰들러는 처음엔 이기적인 사업가였지만, 상황을 목격하고 스스로 변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저는 거창한 영웅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중요한 건 상황 속에서 외면하지 않고 행동하는 용기라는 것이죠.

쉰들러 리스트는 단순한 전쟁 영화가 아닙니다. 인간의 양심과 선택, 그리고 변화 가능성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입니다. 물론 한 사람의 영웅담에 초점을 맞추면서 수백만 희생자의 고통이 상대적으로 축소될 수 있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힘은 관객에게 "나라면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데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망설이지 않고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완벽한 영웅은 아니어도, 최소한 외면하지 않는 사람으로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PUCHyaSDJ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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