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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동화 가위손 (순수함, 타자화, 평범한 잔인함)

by dailyroutine15 2026. 3. 31.

제가 열 살 때 처음 본 가위손은 그저 아름다운 동화였습니다. 에드워드가 얼음을 깎아 눈을 만들어내는 장면이 환상적으로 보였고, 마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모습이 부러웠죠. 하지만 20년이 지나 다시 본 이 영화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이건 단순한 슬픈 동화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집단심리를 조용하게 해부한 작품이었습니다.

순수함이 상품이 되는 순간

에드워드는 과학자가 만든 인조인간으로, 인간의 손을 받기 직전 창조자가 사망하면서 가위손을 가진 채 홀로 남게 됩니다. 여기서 '미완성 존재'라는 설정은 단순한 판타지 소재가 아닙니다. 이는 사회학에서 말하는 '타자화(Othering)'의 상징입니다. 타자화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우리'와 다른 '그들'로 구분하여 배제하는 사회적 과정을 의미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 전학 온 한 친구가 생각납니다. 처음 일주일은 모두가 신기해하며 다가갔지만, '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점차 거리를 뒀죠. 저 역시 그 무리에 속했습니다. 에드워드가 마을에 처음 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정확히 그랬습니다.

처음 마을 사람들은 에드워드의 가위손 기술에 환호했습니다. 정원 조형, 애완견 미용, 헤어디자인까지 그의 재능은 순식간에 마을의 화제가 됐죠. 하지만 이때 사람들이 좋아한 건 에드워드라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제공하는 '서비스'였습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마을 부인들이 에드워드를 대하는 태도가 명확합니다:

  • 정원 손질이 필요할 때만 찾아옴
  • 머리를 예쁘게 만들어주면 황홀해하지만 그의 외로움에는 무관심
  • TV 출연으로 유명해지자 사업 아이템으로만 바라봄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인데, 대학 시절 디자인을 잘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과제 시즌만 되면 평소 말도 안 하던 사람들이 몰려들었죠. 그 친구는 웃으며 도와줬지만, 술자리에서 "나는 포토샵이 아니라 사람인데"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타자화 과정: 환대에서 배척까지

에드워드에 대한 마을의 태도는 한 가지 사건을 계기로 180도 바뀝니다. 킨의 남자친구 짐이 에드워드를 이용해 절도를 시도했고, 에드워드만 경찰에 잡힌 것이죠. 이때부터 '유용한 이방인'은 '위험한 타자'로 재규정됩니다.

이는 사회심리학의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기본적 귀인 오류란 타인의 행동을 판단할 때 상황적 요인보다 개인의 성격이나 본성 탓으로 돌리는 인지적 편향을 말합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마을 사람들은 에드워드가 속은 것인지, 왜 그런 상황에 처했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역시 저런 괴물은 믿을 수 없어"라는 결론으로 바로 점프했죠.

솔직히 이 장면을 보면서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초등학교 때 그 전학생 친구가 어느 날 싸움에 휘말렸을 때, 저는 "원래 좀 이상하더라"는 말에 동조했던 기억이 납니다. 상황을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죠.

영화에서 집단 배척은 체계적으로 진행됩니다:

  1. 경찰 조사 이후 "범죄자"로 낙인
  2. 마을 부인 조이스의 성추행 거짓 증언
  3.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집단적 냉대
  4. 최종적으로 폭력을 동반한 마녀사냥

이 과정은 르네 지라르가 말한 '희생양 메커니즘(Scapegoat Mechanism)'의 교과서적 사례입니다. 희생양 메커니즘이란 공동체의 갈등과 불안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전가하여 해소하려는 집단심리를 의미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루하고 억압된 일상의 불만을 에드워드라는 '안전한 타자'에게 쏟아부은 것입니다.

평범한 잔인함: 방관자의 죄

가장 씁쓸한 건 이 모든 과정에서 '악당'이 따로 없다는 점입니다. 짐은 전형적인 악역이지만, 나머지 마을 사람들은 그저 평범했습니다. 적극적으로 해를 끼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에드워드를 지키지도 않았죠.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거대한 악이 특별히 사악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무사유와 무관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가위손은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포착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상황은 학교, 직장 어디서나 반복됩니다. 누군가 부당하게 몰릴 때 대부분은 침묵합니다. "내가 나서봤자 달라질 게 없어", "나까지 같이 찍히면 어떡해" 같은 합리화로 자신을 보호하죠. 저도 그랬고,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한 번쯤은 그랬을 겁니다.

영화의 마지막, 킴만이 유일하게 에드워드 편에 섭니다. 하지만 그녀조차 결국 그를 성으로 돌려보냅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함께할 수 없다는 모순. 이는 개인의 양심과 사회적 압력 사이의 갈등을 보여줍니다. 킴은 에드워드를 이해하지만, 그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회 구조까지는 바꿀 수 없었던 것입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전년 대비 23% 증가했습니다(출처: 고용노동부). 숫자로 보면 문제가 심각해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참고 넘어가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가위손 같은 이야기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입니다.

팀 버튼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에드워드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단순히 그의 재능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불편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 그 자체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솔직히 저도 자신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 제 안의 배타성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으니, 다시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이번엔 에드워드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표정을, 그리고 그 속에 비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시면서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voD30Bzw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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