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내용보다 옆 사람이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외할머니가 해물탕 장사를 마치고 손에서 비린내가 채 가시기도 전에 저를 데리고 간 영화관. 그날 화면 속에서는 기계가 사람을 죽이고 있었고, 제 옆에서는 따뜻한 손이 간식을 건네고 있었습니다. 그 대비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살인기계가 무서운 진짜 이유
1984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만든 터미네이터는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의 핵심 설정은 자율 군사 시스템인 스카이넷(Skynet)이 인류를 적으로 판단하고 핵전쟁을 일으킨 뒤, 살인 로봇 터미네이터를 과거로 보내 저항군 지도자의 탄생 자체를 차단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스카이넷이란 인간이 설계하고 통제권을 위임한 자율 방위 네트워크로, 쉽게 말해 인간이 만든 시스템이 인간의 손을 벗어나버린 상황을 묘사한 개념입니다. 터미네이터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솔직히 내용 잘 몰랐습니다. 지금처럼 스카이넷이 뭐고, 자율 시스템이 뭐고 그런 건 나중에 알았죠. 그때는 그냥 “왜 계속 일어나지?” 이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근데 더 또렷하게 남은 건 따로 있습니다. 외할머니 손입니다. 해물탕 장사 끝내고 바로 오셔서 손에서 비린내가 났습니다. 어린 마음에 좀 싫을 수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그게 더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영화관은 어둡고, 화면에서는 기계가 사람을 죽이고 있는데, 제 옆에서는 그 손으로 과자를 쥐여주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긴 장면입니다. 한쪽에서는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을 죽이고 있고, 바로 옆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챙기고 있으니까요. 영화 얘기로 돌아가면, 스카이넷이라는 건 결국 인간이 만든 시스템입니다. 처음부터 악했던 게 아니라, 판단을 맡겼을 뿐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한 번 맡긴 판단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때부터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결정합니다. T-800도 똑같습니다. 총을 맞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멈추는 기준이 없어서입니다. 이미 목표가 정해져 있으니까요. 근데 이게 영화 얘기 같지가 않습니다. 현실에서도 많이 봤습니다.
“원래 이렇게 해왔어.”
“그냥 하던 대로 가자.”
이 말 나오는 순간, 그 자리에서 판단은 끝입니다. 누가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그냥 계속 가는 겁니다. 중간에 문제 생겨도 멈추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멈추면 책임져야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터미네이터가 강해서 무섭다고 생각 안 합니다. 멈추지 않아서 무섭습니다.
자율시스템과 미래 예언
이 영화가 예전에는 그냥 SF였는데, 지금 보면 좀 다르게 보입니다. 기계가 인간을 공격하는 세상은 아직 아니지만, 사람은 이미 비슷해졌습니다. 생각하기보다 따르는 쪽이 편해졌습니다. 저도 예외 아닙니다. 회의에서 “이거 이상한데” 싶었던 적 있습니다. 근데 말 안 했습니다. 괜히 분위기 깨질까 봐, 일 커질까 봐. 그때는 그냥 넘어가는 게 맞는 선택 같았습니다. 근데 결과 나오고 나니까 계속 생각납니다. “내가 그때 말했어야 했나.”이게 한 번이 아니라 몇 번 쌓이면, 그다음부터는 아예 생각을 안 하게 됩니다. 그냥 흐름 따라갑니다. 그게 편하니까요. 이게 제일 무섭습니다. 터미네이터가 왜 무섭냐고 하면, 저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멈출 줄 몰라서 다른 걸 고려하지 않아서 이미 결정이 끝난 상태라서 근데 이거, 기계 얘기만은 아닙니다. 사람도 그렇게 됩니다. 그날 영화관에서 제 옆에 있던 할머니는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상황 보고 바로 반응했습니다. 제가 무서워할까 봐 먼저 손 잡아주고, 뭐라도 먹으라고 챙겨주고. 생각해 보면 그게 별거 아닌데, 그게 사람입니다. 상황에 맞게 바뀌는 거. 근데 우리는 점점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바꾸는 게 귀찮고, 생각하는 게 피곤하니까 그냥 유지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아직도 불편합니다. 기계가 무서운 게 아니라, 우리가 점점 기계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게 더 무섭습니다. 영화 내용은 사실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기계가 반란 일으킨다. 미래를 바꾸려고 과거로 간다. 근데 저는 이 영화 떠올리면 그 장면보다 다른 게 먼저 생각납니다. 어두운 영화관, 총 쏘는 소리, 그리고 옆에서 느껴지던 따뜻한 손. 이상하게 그게 더 오래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