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죽은 사람을 위해 살아 있는 사람이 목숨을 다시 거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영화 히말라야는 엄홍길 대장의 실화를 바탕으로, 조난당한 동료를 찾으러 히말라야에 다시 오르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보고 나서 감동보다 불편함이 먼저 왔는데, 그 불편함이 오히려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의리라는 말이 무겁게 느껴진 이유
영화 안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감정적 코드가 바로 "의리"입니다. 같이 올라왔으면 같이 내려가야 한다는 대사가 핵심입니다. 보는 순간 눈물이 터졌는데, 동시에 마음 한편이 불편했습니다. 의리(義理)란 사람 사이의 도리와 신의를 뜻하는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네가 힘들 때 내가 간다"는 감정적 약속에 가깝습니다. 근데 그 약속이 실제 고산 등반처럼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도 유효한지, 저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품질관리 업무를 하면서도 비슷한 순간이 있습니다. 이미 라인을 벗어난 불량품을 붙잡고 추가 자원을 투입해야 할지, 아니면 손실을 확정하고 다음 공정을 지켜야 할지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감정으로만 움직이면 두 번째 손해가 생깁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한 번 더 잡아보자는 말은 쉽게 나오지만, 그 뒤에 들어가는 시간과 인력, 그리고 다른 공정에 미치는 영향까지 생각하면 그 선택이 항상 “의리 있는 결정”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이런 말이 더 자주 나옵니다. “여기서 끊자. 더 가면 다 죽는다.”이 말은 냉정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걸 지키기 위한 선택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반대로 갑니다. 끝까지 가는 선택을 가장 올바른 선택처럼 보여줍니다. 그래서 감동은 오는데, 동시에 그 감정이 현실에서 얼마나 지속 가능한지 계속 의문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단순한 신파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엄홍길 대장의 행동이 충동이 아니라 체계적인 판단 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8,000m급 고산에서의 등반은 고도순응(High Altitude Acclimatization) 과정 없이는 시도조차 불가능합니다. 고도순응이란 인체가 저산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혈중 적혈구 농도를 높이고 호흡량을 늘리는 생리적 과정을 말합니다. 영화 속 엄 대장은 그 위험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선택합니다. 그 선택이 무모함이 아닌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그래서 더 불편합니다. 무지해서 한 선택이 아니라, 알면서도 한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리더십이 멋있으면 따라 할 수 있는가
엄홍길 대장의 리더십 방식에 대해서는 "저렇게 하면 된다"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복잡하게 봅니다. 영화에서 엄 대장이 박무택이라는 인물을 팀에 받아들이는 과정이 나옵니다. 능력이 있어도 기본이 안 된 사람은 자르고, 무릎까지 꿇으며 간청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줍니다. 감정의 진정성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방식입니다. 이걸 보고 "저게 진짜 리더십"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실제 조직에서는 어떨까요? 고산 원정대처럼 소수 정예가 목숨을 공유하는 구조가 아닌, 수십 명이 분업화된 공정을 돌리는 환경에서 감정 기반 의사결정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리스크 매니지먼트(Risk Management), 즉 불확실한 상황에서 손실 가능성을 사전에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이 빠진 리더십은 팀 전체를 흔들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실제로 더 자주 보는 건 이런 모습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말을 하는 사람보다, 어디까지 책임지고 어디서 넘길지 정확히 구분하는 사람이 더 오래갑니다. 저도 여러 번 겪었습니다. 초기에 강하게 밀어붙여서 해결하려던 사람이 오히려 상황을 더 키우고, 중간에 정리하고 방향을 바꾼 사람이 결국 수습하는 경우를요. 그래서 저는 리더십을 감정의 크기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손실을 어디서 끊을 줄 아는지, 그 판단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리더십은 분명히 울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유일한 정답이라고 말하는 순간, 다른 선택은 모두 틀린 선택이 됩니다. 그리고 실제 조직에서는 그런 사고방식이 오히려 위험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지점이 개인적으로 가장 불편했습니다.
책임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이 영화가 진짜로 불편하게 만드는 부분은 여기입니다. 끝까지 책임지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되는 구조입니다. 영화 속에서 등반 도중 하산을 택한 대원들은 어딘가 나약하게 그려집니다. 반면 다시 산을 오르는 엄 대장은 영웅처럼 비칩니다. 이 구도가 관객에게 무언의 압박을 줍니다. "당신이라면 어디까지 책임집니까?"라고. 저는 품질관리 업무를 하면서 책임의 경계를 매일 고민합니다. 불량이 발생했을 때, 어디까지가 제 책임이고 어디서부터가 공정 설계의 문제인지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일의 핵심입니다. 공정능력지수(Cpk)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Cpk란 생산 공정이 설계 기준 내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제품을 만들어내는지를 수치로 나타낸 지표입니다. 이 수치가 낮으면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고쳐야 합니다. 근데 현실은 다릅니다. 시스템 문제인데도 결국 마지막에 잡은 사람이 책임을 떠안는 경우가 많습니다.(검사자가 못 잡았다, 작업자가 실수했다, 마지막 공정이 문제다. 이렇게 정리됩니다.)
이게 편하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을 고치는 건 시간이 걸리고, 사람 하나 책임 묻는 건 빠르니까요. 영화를 보면서 이 구조가 겹쳐 보였습니다.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 영웅이 되는 구조. 근데 그게 반복되면 어떻게 되냐면, 결국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질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책임지는 게 맞는가”가 아니라,“어디까지 책임지는 게 맞는가”이 차이가 현실에서는 굉장히 큽니다. 불량을 줄이듯 제 무심함도 조금씩 줄여보고 싶습니다. 이 영화는 감동을 주는 영화라기보다 기준을 건드리는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