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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통화하다 "나중에 이야기할게." 하고 급하게 끊은 적 있으신가요? 저도 그런 날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바빠서 그랬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상하게 그 짧은 말들이 가장 오래 남습니다. 2025년 개봉작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는 엄마를 잃은 고등학생 인형과 냉철한 예술단 감독 설라가 얽히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힐링 성장물입니다. 화려한 연출보다 일상의 온도가 더 오래 남는 영화였습니다.
마지막 후회보다 더 무거운 것 — 미루는 습관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은 인형이 엄마를 잃는 순간이 아닙니다. 공연 직전, 코슈즈를 챙겨 달라는 말을 흘려들은 엄마에게 "항상 나보다 자기 일이 더 중요하니까."라고 쏘아붙이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그 짧은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인형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른 채 무대 위에서 웃고 있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장면을 실제로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응급수술을 받던 시기, 저는 병원과 회사를 오갔습니다. 마음은 병실에 있는데 거래처 전화는 계속 울렸고, 품질 클레임 때문에 거래처와 통화하던 날이었습니다. 퇴근하자마자 어머니가 "밥 먹었니?"라고 물으셨는데 저는 "지금 너무 피곤하니까 조금 있다 얘기해요."라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몇 시간 뒤에는 아무 일도 아닌 대화였지만, 이상하게 그런 순간들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영화를 보며 동의하지 못한 부분이 하나 있었습니다. 영화는 마지막 한마디를 평생의 후회처럼 그려내지만, 현실의 부모 자식 관계는 한 번의 말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심리학의 애착이론에서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한 번의 말보다 오랜 시간 반복된 경험으로 형성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마지막 말 한마디보다 사과를 계속 미루는 습관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오히려 문제는 "미안해"라는 말을 계속 미루는 습관에 있습니다. 짜증을 낸 것 자체보다, 낸 뒤에도 그냥 넘어가는 시간이 쌓일수록 나중에 훨씬 크게 남는다는 걸 제 경험상 분명히 느꼈습니다.
인형이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평소에 조금 더 자주 "아까는 미안했어요."라고 말했다면 그 마지막 통화가 그토록 무거운 후회로 남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가 전하는 진짜 메시지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 말 한마디가 관계의 전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 하지만 사과를 미루는 습관이 쌓이면 후회는 훨씬 커진다
- 짜증을 낸 뒤 "아까는 미안했어요."라고 먼저 말하는 것이 관계를 지탱하는 작은 힘이 된다
가족 갈등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 나리라는 거울
영화에서 나리는 처음에는 그냥 못된 아이처럼 보입니다. 돈 없는 인형을 공개적으로 깎아내리고, 친구들 앞에서 우위를 점하려 하고, 대화가 불리해지면 먼저 상처를 줍니다. 그런데 나리가 혼자 있는 장면들을 보면 조금 다른 그림이 보입니다. 먹고 토하는 행동을 숨기고, 센터 자리를 잃을까 봐 불안해하고, 강해 보이려 할수록 오히려 더 취약한 내면이 드러납니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 — 불안이나 두려움을 직접 인식하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심리적 보호 반응입니다 —라고 부릅니다. 30대 이후 직장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나리 같은 사람을 자주 만납니다. 사소한 보고에도 날카롭게 반응하는 상사, 후배를 몰아붙이는 선배, 성과 발표 때마다 예민해지는 동료. 저도 예전에는 성격이 나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래 지켜보니 그 공격성 뒤에는 대부분 자리 하나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숨어 있었습니다.
물론 상처를 준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갈등의 원인을 단순히 "저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만 정리하면 관계는 더 좁아집니다. 가족 간의 갈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등 해결 연구(Conflict Resolution Research)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패턴이 있습니다. 여기서 갈등 해결 연구란 심리학·가족치료 분야에서 대인 갈등의 원인과 해소 방식을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연구 영역입니다. 이 연구들에 따르면, 건강한 가족은 갈등이 없는 가족이 아니라 갈등 후에 다시 말을 거는 가족입니다(출처: APA, Relationship Conflict).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부모님과 언성을 높이고 방문을 세게 닫은 날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밥을 차려 주셨습니다. 그때는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것은 항상 부모님 쪽이었습니다. 영화 속 인형과 나리의 관계도 처음에는 경쟁자에 가까웠지만, 서로의 불안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결국 진짜 친구로 가는 길목에 섭니다. 나리라는 인물은 인형의 적이 아니라 인형이 들여다봐야 할 거울에 가깝습니다. 두렵기 때문에 강하게 굴고, 무너지기 싫어서 먼저 공격하는 모습은 사실 누구에게나 조금씩 있는 감정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부분에서 저는 영화와 조금 다른 생각도 들었습니다. 영화는 나리의 상처를 이해하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상처가 있다고 해서 상대를 괴롭힌 행동까지 쉽게 넘어가는 분위기는 다소 아쉬웠습니다. 현실에서는 불안이 타인에게 상처를 준 이유가 될 수는 있어도 면죄부가 되지는 않습니다. 직장에서도 "원래 성격이 예민해서 그래."라는 말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타인을 함부로 대할 권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저는 영화가 나리의 성장뿐 아니라 '사과하고 책임지는 과정'까지 조금 더 보여줬다면 인물의 변화가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는 어떤 장르의 영화인가요?
A. 2025년 개봉한 한국 힐링 성장 영화입니다. 엄마를 잃고 홀로 남겨진 고등학생 인형이 예술단 감독 설라와 얽히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청소년 성장물이지만 가족 관계와 일상의 상실을 다뤄 30~40대 관객에게도 깊이 와닿는 작품입니다.
Q. 영화에서 나리 캐릭터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뭔가요?
A. 나리는 예술단의 에이스이자 센터로서 자신의 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공격적인 태도로 감추는 인물입니다. 심리학적으로는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실은 가장 두려운 사람이라는 점에서, 직장이나 학교에서 흔히 마주치는 인물 유형과 겹쳐 보입니다.
Q. 부모님과 마지막 통화에서 짜증냈던 기억,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A. 한 번의 말이 수십 년의 관계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애착 이론 연구에서도 안정적인 관계는 반복된 상호작용으로 쌓이는 것이지 단 한 순간으로 무너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억을 평생의 죄책감으로 안고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능한 사람에게 "아까는 미안했어요."라고 먼저 말하는 습관을 만드는 것입니다.
Q. 영화 속 전통 예술 공연 장면은 실제 한국 전통 무용인가요?
A. 네, 영화에는 북춤·부채춤·칼춤 등 한국 전통 무용 레퍼토리가 실제 공연 형태로 등장합니다. 서울제 예술단이라는 극 중 단체를 중심으로 외국인 관객 앞에 한국 전통 예술을 선보이는 설정이 배경이 됩니다. 공연 장면의 완성도가 높아 전통 무용에 관심 있는 분들께도 볼거리가 됩니다.
결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목이 가장 오래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20대에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단순한 위로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정말 괜찮아서 하는 말이 아니라, 괜찮지 않아도 내일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도 요즘은 스스로에게 그 말을 자주 합니다. 부모님 건강도, 회사 일도, 미래도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아침이 오면 다시 출근하고, 저녁이면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평범한 하루를 반복하는 것 자체가 어른들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청춘 성장물이 아니라, 책임을 안고 살아가는 어른들에게도 깊이 닿는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부모를 잃은 인영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자신의 가족과 일상을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과 갈등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 번도 짜증 내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라도 먼저 "아까는 미안했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후회는 마지막 통화가 아니라, 오늘 미루는 사과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부모님께 마지막으로 안부 전화를 드린 게 언제였는지 잠시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품을, 영화를 보는 두 시간이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난 뒤의 하루가 조금 달라질 수 있는 작품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