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교 때 누나가 매일 아침 저를 학교에 데려다줬습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누나도 학생이었고, 저를 데려다주는 시간만큼 자기 아침을 포기하고 있었던 겁니다. 형제자매란 관계는 왜 이렇게 나중에야 비로소 그 무게가 느껴지는 걸까요.
희생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것들
초등학교 때 누나는 매일 아침 저를 학교에 데려다줬습니다. 그때는 그게 당연했습니다. 어린아이에게는 누군가가 챙겨주는 일이 특별하지 않습니다. 밥이 차려져 있는 것도 당연하고, 깨워주는 것도 당연하고, 학교에 데려다주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보니 그 당연함이 사실은 누군가의 희생 위에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비 오는 날이면 누나는 항상 우산을 제 쪽으로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를 덜 맞았고, 대신 누나 어깨는 더 젖었습니다.
겨울에는 제 목도리를 다시 묶어주고 장갑을 챙겨줬습니다. 저는 그냥 귀찮아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누나는 늘 제 뒤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때 사랑보다 보호를 먼저 받았습니다. 그리고 보호받는 사람은 대부분 그것을 사랑으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직접 외할머니를 돌보게 된 지금에서야 알겠습니다. 누군가를 챙기는 건 생각보다 훨씬 피곤한 일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누군가를 먼저 생각해야 하고, 내 계획보다 상대의 상황을 먼저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합니다. 우리 사회는 첫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던 건 아닐까.
"누나니까.""형이니까.""장녀니까."이 말은 너무 쉽게 사용됩니다.
저는 누나의 사랑에 감사하지만, 동시에 그 사랑을 의무처럼 만들었던 문화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누나는 부모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부모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고마움과 미안함이 동시에 남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싶은 게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장녀·장남에게 이타적 행동(prosocial behavior)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타적 행동이란 자신의 이익보다 타인의 이익을 우선하는 행동으로, 심리학적으로는 자발성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첫째니까 양보해라", "누나니까 챙겨라"는 말은 그 자발성을 앗아갑니다. 누나가 저를 챙긴 건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게 처음부터 의무였던 건 아닙니다.
누나가 저에게 해준 것들을 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매일 아침 학교 등교 동행 (누나도 학생이던 시절)
- 부족한 용돈을 별말 없이 쥐여준 직장 초년생 시절
- 싸우고 연락이 끊겼을 때도 결국 먼저 안부를 물어온 것
이 목록을 보면 사랑이라는 단어가 생각납니다. 하지만 그게 사랑이라는 사실을 제가 깨달은 건 한참 뒤였습니다.
감사를 몰랐던 시간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누나는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늘 돈이 부족한 학생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고 싶었고, 게임도 하고 싶었고, 사고 싶은 것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누나는 말없이 용돈을 쥐여줬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당시 저는 누나 형편보다 제 주머니 사정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오늘은 얼마를 줄까?"그게 제 관심사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받는 사람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문제는 그 당연함이 너무 오래간다는 것입니다. 직장을 다니고 월급을 받아보니 알게 됐습니다. 돈은 숫자가 아니라 시간이라는 것을요.
몇 만 원 속에는 야근한 저녁이 있고, 참았던 소비가 있고, 누군가를 위해 포기한 선택이 들어 있습니다. 그걸 알고 나니 누나가 건네주던 돈이 전혀 다르게 보였습니다. 요즘은 "각자도생"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저도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
결국 자신의 삶은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관계를 손익으로 계산하는 분위기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손해를 알면서도 챙겨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유지되는 것 아닐까요. 누나는 저에게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친구라는 유대
나이가 들수록 친구는 줄어듭니다. 직장 동료는 회사를 떠나면 멀어지고, 학창 시절 친구들도 각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저 역시 예전처럼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 못합니다.
외할머니를 돌봐야 하고 부모님도 챙겨야 해서 밤 9시가 되면 집에 들어가야 하는 생활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친구들은 농담처럼 저를 보고 "신데렐라 됐네"라고 말합니다. 웃으면서 넘기지만 가끔은 외롭습니다.
그럴 때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누나입니다. 신기하게도 가장 오래 싸웠던 사람이 가장 오래 남아 있습니다. 저와 누나는 정말 많이 싸웠습니다. 연락하지 않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서로가 너무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힘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도 결국 누나였습니다. 회사 일로 지칠 때. 외할머니 병원 문제로 머리가 복잡할 때. 고양이 바론이 가 심장병 진단을 받았을 때. 그 순간마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가족이면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합니다. 상처만 주는 관계라면 거리 두기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너무 쉽게 관계를 끊어버리는 문화도 있는 것 같습니다. 불편하면 차단하고, 힘들면 정리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입니다.
물론 이해합니다. 하지만 모든 관계가 그렇게 정리될 수는 없습니다. 가족은 계산보다 기억으로 이어지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누나는 제 인생에서 가장 오래된 친구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시기에는 엄마였고, 어떤 시기에는 후원자였고, 어떤 시기에는 세상 누구보다 든든한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그녀라면》을 보고 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도 영화 속 자매가 아니라 제 누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압니다.
어린 시절 학교 가는 길에 잡았던 그 손이 단순한 누나의 손이 아니었다는 것을요. 그 손은 부모님이 바빴던 시간을 대신 메워주던 또 하나의 가족의 손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가끔 먼저 전화를 합니다.
"누나, 밥 먹었어?"
생각해 보면 가족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감사 인사보다 그런 짧은 안부 한마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 내 형제자매 유대(sibling bond)가 중년 이후 정신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형제자매 유대란 형제나 자매 사이에서 발전하는 심리적 연결감과 상호 지지 관계를 말합니다. 중년 이후 사회적 연결망이 줄어드는 시기에 형제자매 관계가 외로움을 완충하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APA)).
형제자매에게 감사하다고 느끼는 분이라면, 오늘 한 번 연락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거창한 말 없이 그냥 안부 한마디만 해도 충분합니다. 저는 그게 생각보다 훨씬 늦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