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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랍스터, 사랑은 닮아야 할까

dailyroutine15 2026. 9. 1. 10:30

목차


    더 랍스터, 사랑은 닮아야 할까

    사랑하는 사람과 닮은 점을 찾으면 이상하게 안심이 됩니다. 같은 음식을 좋아하거나 웃는 포인트가 비슷하면 저도 모르게 '이 사람이랑은 잘 맞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더 랍스터》를 보고 나서 그 익숙한 감각이 조금 불편해졌습니다. 공통점이 사랑을 시작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그 이유가 사라진 뒤에도 우리는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공통점이 사랑의 자격이 되는 이상한 세계

    《더 랍스터》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2015년 작품입니다. 영화 속에서 혼자가 된 사람들은 호텔로 보내지고 45일 안에 새로운 짝을 찾아야 합니다. 실패하면 자신이 선택한 동물로 변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 설정이 황당해서 웃겼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사람이 동물로 변한다는 것보다 사람들이 사랑을 찾는 방식이 더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근시인 사람은 근시인 상대를 찾고, 코피를 자주 흘리는 사람은 자신처럼 코피를 흘리는 사람과 어울립니다.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닮은 구석 하나쯤은 있어야 사랑할 자격이 생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심지어 주인공의 친구는 코피를 자주 흘리는 여자와 짝이 되려고 일부러 자신의 코에서 피를 냅니다. 이 장면에서는 웃음보다 씁쓸함이 먼저 왔습니다. 동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척해야 하고, 사랑하는 척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없던 특징까지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이야기만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익숙했습니다.

    저도 아직 결혼하지 않았고 현재 여자친구와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주변에서 결혼에 관한 질문을 듣게 됩니다. 물론 대부분은 걱정하거나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이야기일 겁니다. 그런 관심까지 모두 불편한 압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같은 질문이 반복되다 보면 묘한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연애를 하고 있어도 다음 단계가 결혼이어야 할 것 같고,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삶의 모양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호텔의 규칙이 마냥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45일이라는 시한도, 동물로 변한다는 설정도 처음처럼 황당하게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실의 시선을 몇 배쯤 과장하면 저 호텔이 될 것 같았습니다.

    기억에 남은 지점: 사랑 자체보다 '누군가와 반드시 짝을 이루어야 한다'는 규칙이 사람을 얼마나 이상하게 만드는지가 먼저 보였습니다.

     

    그녀의 눈이 멀자 사랑의 이유도 사라졌다

    제가 가장 오래 멈춰 있었던 건 주인공과 근시인 여자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여자가 시력을 잃은 뒤였습니다.

    두 사람에게는 근시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외톨이 집단의 리더가 여자의 시력을 빼앗으면서 둘을 이어주던 가장 분명한 연결고리도 사라집니다.

    그때부터 주인공은 둘 사이의 닮은 점을 다시 찾아 헤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제 연애도 한번 돌아보게 됐습니다. 연애 초반에는 닮은 부분이 유난히 크게 보입니다. 취향이 맞고 말이 잘 통하면 '우리는 잘 맞는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차이도 하나씩 나타납니다.

    저 역시 여자친구와 관계를 이어오면서 시간이 흐른다고 두 사람이 모든 부분에서 같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서로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 때도 있고, 좋아하는 것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전에는 '왜 나와 다르지?'라고 생각했을 부분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이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이니까'라고 받아들이게 되는 순간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연애하면서 서로에게 하나도 맞추지 않고 살 수는 없었습니다. 양보할 때도 있고, 내가 한발 물러설 때도 있습니다. 나만 편한 방식으로 살면서 상대에게 있는 그대로 받아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좋은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사랑하면서 자연스럽게 닮아가는 것과 사랑받기 위해 닮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다릅니다.

     

    호텔을 탈출했는데 숲도 자유롭지 않았다

    호텔에서 도망치면 좀 나아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숲에 도착하고 보니 여기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호텔에서는 사랑해야 합니다. 반대로 외톨이들이 사는 숲에서는 사랑하면 안 됩니다.

    처음에는 주인공이 호텔에서 탈출했으니 이제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숲에도 규칙이 있었습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저는 영화가 더 재미있어졌습니다.

    사랑을 강요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혼자를 강요하는 것도 똑같이 이상합니다. 방향만 반대일 뿐, 두 세계 모두 개인에게 자신의 관계를 결정할 권리를 주지 않습니다.

    다만 영화의 풍자를 현실에 그대로 옮겨놓는 것에는 조금 조심하고 싶습니다. 현실에서 결혼을 권하는 가족의 말 한마디와 영화 속 호텔의 강제적인 제도를 같은 수준의 폭력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걱정과 간섭의 경계도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그래도 영화의 과장이 허무맹랑하게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현실에도 '이 나이쯤이면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말이 아직 남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호텔과 숲 가운데 어디가 더 좋은지 고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둘 다 싫었습니다.

    사랑해도 되고 혼자여도 되는 곳. 사랑하다 헤어져도 실패한 사람이 되지 않는 곳. 영화에는 오히려 그런 평범한 장소가 없습니다.

    제가 본 핵심: 문제는 커플이냐 솔로냐가 아니라, 자신의 관계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느냐에 가까웠습니다.

     

    그가 정말 눈을 찔렀으면 사랑일까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화장실 거울 앞에 섭니다. 손에는 칼이 있습니다. 이제 자신도 시력을 잃으면 두 사람은 다시 같은 조건을 갖게 됩니다.

    영화는 그가 실제로 눈을 찔렀는지 보여주지 않습니다.

    저는 그가 눈을 찌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눈까지 포기하려는 행동을 사랑을 위한 희생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반대로 봤습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내야만 상대와 같아질 수 있고, 같아져야만 관계가 유지된다면 그것은 사랑의 증명이라기보다 이 세계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규칙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 된다'는 예쁜 말로 끝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실제 관계에서는 서로 맞춰야 할 일이 생깁니다. 중요한 건 어디까지 맞추느냐일 겁니다.

    상대를 위해 조금 달라지는 것과 사랑받기 위해 내가 아닌 사람이 되는 것.

    저에게 《더 랍스터》의 마지막 칼은 바로 그 경계에 놓여 있었습니다.

     

    결말을 보고 남은 두 가지 질문

    Q. 더 랍스터 결말에서 주인공은 정말 눈을 찔렀을까요?

    A. 영화는 그 선택을 직접 보여주지 않습니다. 저는 그가 눈을 찌르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훼손하면서까지 상대와 같아져야만 유지되는 사랑이라면, 두 사람이 사랑을 바라보는 방식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Q. 호텔과 외톨이들의 숲 중 어디가 더 자유로운가요?

    A. 저는 어느 쪽도 자유롭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호텔은 사랑을 강요하고 숲은 사랑하지 않을 것을 강요합니다. 서로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관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닮았습니다.

     

    끝내 같아지지 않아도 함께할 수 있을까

    《더 랍스터》를 다 보고도 저는 주인공이 눈을 찔렀는지에 대한 답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다른 질문 하나가 남았습니다.

    우리는 사랑해서 조금씩 닮아가는 걸까. 아니면 사랑받기 위해 상대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걸까.

    지금의 관계를 생각해 봐도 같은 부분만큼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오래 만난다고 둘이 하나가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여전히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있고, 끝내 같아지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보다 그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에 그가 칼을 내려놓았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도 옆에 앉아 있을 수 있다면, 저는 근시라는 공통점 하나보다 그런 관계를 사랑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참고 자료: Festival de Cannes — The Lobster 공식 작품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