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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 스타, 누가 누구를 지킬까

dailyroutine15 2026. 8. 31. 11:09

목차


    도그스타

    바론에게 심장약을 먹이기 시작한 지 3년이 되어갑니다. 비대성 심근병증(HCM) 진단을 받던 날, 의사가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을 때는 병명보다 ‘평생’이라는 단어가 더 무겁게 들렸습니다. 《도그 스타: 마지막 희망》을 본 뒤에도 종말의 풍경보다 바론의 약을 준비해온 시간이 더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영화 속 힉이 재스퍼를 지키는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힉이 재스퍼를 놓지 못하는 이유

    대재앙이 지나간 뒤 힉은 반려견 재스퍼, 무장한 생존주의자 뱅리와 고립된 비행장에서 살아갑니다. 힉은 경비행기로 주변을 살피고 물자를 구하며, 뱅리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거처를 지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생존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전혀 다릅니다.

    그 사이에서 재스퍼는 먹이고 보호해야 할 반려견 이상의 존재가 됩니다. 힉에게 재스퍼는 세상이 무너지기 전 아내와 함께했던 시간을 지금까지 이어주는 가족입니다. 리들리 스콧도 원작을 영화로 옮기며 힉과 재스퍼의 관계가 반드시 남아야 할 핵심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저 역시 바론과 지내며 보호의 방향이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겉으로는 제가 약을 준비하고 건강을 살피지만, 실제로는 아침저녁 약 시간이 제 하루를 붙잡아줍니다. 피곤하거나 마음이 복잡해도 그 시간만큼은 건너뛸 수 없습니다. 해야 할 일이 분명하다는 사실이 사람을 다시 움직이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힉이 재스퍼를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도 누가 누구를 보호하는 것인지 쉽게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힉이 재스퍼를 살게 하는 동시에, 재스퍼도 힉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뱅리와 힉, 살아남는 방식의 차이

    뱅리는 접근하는 사람을 먼저 위협으로 판단합니다. 감염병으로 사회가 붕괴하고 낯선 사람의 정체를 확인할 방법조차 사라진 세계라면 그의 경계심을 무조건 악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번의 잘못된 판단이 함께 사는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힉은 상대를 확인하기도 전에 제거하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힉의 태도가 인간적이고 뱅리의 태도는 잔인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선악 대립에서 벗어납니다. 뱅리의 냉혹함이 없었다면 힉은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고, 힉이 없었다면 뱅리는 살아남는 기능만 남은 사람에 가까워졌을 것입니다.

    저는 둘 중 한 사람이 옳다기보다 서로가 상대의 극단을 막아주는 관계로 보았습니다. 뱅리는 힉의 생명을 지키고, 힉은 뱅리에게 아직 사람으로 남아야 할 이유를 보여줍니다. 살아남는 데 필요한 태도와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주는 태도가 한 사람 안에서 쉽게 양립하지 않기에 두 인물이 함께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다만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액션의 비중을 빠르게 키우면서 두 사람의 갈등을 조금 서둘러 정리한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초반에 쌓은 생존 윤리의 충돌을 한두 장면만 더 밀어붙였다면, 이후의 선택이 더욱 무겁게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인간이 사라진 자리를 자연이 채울 때

    힉이 경비행기를 타고 폐허와 산림 위를 지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분위기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인간에게는 세계의 종말이지만 자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빈자리를 되찾아갑니다. 그 풍경이 아름다울수록 그 안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더 작고 외롭게 보입니다.

    공식 촬영 자료에 따르면 영화는 이탈리아의 프리울리, 베네토 지역의 벨루노 프레알프스, 아브루초 산악 지역과 로마 등에서 촬영됐습니다. 여러 지역의 실제 풍경이 종말 이후의 콜로라도로 바뀐 셈입니다.

    특히 뱅리가 머무는 거처와 힉이 상공에서 마주하는 풍경의 차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뱅리의 세계는 무기와 경계선 안에 갇혀 있지만, 힉의 시야에는 폐허 너머의 산과 하늘까지 들어옵니다. 감독의 의도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제게는 두 사람이 볼 수 있는 삶의 범위가 화면에 그대로 드러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시마와 만난 뒤 커피와 음악 같은 일상의 조각이 다시 등장하는 순간도 같은 흐름에 놓입니다. 종말 이전에는 별것 아니었던 일이 모든 것을 잃은 사람에게는 돌아가고 싶은 생활이 됩니다. 교통체증이나 장보기조차 그리워질 수 있다는 말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았습니다. 평범한 일상은 사라지기 전까지 자신의 무게를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재스퍼가 희망의 상징일 때 생기는 의문

    반려동물과 살아본 사람이라면 힉과 재스퍼의 관계에 빠르게 마음이 움직일 가능성이 큽니다. 말없이 곁에 있고, 돌봐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흐트러진 생활을 다시 붙잡게 하는 존재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마음이 지친 날 바론과 쿠키의 눈물을 닦아주고 약을 챙기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이 잠시 멈춥니다.

    그렇다고 재스퍼를 활용하는 방식에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닙니다. 영화 속 사람들은 감염을 경계하며 거리를 두지만 재스퍼는 여러 생존자 사이를 비교적 자유롭게 오갑니다. 영화가 질병의 전파 방식과 재스퍼의 안전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이 부분에서 영화가 세운 생존 규칙이 잠시 느슨해졌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반대의 해석도 가능합니다. 누구도 쉽게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세계에서 재스퍼만은 경계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합니다. 현실적인 위험보다 접촉과 온기의 의미를 보여주려는 선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 감정에는 공감합니다.

    다만 재스퍼가 불러올 수 있는 위험까지 인물들이 고민했다면 힉의 선택은 더 어려워졌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는 일이 다른 사람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갈등까지 다뤘다면, 재스퍼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상징을 넘어 영화의 생존 질문을 더욱 날카롭게 만드는 존재가 됐을 것 같습니다.

     

    상실 뒤에도 새 관계를 선택할 수 있을까

    《도그 스타: 마지막 희망》을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자”는 이야기로만 정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힉에게 필요한 것은 사라진 과거를 그대로 복원하는 일이 아닙니다. 재스퍼와 함께 과거를 기억하면서도, 다시 무전을 따라가고 낯선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선택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쉽게 정리되지 않는 모순이 있습니다. 살아남는 일만 반복한다고 해서 그것이 삶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선의와 따뜻함만으로 위험한 세계를 통과할 수도 없습니다. 힉과 뱅리 중 어느 한쪽만 선택하기 어려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저는 다시 바론의 약 시간을 생각했습니다. 약을 먹이는 몇 분은 바론의 하루를 지키지만, 그 시간이 제 생활도 제자리로 돌려놓습니다. 제가 바론을 돌보는지, 바론이 제가 돌아갈 자리를 지켜주는지는 여전히 정확히 나누기 어렵습니다. 힉과 재스퍼를 보며 확인한 것도 바로 그 모호한 방향이었습니다.

     

    관람 전 확인할 정보

    Q. 《도그 스타: 마지막 희망》은 소설이 원작인가요?

    A. 피터 헬러가 2012년에 발표한 소설 《The Dog Stars》를 바탕으로 제작됐습니다. 원작자 피터 헬러는 각본가 마크 L. 스미스가 원작의 정신을 이해했다고 평가하면서, 영화가 별개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존중했다고 밝혔습니다.

     

    Q. 영화의 상영시간과 주요 출연진은 어떻게 되나요?

    A. 20세기 스튜디오 공식 자료 기준 상영시간은 1시간 58분입니다. 제이콥 엘로디가 힉, 조시 브롤린이 뱅리, 마거릿 퀄리가 시마를 연기하며 가이 피어스, 베네딕트 웡, 앨리슨 재니가 출연합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