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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리모컨을 집지 못했습니다. 영화 속 벤이 슬펐던 것보다 퇴근 후 혼자 앉아 소주 한 병을 비우던 제 모습이 갑자기 다르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1995년 마이크 피기스가 연출하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삶을 포기한 듯 술에 매달리는 벤과 거리에서 살아가는 세라가 만나지만, 저는 두 사람의 관계보다 다른 질문 하나가 더 오래 남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면 어디까지 받아주는 것이 사랑일까요.
소주 한 병보다 마음에 걸렸던 퇴근길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본 건 꽤 어릴 때였습니다. 그때는 솔직히 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저렇게까지 술을 마시는지, 왜 조금이라도 살아보려고 하지 않는지 답답했습니다.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다시 보게 된 시기에는 제 생활도 예전과 조금 달라져 있었습니다. 할머니를 돌보기 시작한 뒤부터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근처 식당에 들르는 날이 생겼습니다. 밥 하나를 시키고 반주로 소주 한 병을 마신 뒤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집에서는 마시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저녁을 해결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시간이 기다려졌습니다.
현관문을 열면 제 하루가 다시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를 살피고 집에서 해야 할 일을 챙기다 보면 어느새 잘 시간이 됐습니다. 돌이켜보면 식당 구석에 혼자 앉아 있던 시간이 하루 중 누구에게도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몇 안 되는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을 벤의 상태와 비교할 생각은 없습니다. 영화 속 벤은 술 때문에 일상과 관계가 무너진 상태에서도 음주를 계속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제게 먼저 걸린 건 의학적인 설명이 아니라 제 생활에 생긴 작은 변화였습니다.
나는 술이 필요했던 걸까. 아니면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생각해 보면 후자에 더 가까웠습니다. 문제는 그 짧은 휴식과 술이 어느 순간 한 묶음처럼 붙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냥 들어가자"보다 "간단히 먹고 들어가자"가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습관을 괜찮다고 포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힘든 하루를 버티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과 그 시간을 술로 채우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잠깐 쉬어가는 방법이 반드시 소주 한 병일 필요는 없습니다.
세라의 사랑에 절반만 동의하는 이유
두 번째로 마음에 걸린 사람은 세라였습니다.
세라는 벤이 어떤 상태인지 알면서도 곁에 머뭅니다. 그를 자신의 방식대로 뜯어고치려고 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조건 없는 사랑처럼 보였습니다.
저도 이 태도에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누군가를 오래 챙기다 보면 다른 사람을 바꾸는 일이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옆에서 아무리 걱정하고 같은 말을 반복해도 결국 그 사람이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 남습니다. 계속 설득하는 사람도 지칩니다. 그래서 세라가 벤을 몰아세우지 않는 마음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오히려 다른 질문이 생겼습니다.
받아주는 것에도 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망가뜨리는 모습을 보고도 "당신의 선택이니까"라고 말하는 것이 정말 존중인지 저는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반대쪽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인생을 내 뜻대로 바꿀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세라가 아무리 붙잡아도 벤이 달라지겠다고 결정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대신 살아줄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의 사랑을 아름답다고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세라가 벤을 사랑했다는 것과 벤의 선택이 괜찮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과 그 사람의 자기 파괴까지 받아들이는 것도 같지 않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다시 보고 불편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느 쪽이 옳다고 쉽게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살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벤에게는 결국 자신을 걱정하고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생깁니다. 멀리서 보면 이것만으로도 다시 살아볼 이유가 생긴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세라는 벤의 상태가 계속 나빠지는 것을 걱정하지만, 벤은 자신이 정한 방향에서 좀처럼 돌아서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도 흔들리고 결국 떨어져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만났을 때 벤의 몸은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상태에 가까워져 있습니다.
예전의 저였다면 여기서 세라에게도 책임을 물었을 것 같습니다. 사랑한다면 더 강하게 말렸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금은 그렇게 쉽게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누군가를 챙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더 해주는 것이 상대에게 정말 필요한 일인지, 아니면 내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붙잡고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순간도 생깁니다.
그래서 마지막의 세라를 보면서 사랑의 위대함보다 무력함이 먼저 느껴졌습니다.
옆자리를 지켜주고, 손을 잡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말하는 것까지는 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결국 그 사람의 몫이었습니다. 예전에는 그게 무책임하게 들렸는데 지금은 꼭 그렇게만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벤의 죽음보다 세라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슬펐습니다.
보고 나서 궁금했던 세 가지
Q.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특정 실화를 그대로 영화화한 작품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존 오브라이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고 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오브라이언의 가족은 그의 소설에 작가 자신의 삶이 상당 부분 반영됐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오브라이언은 영화가 완성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Q. 니콜라스 케이지의 벤이 유난히 실제처럼 보이는 이유가 있나요?
A. 니콜라스 케이지는 역할을 준비하면서 알코올 문제를 다룬 기존 영화의 연기를 연구하고 실제 취한 사람들의 행동도 관찰했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비틀거리는 모습보다 오히려 벤이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하려는 순간에서 중독의 불편함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Q. 세라는 왜 벤을 떠나지 않았을까요?
A. 저는 이 부분을 특정 심리학 용어 하나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세라 역시 자신의 삶에서 상처와 외로움을 안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벤을 구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기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잠시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봤습니다. 문제는 사랑과 회복이 같은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간격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가 더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그 식당 앞에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요즘도 퇴근길이면 가끔 익숙한 식당 앞을 지나갑니다. 예전에는 별생각 없이 문을 열었다면 지금은 한 번쯤 생각합니다.
오늘 나에게 필요한 것이 정말 한잔인지, 아니면 잠깐 앉아서 쉬어갈 시간인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보고 술을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게 됐다고 말하면 과장일 겁니다. 여전히 힘든 날도 있고 한잔하고 싶은 날도 있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이유를 묻지 않고 지나가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벤과 세라의 마지막을 아름다운 사랑으로만 기억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세라는 벤의 마지막 곁에 있었지만 그의 삶을 대신 선택할 수는 없었습니다. 벤 역시 사랑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을 살리는 쪽으로 돌아서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도 저는 두 사람의 사랑보다 벤이 끝내하지 못한 선택을 먼저 보게 됐습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해 주는 것과 내가 나 자신을 돌보는 것은 결국 다른 일이라는 것.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생각만큼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