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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다는 게 거울 앞에서 실감된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달랐습니다. 어느 날 후배가 불량품 하나를 들고 제 자리로 찾아와 “이거 어디부터 확인하면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별것 아닌 질문이었는데 후배가 돌아간 뒤 한동안 그 말이 남았습니다. 예전에는 저 질문을 하던 사람이 저였기 때문입니다. 영화 《리버럴 아츠》를 보면서 그날의 장면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나이는 거울보다 역할이 바뀔 때 보였다
품질 관리 업무를 오래 하면서 나이를 숫자로 의식한 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해가 바뀌면 경력이 하나씩 늘었지만 어제의 저와 오늘의 제가 갑자기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후배가 불량품을 들고 찾아왔던 날은 조금 달랐습니다.
저는 제품을 보면서 발생 시점을 먼저 확인하고, 정상 제품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한 뒤 같은 현상이 다시 나타나는지 확인해 보자고 했습니다. 특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비슷한 문제를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순서였습니다.
후배가 자리로 돌아간 뒤 문득 예전 생각이 났습니다.
처음 품질 업무를 배울 때는 문제가 생기면 제가 선배 자리로 찾아갔습니다. 업체에 연락하기 전에도 제가 놓친 것이 없는지 물어봤고,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선배가 어떻게 보는지 기다렸습니다. 당시에는 선배들이 처음부터 답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스스로를 완성된 선배라고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처음 보는 불량 앞에서는 고민하고, 판단이 맞는지 다시 확인합니다. 마음속의 저는 예전과 그렇게 많이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데 회사에서 제가 맡고 있는 역할은 이미 달라져 있었습니다.
《리버럴 아츠》의 제시를 보면서 이 감각이 떠올랐습니다.
제시는 대학 시절 존경했던 교수의 퇴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캠퍼스로 돌아옵니다. 익숙한 건물과 책, 교수와의 대화 속에 있으니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간 듯 편안해 보입니다. 대학생 지비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는 나이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집니다.
특히 제시가 나이를 먹었어도 마음은 여전히 젊은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저도 비슷했습니다. 후배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면서도 제 안에서는 여전히 선배에게 질문하던 사람이 남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마음이 예전과 같다고 해서 내가 서 있는 자리까지 예전과 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시가 대학에서 조금씩 확인하게 되는 것도 바로 그 차이라고 저는 봤습니다.
나이에 맞게 살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리버럴 아츠》를 단순히 “나이 듦을 인정하고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로 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 말에는 절반 정도만 동의합니다.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가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있으니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늦었다거나, 경력이 오래됐으니 후배에게 물어보면 안 된다거나, 이제는 어떤 취미를 즐길 나이가 아니라는 식입니다. 저는 이런 태도가 나이를 받아들이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순간이 있습니다.
경력이 오래됐다고 모든 것을 더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장비나 시스템을 후배가 저보다 빨리 익힐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솔직히 묘합니다. 오랫동안 익숙하게 사용했던 방식이 어느 순간 예전 방식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선배라는 이유로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게 더 이상합니다. 후배가 더 잘 아는 부분이라면 물어보면 됩니다. 경험이 쌓였다는 것과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이를 받아들인다는 말을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습니다.
스무 살처럼 무언가에 설렐 수도 있고, 나이가 들어 새로운 일을 처음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마음이 젊다는 이유로 지금 내가 가진 책임이나 다른 사람과의 차이까지 없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이 지점에서 제시와 지비의 관계가 중요해집니다.
두 사람은 책과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집니다. 대화만 놓고 보면 나이 차이를 잊을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현재 서 있는 위치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제시가 결국 관계를 더 밀어붙이지 않은 선택에 동의하는 쪽입니다.
성인 두 사람이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 자체를 나이 차이만으로 잘못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마음이 통한다는 이유만으로 두 사람 사이의 경험과 위치의 차이를 전부 지워도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제시가 멈춘 것은 자신의 나이가 부끄러워서라기보다, 좋아하는 감정과 그 감정을 행동으로 옮기는 판단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라고 저는 봤습니다.
제시보다 피터 교수가 더 현실적으로 보였다
오히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제시 못지않게 피터 교수가 오래 남았습니다.
오랜 시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피터는 퇴임을 앞두고 있습니다. 축하를 받아야 할 자리인데 정작 그는 홀가분해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교단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모습에서는 단순히 직업 하나를 그만두는 사람 이상의 허전함이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미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회사 생활을 떠올려보니 그렇게 간단하게 볼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하면 직업은 월급을 받는 수단으로만 남지 않습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 내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직책까지 조금씩 일상의 일부가 됩니다.
그중 하나가 갑자기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피터가 왜 학교를 떠나는 것을 힘들어하는지 조금 이해됐습니다.
다만 저는 영화가 이 문제를 후반부에서 조금 편안하게 정리한다고 느꼈습니다. 현실에서는 역할이 달라졌다고 마음까지 바로 따라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도 업무를 후배에게 넘긴다고 해서 그날부터 완전히 손을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대로 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문제가 생기면 내가 직접 보는 편이 빠르다는 생각도 듭니다. 반대로 계속 붙잡고 있으면 후배가 자기 방식으로 판단할 기회를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피터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나이 듦보다 ‘내 자리를 조금씩 내어주는 일’이 더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시는 과거의 자신에게서 멀어져야 하고, 피터는 오랫동안 자신을 설명해 주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나이는 크게 다르지만 두 사람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의외로 비슷해 보였습니다.
지나간 자리가 여전히 편하다는 것.
저는 그게 이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었습니다.
제시가 멈춘 선택은 비겁했을까
물론 반대로 볼 수도 있습니다.
제시가 지비와의 관계를 멈춘 것을 두고 지나치게 나이를 의식한 선택이라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성인이고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다면, 16살이라는 숫자만으로 가능성을 닫아야 하느냐는 반론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저 역시 나이 차이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영화에서 제가 불편하게 본 것은 숫자 자체보다 제시의 태도였습니다.
그는 대학으로 돌아온 뒤 유난히 편안해집니다. 젊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책과 음악을 나누면서 자신이 다시 대학생이 된 것 같은 감각을 즐깁니다. 그래서 지비에게 느낀 감정 안에는 한 사람에 대한 호감뿐 아니라 지나간 자신의 시간을 다시 만난 반가움도 섞여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만약 그렇게 본다면 제시가 멈춘 선택은 겁을 먹고 도망친 것과는 조금 달라집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정말 지비인지, 아니면 지비와 함께 있을 때 되살아나는 젊은 시절의 자신인지 한 번쯤 구분할 필요가 있었던 겁니다.
저는 그래서 그의 마지막 선택에 동의했습니다.
다만 영화가 두 사람의 관계를 조금 더 불편하게 밀어붙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제시가 무엇을 포기했는지, 지비가 왜 그에게 끌렸는지를 조금 더 오래 보여줬다면 나이 차이라는 문제가 훨씬 복잡하게 남았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리버럴 아츠》는 나이 차이가 나는 연애의 정답을 알려주는 영화라기보다, 지나간 나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쉽게 뒤섞이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에 더 가까웠습니다.
영화를 보고 궁금했던 두 가지
Q. 《리버럴 아츠》에서 제시가 지비와의 관계를 멈춘 이유는 나이 차이 때문인가요?
A. 영화에서 16살이라는 나이 차이는 제시가 관계를 고민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봤습니다. 제시는 대학으로 돌아오면서 과거의 자신과 다시 가까워지고, 지비와의 관계 역시 그 감정과 겹쳐집니다. 그래서 그의 선택은 단순히 나이가 많아서 포기했다기보다 현재의 자신과 대학 시절의 자신을 구분하기 시작한 결과에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Q. 《리버럴 아츠》는 결국 나이 듦을 받아들이라는 영화인가요?
A.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제시뿐 아니라 은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피터 역시 자신이 익숙했던 시간과 자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말하는 받아들임은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기보다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진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는 것에 더 가까워 보였습니다.
요즘은 후배의 질문에서 시간을 본다
《리버럴 아츠》를 보고도 저는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말에는 여전히 동의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었다고 좋아하던 것을 그만둘 이유도 없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지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선배가 됐다고 항상 답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신 하나는 전보다 분명해졌습니다.
마음은 아직 예전 그대로인 것 같은데, 돌아보면 내가 앉아 있는 자리는 이미 달라져 있었습니다.
얼마 전처럼 후배가 불량품을 들고 찾아오면 저는 여전히 같이 제품을 들여다봅니다. 모르면 다시 확인하고, 제가 놓친 부분이 있으면 후배에게도 묻습니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기보다, 제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하나라도 덜 겪게 해주는 쪽을 생각하게 됐다는 정도입니다.
그 정도면 지금의 제 자리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시는 결국 대학을 떠났고 피터도 자신의 오랜 자리와 작별해야 했습니다. 저 역시 언젠가는 지금 앉아 있는 자리에서 또 다른 쪽으로 움직이게 될 겁니다.
아직 그게 어떤 모습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제는 거울을 보며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 확인하는 것보다, 제 자리로 걸어오는 후배가 무슨 질문을 들고 오는지를 보는 편이 조금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