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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홀로 살아남은 마크 와트니가 뛰어난 지식 덕분에 구조됐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10년 전 처음 《마션》을 봤을 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품질관리(QC) 업무를 10년 가까이 하면서 같은 영화를 다시 봤더니, 살아남은 이유가 전혀 달리 보였습니다. 그건 천재성이 아니라,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화성에서 감자를 심은 이유 — 문제해결의 맥락
마크 와트니는 하버드 졸업 후 치열한 경쟁을 뚫고 NASA 화성 탐사 프로젝트 아레스 3(Ares III)의 대원으로 선발된 인물입니다. 아레스 3란 유인 화성 탐사를 목표로 한 NASA의 세 번째 장기 미션으로, 최첨단 우주선 헤르메스(Hermes) 호를 이용해 왕복 2년 이상이 걸리는 여정이었습니다.
화성까지의 최단 거리는 약 8,000만 km. 그 긴 여정 끝에 도착한 화성에서 마크는 시속 400km의 모래폭풍으로 인해 혼자 남겨집니다. 기지에 남은 식량은 대원 여섯 명 기준 두 달치. 다음 탐사팀 도착까지는 4년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마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을 버리고 간 동료들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 장면을 다시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분노와 자책이 먼저 올 텐데, 마크는 냉정하게 남은 자원을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동료들의 분변(排泄物)을 비료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감자 농사를 시작했고, 하이드라진(Hydrazine) 용액을 이리듐(Iridium) 금속 촉매 위에서 분해해 수소를 추출한 뒤 산화시켜 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여기서 하이드라진이란 로켓 추진제로 사용되는 화합물로, 분해 시 질소와 수소로 나뉘는 성질을 이용한 것입니다. 화학 지식을 생존 도구로 전환한 이 과정은, 문제를 작게 쪼개 하나씩 해결하는 접근법의 전형입니다.
- 식량 문제 → 분변 비료 + 감자 재배로 해결
- 물 부족 문제 → 하이드라진 분해 반응으로 물 생성
- 통신 문제 → 1997년 화성 착륙 무인 탐사선 패스파인더(Pathfinder) 재가동
- 이동 문제 → 태양광 패널로 전기차 충전하며 3,200km 이동
회의실 안의 책임회피 — 현실 조직과의 비교
제가 품질관리 업무를 하면서 가장 많이 목격한 장면은 이것입니다. 불량이 발생하는 순간, 원인보다 책임의 방향이 먼저 결정됩니다.
생산팀은 자재 문제라고 말합니다. 자재팀은 외주업체에서 들어온 부품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외주업체는 도면과 작업 기준대로 만들었을 뿐이라고 답합니다. 설계는 설계대로 만들었다고, 구매는 납기에 맞춰 공급했다고 이야기합니다. 틀린 말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말들이 오가는 동안 생산 라인은 멈춰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품질 분야에서는 책임 분산(Responsibility Diffusion)이라고 부릅니다. 책임 분산이란 여러 주체가 관여된 문제에서 아무도 스스로 책임자임을 인정하지 않아 문제 해결이 지연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심리학 연구에서도 이 패턴은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의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 연구에 따르면, 책임이 분산될수록 개인이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낮아집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저는 처음엔 이 상황이 단순히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실제로 손해를 보는 구조가 반복되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먼저 지키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평가가 나빠지고, 거래처와의 신뢰가 무너지며, 내부 책임을 떠안게 되는 구조 속에서 인정보다 방어를 선택하는 건 어찌 보면 합리적인 반응입니다.
그렇다고 그 행동에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 봤는데, 책임을 주고받는 문화가 반복될수록 같은 불량은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다시 나타납니다. 한 번은 납품된 부품에서 동일한 불량이 세 분기 연속으로 발생했습니다. 매번 책임을 외주업체에 돌렸고, 외주업체는 시정조치(Corrective Action)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시정조치란 불량 원인을 파악하고 재발을 막기 위한 공식 개선 절차를 말합니다. 그런데도 불량은 반복됐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우리 조립 공정의 작업 순서를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현장을 함께 확인해 보니 원인은 외주업체의 미세한 공정 편차와 우리 회사 조립 순서가 겹치면서 발생한 복합 요인이었습니다. 누군가 한 명의 잘못이었다면 오히려 해결이 쉬웠을 것입니다. 현실의 불량은 대부분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재현부터 해보시죠 — 품질관리 현장에 적용한 것들
《마션》에서 NASA가 마크를 구한 것은 완벽한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보급선은 폭발했고, 계산은 틀렸으며, 상승선 천장을 뜯어내는 임시방편도 써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실패를 숨기기보다 다음 방법을 찾았습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가장 크게 느낀 건, 바로 이 태도가 현실 조직에서는 가장 보기 힘든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회의에서 한 가지 질문을 먼저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책임을 정하기 전에 재현부터 해보시죠." 재현(Reproduction) 테스트란 불량이 발생한 조건을 동일하게 구성해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하는 검증 절차로, 원인이 어디 있는지를 데이터로 확정하는 첫 단계입니다.
처음에는 외주업체도, 내부 담당자도 이 제안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재현을 한다는 건 누군가의 공정이 문제가 있다는 걸 눈앞에서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결과는 달랐습니다. 데이터 앞에서는 방어보다 협력이 더 빨리 나왔습니다. 출처: ASQ(American Society for Quality)의 자료에 따르면, 사실 기반(Fact-Based) 품질 개선 접근법은 감정 기반 책임 논쟁보다 재발률을 평균 40% 이상 낮추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데이터를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만드는 것"과 "모두가 같은 사실을 볼 수 있도록 데이터를 남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듭니다. 전자는 회의를 끝내지만, 후자는 불량을 끝냅니다.
마크 와트니도 하루에 하나씩 해결했습니다. 오늘은 물, 내일은 감자, 그다음은 통신, 그리고 또 다음 문제. 거창한 탈출 계획을 한 번에 세운 것이 아니라, 오늘 해결 가능한 것 하나를 해결한 결과들이 쌓여 지구 귀환이라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불량 대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원인을 한 번에 잡으려 하면 아무것도 잡히지 않습니다. 가장 작은 재현 가능한 조건 하나부터 확인하는 것이 결국 가장 빠른 길이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 제가 가장 크게 바뀐 생각
10년 가까이 품질관리 업무를 하면서 제 생각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누군가 잘못한 사람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원인을 찾는다는 명분 아래 책임자를 먼저 찾으려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그게 회사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의 불량과 고객 클레임, 외주업체와의 협의를 경험하면서 한 가지를 인정하게 됐습니다.
현실의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하나의 불량에도 설계, 자재, 외주업체, 생산조건, 작업방법까지 여러 원인이 동시에 얽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군가를 쉽게 비난하지 않습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손해를 보는 조직이라면 사람은 누구라도 자기 자신을 먼저 지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저는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해와 동의는 다릅니다. 책임을 피하려는 행동이 반복되면 결국 가장 큰 피해는 고객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받습니다. 불량은 사라지지 않고,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회의는 길어지고, 사람들은 점점 서로를 믿지 못하게 됩니다. 저는 그런 조직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션》을 다시 본 뒤 스스로에게 작은 약속을 하나 했습니다. 앞으로는 회의에서 누가 틀렸는지를 증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를 끝까지 확인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데이터를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사실을 보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외주업체 역시 평가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품질을 만들어가는 동료라는 생각으로 대하려고 합니다.
물론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납기는 촉박하고, 원가는 줄여야 하며, 평가는 계속됩니다. 그래서 이상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한 가지는 확신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마션이 직장인에게 특별히 와닿는 이유가 뭔가요?
A. 마크 와트니가 처한 상황, 즉 혼자 문제를 떠안고 자원은 부족하며 외부 지원은 늦다는 구조가 많은 직장인들의 일상과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문제 해결보다 책임 소재를 먼저 따지는 조직 문화를 경험해본 사람에게는 마크의 태도가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닌 실질적인 대안처럼 보입니다.
Q. 품질관리에서 책임 떠넘기기를 줄이는 현실적인 방법이 있나요?
A. 제 경험상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회의 초반에 "책임"이 아닌 "재현"을 먼저 의제로 올리는 것입니다. 불량 조건을 데이터로 재현하면 원인이 어느 공정에 있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그 시점에서는 방어보다 협력이 더 효율적이라는 걸 참여자들이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됩니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재발률이 낮아지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는 훨씬 빠릅니다.
Q. 마션에서 마크 와트니가 패스파인더로 NASA와 통신한 방법이 실제로 가능한가요?
A. 영화적 허용이 상당히 포함돼 있습니다. 실제 패스파인더는 1997년 화성 착륙 후 1998년에 교신이 끊긴 탐사선으로, 당시 배터리 방전 문제로 운용이 중단됐습니다. 다만 영화가 제시하는 핵심 로직, 즉 카메라 방향으로 16진법(Hexadecimal) 문자를 표현해 문장을 전달한다는 발상 자체는 전산학적으로는 유효한 접근입니다. 16진법이란 0~9와 A~F 16개의 기호로 수를 표현하는 진법으로, 컴퓨터 데이터 표현에 기본적으로 사용됩니다.
Q. 외주업체와 협력해서 불량 원인을 찾는 게 실제로 효과가 있나요?
A. 제가 직접 해봤는데, 처음에는 양쪽 모두 방어적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현장 데이터를 함께 보기 시작하면 분위기가 바뀌는 지점이 옵니다. 원인이 복합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서로를 몰아붙이는 것보다 함께 개선안을 만드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걸 양측이 동시에 인식하게 됩니다. 제 경우엔 그 과정을 거친 외주업체와는 이후 관계가 오히려 더 안정적이 됐습니다.
결론
10년 전의 저는 《마션》을 우주 생존 영화로 봤습니다. 지금의 저는 이 영화를 조직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의 태도를 보여주는 영화로 기억합니다. 마크 와트니가 살아서 돌아온 것은 그가 가장 똑똑해서가 아니라, 끝까지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10년 전에는 이 영화를 보며 "천재라서 살았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았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현실의 회사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사람이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데이터를 믿고, 사람보다 문제를 먼저 바라보는 사람이 결국 조직을 바꾼다고 믿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화성에서 일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쌓여 있고, 때로는 누구도 내 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마션》을 다시 보고 난 지금의 저는 예전보다 조금 더 담담해졌습니다.
내일도 회사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려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늘 해결할 수 있는 문제 하나를 끝내는 것, 그 작은 반복이 결국 저를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고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