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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의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처음부터 온전히 내 선택이었던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저도 락발라드를 좋아하게 된 시작에는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싱 스트리트》를 다시 보면서 라피나에게 잘 보이려고 밴드부터 만들어버린 코너가 그렇게 철없어 보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시작은 친구에게서 왔는데, 그 친구가 옆에 없을 때도 계속 듣고 있었습니다. 《싱 스트리트》를 다시 보니 이상하게 그 오래전 일이 먼저 생각났습니다.
싱 스트리트 밴드, 라피나에게 던진 허세에서 시작됐다
《싱 스트리트》의 배경은 경기침체의 그늘이 짙었던 1980년대 더블린입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 코너는 다니던 학교를 떠나 싱 스트리트의 학교로 전학을 갑니다. 집에서는 부모의 관계가 흔들리고, 새로운 학교에서는 낯선 규칙과 괴롭힘이 기다립니다.
그런 코너가 라피나를 만납니다. 여기서 영화가 재미있어집니다. 코너에게 처음부터 음악가가 되겠다는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라피나에게 잘 보이고 싶어 자신의 밴드 뮤직비디오에 출연하지 않겠느냐고 먼저 말해버립니다. 문제는 그때 코너에게 밴드가 없었다는 겁니다.
보통이라면 거짓말을 수습해야 할 상황인데 코너는 반대로 움직입니다. 밴드가 없으니 밴드를 만듭니다. 친구들을 모으고 악기를 잡고 노래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준비가 끝난 다음 출발한 것이 아니라 출발부터 해놓고 필요한 것을 뒤에서 하나씩 채웁니다.
저는 이 부분이 좋았습니다. 취향이나 꿈에는 처음부터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별것 아닌 계기 하나가 오래가는 취향의 입구가 되기도 합니다.
김경호 CD 한 장이 제 취향이 되기까지
중학교 때부터 이상하게 발라드가 좋았습니다.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멜로디도 좋았고, 당시에는 제대로 겪어보지도 않은 이별을 노래하는 가사가 괜히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 저처럼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저보다 훨씬 강한 쪽이었습니다. 락발라드를 좋아했고 노래방에 가면 높은 음역의 노래를 자주 불렀습니다. 특히 김경호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처음에는 옆에서 듣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저도 김경호 CD를 샀습니다. 친구가 없을 때도 듣기 시작했고 결국 수원에서 열린 김경호 콘서트까지 찾아갔습니다.
그날 느꼈던 감각은 아직 기억납니다. CD와 스피커로만 듣던 목소리가 실제로 제 앞에서 터져 나오는데 몸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특히 제가 노래방에서는 흉내조차 제대로 못 내던 고음이 눈앞에서 올라가는 순간에는 팔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노래를 듣고 좋다고 생각한 적은 많았지만 음악 때문에 몸으로 전율을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 뒤부터 락발라드는 친구의 취향이 아니라 제 취향이 됐습니다. 노래방에서도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높은음이 나오면 어떻게든 흉내 내보려고 했고 목에 힘을 잔뜩 주고 부른 적도 많았습니다. 잘 부르는 것과는 별개였습니다. 그냥 제가 직접 그 노래를 불러보고 싶었습니다.
코너를 보면서 이때가 떠올랐습니다. 코너도 처음에는 라피나 때문에 음악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람을 모으고 노래를 만들고 뮤직비디오를 찍으면서 어느 순간부터 라피나에게 잘 보이는 것보다 음악을 하는 코너 자신이 더 신나 보입니다.
저에게 그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라피나도 코너에게 문 하나를 열어준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문을 열어준 사람과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다릅니다.
'행복한 슬픔', 저는 절반만 동의했습니다
《싱 스트리트》에서 기억에 남는 표현 중 하나가 '행복한 슬픔'입니다. 처음에는 청춘영화다운 멋있는 표현 정도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조금 다르게 들렸습니다.
저는 '행복한 슬픔'을 거창하게 정의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당장은 형편없어도 어제보다 노래 하나를 더 만들었고, 친구들과 다시 모였고, 다음 뮤직비디오를 찍을 이유가 생긴 상태. 저는 코너가 보내는 그 어설픈 시간이 오히려 '행복한 슬픔'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다만 영화가 보여주는 '일단 뛰어들어라'라는 태도에는 전부 동의하지 않습니다. 코너의 무모한 선택을 보면서 웃고 응원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아직 학생이라는 점도 있을 겁니다. 어른이 되면 돈, 직장, 가족처럼 하나의 선택이 나에게서만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작정 뛰어드는 행동을 언제나 용기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는 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까지 합리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현실을 고려하는 것과 현실을 핑계로 계속 미루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
김경호 콘서트도 누군가 저를 끌고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친구 때문에 음악을 알게 됐지만 CD를 사고 콘서트장을 찾아간 것은 제 선택이었습니다. 생각만 했다면 그날의 전율도 없었을 겁니다.
다시 보니 코너보다 형 브렌던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싱 스트리트》를 봤다면 코너의 변화와 라피나와의 관계에 더 눈이 갔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형 브렌던이 계속 눈에 밟혔습니다.
브렌던은 음악을 많이 압니다. 코너가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하는지 알려주고 밴드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도 조언합니다. 동생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생에게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면서도, 정작 자신의 삶에서는 그만큼 쉽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저는 브렌던을 단순히 실패한 사람이라고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에게도 움직이지 못한 사정이 있고, 코너보다 현실을 훨씬 많이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아프게 보였습니다.
나이가 들면 실패할 이유를 몰라서 못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돈이 얼마나 드는지, 실패하면 무엇을 잃을지,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볼지까지 먼저 계산하게 됩니다. 준비는 점점 정교해지는데 이상하게 첫걸음은 더 무거워집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코너가 자신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브렌던의 표정이 오래 남았습니다. 저는 그 얼굴에서 동생을 향한 기쁨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은 하지 못했던 일을 동생이 해내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의 아쉬움도 조금 섞여 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 해석입니다.
친구의 취향은 언제부터 내 것이 됐을까
《싱 스트리트》를 보고 나서 저는 꿈보다 취향의 시작을 생각했습니다. 코너가 처음부터 음악을 자신의 길이라고 확신했던 것은 아닙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자기 음악을 발견합니다.
저도 비슷했습니다. 락발라드를 처음 찾아들었던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등학교 친구 한 명이 있습니다. 그 친구가 김경호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제가 CD를 사는 일도, 수원 콘서트장을 찾아가는 일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친구가 옆에 없을 때도 저는 그 음악을 듣고 있었습니다. 노래방에서는 직접 따라 불렀습니다. 그때부터는 더 이상 친구의 취향이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무언가를 시작한 이유가 꼭 거창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건 처음의 이유가 사라진 다음 인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이 없어졌는데도 내가 계속하고 있다면, 그때부터는 정말 내 것이 된 겁니다.
《싱 스트리트》에서 제게 오래 남은 것은 멋진 성공담보다 바로 그 변화였습니다. 라피나 때문에 기타를 잡았던 소년이 어느 순간 라피나가 없어도 음악을 할 것 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온 뒤에는 오래전 수원 콘서트장에서 처음 들었던 그 높은 목소리가 다시 생각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