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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가 강한 사람이 습관을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걸, 저는 헬스장을 세 번 등록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영화 《아메리칸 메이드》를 보다가 그 생각이 다시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1980년대 미국을 뒤흔든 실존 인물 배리 실의 이야기는 범죄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저한테는 반복된 선택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평범한 조종사가 카르텔 운반책이 된 배경
배리 실은 10대 때부터 비행기를 몰았을 만큼 타고난 조종사였습니다. TWA 항공사 소속으로 평범하게 일하던 그는 어느 날 CIA 요원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습니다. 남미 국가들의 군사 시설을 항공 촬영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이번 한 번"이었습니다.
그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정보 수집 임무는 어느 순간 메데인 카르텔의 마약 밀수로 이어졌습니다. 메데인 카르텔이란 1970~80년대 콜롬비아를 기반으로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오초아 형제가 이끌었던 세계 최대 규모의 마약 조직입니다. 단순한 범죄 집단이 아니라 정치권과 군까지 손을 뻗은 준국가적 조직이었습니다.
영화에서 배리가 처음 마약을 운반하는 장면을 보면서 제가 직접 느낀 것은 죄책감보다 익숙함이었습니다. 그가 특별히 악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어제도 했는데 오늘도 별 차이 없겠지"라는 논리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헬스장을 빠지기 시작할 때 저도 정확히 그 논리를 썼습니다.
- 배리 실은 CIA의 항공 정찰 임무로 이중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 메데인 카르텔과의 접촉은 첫 번째 임무 이후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 실제 배리 실은 1972년 폭발물 밀수로 먼저 체포된 뒤 마약 밀수에 뛰어들었습니다
- 영화의 CIA 관련 서사는 실제 역사 사건을 극적으로 재구성한 부분이 포함됩니다
반복된 선택이 습관 형성으로 굳어지는 구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저한테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화려한 도주 신이 아니었습니다. 배리가 가족에게 아무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짐을 싸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모습에서 저는 그가 더 이상 선택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굳어진 패턴이 그를 끌고 가는 사람이 됐다는 걸 느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행동 자동화(behavioral automaticity)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행동 자동화란 반복적인 자극-반응 패턴이 뇌의 기저핵(basal ganglia)에 저장되어, 의식적인 판단 없이도 특정 행동이 자동으로 실행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습관이 의지보다 강해지는 순간입니다. 출처: NIH(미국 국립보건원)
배리의 문제는 이 자동화가 잘못된 방향으로 굳어졌다는 점입니다. 반대로 저는 같은 원리를 좋은 쪽에 적용해보려 했습니다. 운동을 다시 시작할 때 목표를 "3개월 안에 몸 바꾸기"에서 "오늘 헬스장 문만 열고 들어가기"로 바꿨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목표가 작아지니 실패의 기준도 낮아졌고, 러닝머신에서 20분만 걷고 나와도 그날은 성공이었습니다.
몸이 변하는 사람들을 보면 처음부터 의지가 강한 게 아니더라고요. 포기하고 싶은 날에도 일단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소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운동을 안 하면 오히려 몸이 무겁고 하루가 찝찝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억지로 하던 일이 자연스러운 루틴이 된 것입니다.
오늘의 행동 설계가 내일의 방향을 결정한다
영화를 보면서 저는 배리를 비웃거나 동정하기보다, 그의 선택 구조를 꽤 오래 들여다봤습니다. 그는 분명 비범한 조종 실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기체가 손상된 상태에서도 비행을 계속할 만큼 실력이 있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출구를 찾아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능력이 결국 자신을 가장 위험한 자리로 데려갔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실력이 있는 사람이 오히려 더 깊이 들어가게 된다는 점이요. 작은 성공이 자신감을 키우고, 그 자신감이 더 큰 위험을 가볍게 보게 만드는 구조입니다. 이를 행동경제학에서는 과신 편향(overconfidence bias)이라고 합니다. 과신 편향이란 자신의 능력이나 판단이 실제보다 뛰어나다고 착각하는 심리적 오류로, 연속된 성공 경험이 쌓일수록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출처: Behavioral Economics(행동경제학 연구기관)
제가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도 비슷한 함정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첫날 운동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마치 몇 달을 꾸준히 한 사람처럼 뿌듯했습니다. 운동복도 새로 사고, 운동화도 좋은 걸로 바꿨으니 그럴 만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신이 "오늘 하루는 쉬어도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결국 출입 기록이 끊기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행동 설계(behavioral design)란 환경과 맥락을 의도적으로 조정해 원하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반복되도록 만드는 전략입니다. 제가 두 번째 시도에서 달랐던 건 의지가 아니라 환경이었습니다. 운동복을 미리 꺼내두고, 퇴근 동선에 헬스장이 걸리도록 경로를 바꿨습니다. 결심이 아니라 구조를 바꿨더니 오히려 지속됐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메리칸 메이드는 실화인가요, 아니면 허구가 많이 섞인 건가요?
A. 실존 인물 배리 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영화와 실제 사이에는 여러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 배리 실은 1972년 폭발물 밀수로 먼저 체포된 뒤 자의적으로 마약 밀수에 뛰어들었고, 이후 DEA(마약단속국)의 정보원으로 활동하며 주요 재판에서 증인으로 섰습니다. 영화 속 CIA와의 협력 서사는 실제 역사 사건들을 극적으로 재구성한 부분이 상당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Q. 습관을 만들려면 얼마나 반복해야 하나요?
A. 흔히 21일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연구에 따르면 행동이 자동화되기까지는 평균 66일 정도가 걸린다는 결과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기간보다 빈도입니다. 하루를 빠져도 전체 흐름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이어가는 것이 핵심입니다. 제 경험상 "완벽하게 하기"보다 "일단 이어가기"가 훨씬 오래 지속됐습니다.
Q. 아메리칸 메이드 감독이 누구인가요?
A. 《본 아이덴티티》와 《엣지 오브 투모로우》로 유명한 더그 라이만 감독의 2017년 작품입니다. 실화 소재를 유쾌하고 경쾌한 블랙 코미디 톤으로 풀어낸 것이 특징입니다. 톰 크루즈가 배리 실 역을 맡아 연기했습니다.
Q. 메데인 카르텔이 실제로 그렇게 강력했나요?
A. 네,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1980년대 메데인 카르텔은 전 세계 코카인 공급량의 상당 부분을 장악했고,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한때 포브스 선정 세계 부호 순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콜롬비아 정치권과 사법부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던 조직으로, 영화가 다소 가볍게 그린 것보다 실제는 훨씬 폭력적이고 조직적이었습니다.
결론
《아메리칸 메이드》를 다 보고 난 뒤 제게 남은 질문은 "배리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오늘 어떤 선택을 반복하고 있는가?"였습니다. 운동을 할지 미룰지, 계단을 걸어 올라갈지 엘리베이터를 탈지, 핸드폰을 더 볼지 일찍 잠들지. 이 사소한 선택들이 쌓이면 결국 한 사람의 삶이 됩니다.
배리 실의 이야기는 나쁜 방향으로 굳어진 행동 자동화의 끝을 보여줬습니다. 반대로 저는 같은 원리를 좋은 쪽에 쓸 수 있다는 걸 헬스장에서 몇 달을 버티면서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영화를 아직 못 보셨다면 꼭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범죄 스릴러로 보셔도 좋지만, 저처럼 선택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시선으로 보시면 전혀 다른 영화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