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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도 화면을 끄지 못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단순히 아이들이 불쌍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화면 속 아이들보다 '주변 어른들'이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부모님과 외할머니를 모시며 살고 있는 지금의 제 삶 때문인지, 아이들의 외로움보다 보호자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먼저 생각하게 됐습니다.
2004년 칸 영화제에서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단순히 '불쌍하다'는 감정을 넘어, 우리 사회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오랫동안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동방치가 가능했던 구조, 영화가 보여주는 현실
도쿄의 작은 아파트. 엄마 후쿠시마는 집주인에게 장남 아키라와 단둘이 산다고 말하고 계약을 맺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키라를 포함해 네 명의 아이가 그 집에서 살아갑니다. 둘째 쿄코, 셋째 시게루, 막내 유키는 각기 다른 아버지를 두고 있고, 이전 집에서 소란을 피운 탓에 이번엔 존재 자체를 숨겨야 했습니다. 유키는 캐리어 안에 들어간 채로 이사를 왔을 정도였습니다.
이 영화의 실제 모티브는 1988년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스가모 아동방치 사건입니다. 여기서 아동방치(Child Neglect)란 보호자가 아동에게 필요한 의식주, 교육, 의료 등을 제공하지 않고 방임하는 형태의 학대를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학대'라고 하면 신체적 폭력을 먼저 떠올리지만, 전문가들은 방치야말로 장기적으로 아동 발달에 더 심각한 손상을 남길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아이들이 특별히 울거나 소리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린아이답게 투정을 부리는 대신,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모습이 더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슬픈 장면보다 평범한 일상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아이들의 일상에 카메라를 밀착시키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감독은 아역 배우들에게 대본을 주지 않고 그날 촬영에 필요한 대사만 그때그때 알려줬다고 합니다. 이른바 즉흥 연기(Improvisation) 기법인데, 여기서 즉흥 연기란 배우가 사전에 대본을 완전히 숙지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황에 반응하며 자연스러운 감정을 끌어내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 결과가 장남 아키라 역을 맡은 야기라 유야의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14세로, 역대 칸 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였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며 화려한 연출보다 아이들이 밥을 먹고, 빨래를 널고, 동생을 재우는 평범한 장면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감독은 슬픔을 과장하지 않았지만, 그 담담함이 오히려 현실처럼 느껴졌습니다.
- 1988년 스가모 아동방치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 사실과 각색을 결합한 성장 드라마
- 아역 배우 즉흥 연기 기법 적용으로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 구현
- 2004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 및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
- 아동방치는 신체적 학대보다 장기간 은폐되기 쉬운 구조적 특성 보유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묻는 것, 엄마만의 문제가 아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엄마를 욕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을 두고 집을 나선 엄마의 행동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제 머릿속에 가장 오래 남은 질문은 따로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았을까?' 그 질문이 엄마에 대한 분노보다 훨씬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아키라는 열두 살의 나이에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장을 보고, 동생들을 재웁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야 혼자 공부를 펼칩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은 동네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 상황이 몇 달씩 이어지는 동안 이웃도, 학교도, 어떤 어른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저는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께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분들 중 몇몇은 음식보다 "오늘 누가 왔다 갔다"는 사실 자체를 더 반가워하셨습니다. 그 경험이 있어서인지, 영화 속 아이들도 거창한 구조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한 번의 "괜찮니?"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 침묵이 오히려 가장 큰 비극이었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무사한지 확인하는 일이라는 것을요. 영화 속 아이들도 사실은 거대한 도움이 아니라 누군가 한 사람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가족의 해체와 사회의 무관심을 동시에 다룬 작품"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가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책임을 서로에게 넘기는 데 익숙해졌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알겠지.""이웃이 신고했겠지." "가족이 해결하겠지." 이렇게 책임이 계속 이동하는 동안, 정작 아이들은 아무에게도 보호받지 못합니다. 여기서 사회적 무관심(Social Indifference)이란 공동체 구성원이 타인의 위험 신호를 인식하면서도 개입하지 않는 집단적 태도를 가리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라고도 부르는데,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이 책임을 회피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개념입니다. 도시라는 환경이 오히려 이 효과를 극대화합니다(출처: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Bystander Effect 연구).
요즘은 CCTV도 많고, 스마트폰 하나면 서로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기술이 발전한 만큼 사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웃의 이름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당연해진 사회에서, '오지랖'이라는 말은 관심을 차단하는 방어막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사생활을 존중하는 것과 위험을 외면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데도, 두 가지가 같은 말처럼 취급될 때가 있습니다. 그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영화 속 비극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도시 어딘가의 이야기가 됩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되는 질문, 우리가 알고도 지나치는 것
현재 저는 부모님과 외할머니를 모시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돌본다는 것이 단순히 함께 사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매일 체감합니다. 식사는 했는지, 약은 제때 드셨는지, 몸 상태가 어제와 다르지는 않은지를 계속 살피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끝납니다. 아키라가 열두 살의 나이에 동생들의 보호자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영화 속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특히 유키가 엄마를 기다리던 장면에서는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기다리는 모습이 너무 현실 같아서 오히려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제목 《아무도 모른다》는 처음엔 단순히 버려진 아이들의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면 그 제목이 달리 읽힙니다. 저는 이것이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에 더 가까운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비극이 터지면 책임자를 찾아 처벌하는 것으로 사건을 정리하려 합니다. 부모를 처벌하면 끝났다고 생각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아이 네 명이 수개월 동안 학교도 가지 않고 세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살아가는 동안 아무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면, 이건 한 가정의 문제를 넘어선 것입니다.
제가 경험상 느낀 것은, 거창한 시스템보다 사람 한 명의 작은 관심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의 표정이 평소와 다를 때 한 번 안부를 묻는 것, 아이나 어르신이 혼자 있는 모습이 이상해 보일 때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 사회는 거대한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런 작은 관심들이 모여서 만들어집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저에게 생긴 다짐은 그것 하나였습니다. 아이들의 진짜 결말이 엔딩 크레디트에서 끝나지 않듯이, 이 질문도 영화관을 나선 뒤에도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아무도 모른다》는 실화인가요?
A. 1988년 일본 도쿄에서 실제로 발생한 스가모 아동방치 사건을 모티브로 합니다. 다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실화를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시대적 배경을 바꾸고 인물 관계를 각색해 아이들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로 재구성했습니다. 사건 자체보다는 아이들이 살아내는 일상의 무게를 담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Q. 칸 영화제 최연소 남우주연상이라는데 당시 배우 나이가 어떻게 됐나요?
A. 장남 아키라 역을 맡은 야기라 유야는 2004년 칸 영화제 수상 당시 만 14세였습니다. 이는 칸 영화제 역대 남우주연상 수상자 중 최연소 기록으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즉흥 연기 연출 방식이 이 자연스러운 수상 연기의 배경이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Q. 아동방치는 신체 학대와 어떻게 다른가요?
A. 아동방치는 보호자가 아동에게 필요한 의식주, 교육, 의료 등을 제공하지 않는 형태의 학대입니다. 눈에 보이는 상처가 남지 않기 때문에 신체적 학대보다 발견이 어렵고 장기간 은폐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방치가 아동의 정서 발달과 뇌 발달에 신체 학대 못지않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Q.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다른 영화도 비슷한 주제인가요?
A.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의 해체, 혈연의 의미, 사회적 소외를 꾸준히 탐구해 온 감독입니다. 《걸어도 걸어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등이 비슷한 계열의 작품으로 꼽히며, 특히 《어느 가족》은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습니다. 《아무도 모른다》를 인상 깊게 본 분이라면 같은 감독의 가족 3부작 계열 작품을 연이어 보실 것을 권합니다.
Q. 이 영화가 지금도 의미 있는 이유?
A. 1988년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지만 저는 오래된 이야기라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뉴스에서는 지금도 방임과 아동학대 사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누군가를 외면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결론
《아무도 모른다》는 울게 만드는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너무 담담해서 더 오래 남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 가지 생각이 정리됐습니다. 비극은 한 사람의 잘못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이웃도, 학교도, 지나치는 어른들도 모두 조금씩 아이들을 놓쳤고, 그 작은 외면들이 쌓여 비극이 완성됐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저는 특별한 결심을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가족에게 먼저 말을 걸고, 주변 사람의 안부를 한 번 더 묻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일은 거창한 제도가 아니라 그런 작은 관심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무관심하게 살아간다면, '아무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을 것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 영화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인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꼭 한 번 보시기를 권합니다. 보고 나서 주변 사람의 안부를 한 번 더 물어보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제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