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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래드 피트가 나온 전쟁 영화라고 해서 가볍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스파이 액션 영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독일군을 속이고 암살 작전을 수행하는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일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 머릿속에 남은 것은 총격전도, 첩보 작전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가장 믿는 사람이 사실은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이 오래 남았습니다.

    살면서 사람을 믿었다가 실망한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인간관계에서도 그랬습니다. 믿음은 쌓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무너지는 건 정말 순식간이라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얼라이드》는 그런 감정을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신뢰, 무너지는 데는 단 하루면 충분했다

    영화 《얼라이드》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설렘보다 신뢰였습니다. 보통 사랑 영화라고 하면 첫눈에 반하거나 운명적인 만남을 떠올리기 쉽지만, 맥스와 마리안의 관계는 조금 달랐습니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서로를 믿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 상대방이 실수하면 자신의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사회생활 초창기가 떠올랐습니다.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는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모두가 친절해 보였지만 진심인지 업무상 관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것은 신뢰란 특별한 사건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작은 행동들이 쌓여야 비로소 믿음이 생긴다는 것이었습니다.

    맥스와 마리안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임무를 위해 부부인 척 연기했지만, 서로를 지켜주는 작은 행동들이 쌓이면서 진짜 감정이 만들어집니다. 저는 이 부분이 현실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실제 삶에서도 사랑은 영화처럼 거창하게 시작되지 않습니다. 아플 때 걱정해 주는 문자 한 통, 힘든 날 조용히 들어주는 대화 한 번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특히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이 미래를 이야기하는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 어쩌면 사람들은 행복을 거창하게 생각하지만 결국 원하는 것은 소소한 일상인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부모님이 계시고, 고양이들이 반겨주는 평범한 저녁이 가장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사랑은 낭만보다 현실에 가까웠고, 그래서 더 깊게 다가왔습니다.

    사랑은 감정보다 책임에 가까웠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저는 스파이 이야기보다 가족에게 더 눈길이 갔습니다. 특히 딸을 바라보는 맥스와 마리안의 표정이 그랬습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도 결국 가장 지키고 싶었던 것은 가족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젊었을 때 저는 사랑이 설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하루 종일 생각나고, 만나기 전부터 가슴이 뛰는 감정 말입니다. 실제로 학창 시절 좋아했던 선배를 따라 같은 길을 돌아가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사랑의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부모님이 연세가 들고, 가족을 돌보는 일이 일상이 되면서 사랑은 설렘보다 책임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퇴근 후에도 마음이 완전히 편한 날이 많지 않습니다. 부모님은 괜찮으신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살피게 되고, 집에 도착하면 바론이와 쿠키 상태부터 확인합니다. 특히 심장병을 앓고 있는 바론이 약을 먹는 모습을 볼 때면 사랑이라는 것이 감정보다 책임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는 사랑을 행복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사랑이 의무와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마리안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남편과 딸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 장면을 보며 사랑은 웃는 순간보다 힘든 순간에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사랑은 "얼마나 좋아하는가"보다 "얼마나 끝까지 남아 있는가"의 문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생, 누구나 말하지만 누구나 하지는 못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어톤먼트》가 떠올랐습니다. 두 영화 모두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중심은 사랑과 선택입니다. 다만 《어톤먼트》가 후회에 대한 이야기라면 《얼라이드》는 희생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시간도 부족하고 돈도 부족합니다. 체력도 마음도 늘 넉넉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도 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를 가족과 함께 돌보고 있습니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언제 상태가 나빠질지 몰라 불안해하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체력이 힘들었던 날보다 마음이 무너졌던 날이 더 많았습니다.

    가끔은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것 역시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랑은 좋은 순간에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힘든 순간에도 떠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속 마리안의 선택이 더욱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녀의 행동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는 모습은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사랑을 설렘으로 포장하지만 실제 삶에서 사랑은 희생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내 시간을 내어주고, 내 계획을 바꾸고, 내 욕심을 내려놓는 일.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보며 스파이 이야기보다 사랑의 무게를 더 오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무리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스파이의 정체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과연 끝까지 누군가를 믿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살아보니 사랑보다 어려운 것이 신뢰였고, 신뢰보다 어려운 것이 끝까지 곁에 남아 있는 일이었습니다. 믿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보다 신뢰를 더 어려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라이드》는 전쟁 영화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스파이 영화가 아니라, 사랑과 신뢰 그리고 책임에 대한 영화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참고:https://www.youtube.com/watch?v=tJpn7S0CG2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