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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스, 원치 않은 책임의 무게

dailyroutine15 2026. 3. 19. 00:40

목차


    영화 보스, 원치 않은 책임의 무게

    누군가는 하고 싶어서 책임자가 되지만, 누군가는 피할 수 없어서 그 자리에 섭니다. 영화 《보스》를 보면서 저는 웃기는 보스 선거보다 이 차이가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최근 노부모님을 부양하는 일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저 역시 준비해서 선택한 것이 아닌데 어느 순간 책임져야 할 일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순태가 원하는 삶과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 사이에서 버티는 모습이 그래서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보스가 되고 싶지 않은 남자

    순태가 원하는 것은 조직의 정점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중국집 미미루가 있고, 조직원이 아니라 음식으로 인정받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그런데 조직의 차기 보스를 정해야 하는 상황이 찾아오면서 그의 계획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보통 조직을 소재로 한 영화라면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모습을 예상하게 되지만, 《보스》는 반대입니다.

    순태와 강표는 각자 원하는 삶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보스 자리를 상대에게 넘기려고 합니다. 반면 판호는 그 자리를 원합니다. 모두가 같은 것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욕망이 부딪친다는 점에서 웃음이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저는 누가 보스가 될 것인가 보다 다른 부분에서 멈췄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자리라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

    순태에게는 조직이 그런 자리였다면, 현실에서는 가족이나 회사가 그 자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날 내 몫이 되어버린 일

    부모님의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는 사실을 체감하면서 저에게도 비슷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가 공식적으로 "이제부터 당신이 책임자입니다"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병원 일정과 생활 문제를 챙기고 앞으로 필요한 도움을 알아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가 해야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처음부터 담담하게 받아들인 것도 아닙니다. 제 일과 개인적인 계획이 있는데 왜 갑자기 삶의 우선순위를 바꿔야 하는지 답답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순태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향해 가려다가 다시 조직의 문제에 붙잡히는 모습이 마냥 코미디처럼 보이지만은 않았습니다.

    물론 영화 속 조직과 부모님을 돌보는 현실을 같은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닮았다고 느낀 것은 상황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순간 내 몫이 되어 있는 책임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책임을 전부 혼자 짊어지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책임지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필요한 도움을 알아보고 생활 방식과 시간을 조정하면서, 책임을 없애기보다는 오래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 바꾸는 쪽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웃음으로 넘기기에는 조금 무거웠던 것

    《보스》의 재미는 책임져야 할 자리를 서로 차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 피하려 한다는 데 있습니다. 높은 자리를 탐내는 조직 영화의 익숙한 방향을 뒤집어 놓은 셈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설정이 재미있는 만큼 조금 아쉽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코미디이기 때문에 책임에서 오는 피로나 오래 지속되는 부담까지 깊게 파고들지는 않습니다. 순태에게 닥치는 문제도 빠른 사건과 인물들의 소동 속에서 흘러갑니다.

    현실의 책임은 그렇게 빨리 지나가지 않습니다. 부모님을 돌보는 일만 해도 오늘 한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고 내일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도 필요하고 비용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내 생활을 계속 조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흔히 하는 "책임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책임을 맡으면서 이전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것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치기도 하고 포기해야 하는 것도 생깁니다. 성장했다는 결과만 이야기하면 그 사이에 있었던 부담은 너무 쉽게 사라집니다.

    물론 코미디 영화에 현실의 부양 문제까지 깊이 다뤄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보스》가 그런 문제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해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웃으라고 만든 상황에서 제 현실과 겹치는 부분이 보였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책임을 맡아도 내 삶은 남아 있어야 한다

    순태를 보면서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은 보스라는 자리보다 그가 원래 원했던 삶이었습니다. 책임을 맡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꿈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 역시 부모님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제 생활 전체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할 수 있는 일과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을 구분하고 필요한 도움을 찾는 것. 지금은 그것도 책임을 피하는 행동이 아니라 책임을 오래 이어가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순태에게 공감하면서도 영화와 조금 거리를 두게 됐습니다. 현실에서는 누군가가 대신 보스가 되어준다고 문제가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족 안에서도 각자 할 수 있는 일이 다르고, 결국 누군가는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 순간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한 사람의 삶 전체가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보스》를 보고 남은 생각

    순태가 원했던 것은 높은 자리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삶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제게 이 영화는 누가 보스가 되는가 보다 원하지 않았던 책임이 내 몫이 되었을 때 내 삶을 어디까지 내어줄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제가 오래 본 것은 보스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생각해보니 제가 순태에게서 본 것은 조직원의 모습보다 자신의 삶을 놓치고 싶지 않은 한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코미디인데도 그 부분만큼은 쉽게 웃고 지나가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을 챙겨야 하는 현실도 앞으로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시간을 제 삶이 사라지는 기간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모님에게 필요한 몫을 하면서도 제가 살아가야 할 시간은 따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그래서 《보스》를 보고 책임을 잘 감당해야겠다는 결론보다 질문 하나가 남았습니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생겼을 때, 내 삶을 어디까지 내어주는 것이 맞을까.

    아직 저도 그 선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아마 부모님을 돌보는 시간이 계속되는 동안 조금씩 다시 정하게 될 것 같습니다.


    참고

    영화 《보스》의 인물 및 기본 설정은 공개된 작품 소개 자료를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