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에서 나오는데 머릿속에 "니가 좋아, 니가 좋아"가 계속 맴돌았습니다. 와일드씽은 1990년대 케이팝 초창기를 배경으로 한 B급 코미디 영화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시절이 고스란히 떠올랐고, 웃으면서도 무언가 아쉬운 감정이 함께 남았습니다.
Y2K 감성과 저의 그 시절 이야기
영화를 보자마자 직접 겪어보니 알 수 있는 감각이 있습니다.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넉넉한 바지, 헤드폰, 한강공원 댄스 배틀. 저는 그 장면들이 단순한 세트장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제가 중학교를 다니던 그 시절이 실제로 저랬거든요.
당시에는 유튜브는커녕 인터넷조차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가족들과 텔레비전 앞에 모여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챙겨 보고, 가요톱10 순위 발표에 온 신경을 집중했습니다. MBC 대학가요제, 강변가요제는 단순한 경연 프로그램이 아니라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는 공식 무대였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가요톱10에 처음 나왔을 때의 그 충격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저도 그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 신승훈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쉬는 시간만 되면 교실 뒤에서 친구들과 춤 연습을 했고, 집에 와서는 거울 앞에서 혼자 따라 해 봤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뜨거워지는 기억인데, 그때는 그게 세상에서 제일 진지하고 멋진 일이었습니다.
와일드씽은 바로 그 감각, 그 시절의 공기 같은 것을 영화 전반에 촘촘하게 심어 놓았습니다. 와일드씽이 활용한 핵심 장치 중 하나가 바로 Y2K 미학(aesthetics)입니다. Y2K 미학이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의 패션, 색감, 문화 코드를 현재 시점에서 복고풍으로 재해석한 스타일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그것이 단순한 복고 소비에 그치지 않고, 당시 대중음악 시장의 구조적 맥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는 점이 제가 보기에 가장 영리한 선택이었습니다.
오정세와 강동원, 배우가 만드는 물성
영화를 보면서 제가 처음으로 크게 웃음을 터뜨린 건 강동원이 버스 안에서 헤드폰을 끼고 있는 오프닝 장면이었습니다. 극장 스크린으로 그 얼굴을 크게 보는 순간, 주변 관객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40대 중반의 배우가 저 비주얼이 가능하다는 게 일종의 폭력처럼 느껴졌거든요.
거기다 강동원 배우가 직접 브레이크댄스 동작과 헤드스핀을 소화하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헤드스핀이란 비보이 댄스의 기술 중 하나로, 머리를 바닥에 짚고 몸 전체를 회전시키는 고난도 동작을 말합니다. 스턴트 대역에 의존하지 않고 배우 본인이 직접 해냈다는 사실이 스크린에서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영화 비평 용어로는 이것을 물성(物性)이라고 표현합니다. 물성이란 화면 속 장면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실체감, 즉 컷 편집이나 CG가 아닌 진짜가 찍혔다는 감각을 말합니다. 그 감각이 살아 있으니 관객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신뢰가 생깁니다.
그런데 저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강동원이 아니라 오정세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오정세가 영화 전체를 끌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의 캐릭터는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stereotype), 즉 대중이 즉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특정 시대나 집단의 특성을 과장해서 표현한 유형 인물입니다. 당시 실제로 존재했던 겉모습과 속내가 완전히 다른 발라드 가수 이미지를 과장하고 비틀어서 극한의 코미디로 만들어냈는데, 그 능청스러움이 정말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와일드씽에서 눈여겨볼 연출 포인트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주연 배우가 직접 소화한 브레이크댄스와 헤드스핀 퍼포먼스
- Y2K 시대의 음악 방송 문법을 그대로 재현한 음방 장면
- 소속사 사장, 레퍼, 여가수 등 당시 시대를 대표하는 스테레오타입 캐릭터 배치
- 그루핑(grouping) 방식의 서사 생략, 즉 관객이 이미 알고 있는 장면은 과감히 축약하는 편집
웃음은 남았지만, 사람 이야기는 조금 부족했다
극장에서 나오는데도 머릿속에는 계속 "니가 좋아, 니가 좋아"가 맴돌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영화 내용보다 그 노래가 더 오래 남았습니다. 그만큼 오정세라는 배우의 존재감은 엄청났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정말 많이 웃었습니다. 특히 오정세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저 배우는 대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 걸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강동원이 영화의 얼굴이라면, 오정세는 영화의 엔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웃음이 커질수록 이상하게 아쉬움도 함께 커졌습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을 웃기기 위해 달립니다. 조금 진지해질 만하면 바로 개그가 들어오고, 감정이 쌓일 만하면 다시 웃음으로 방향을 틀어버립니다.
물론 그게 이 영화의 스타일이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저는 가끔 "조금만 더 머물러도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제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는 무조건 웃긴 게 좋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영화를 보고 나오면 사람 이야기가 남는 작품에 더 끌립니다. 특히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치매를 앓던 외할머니를 돌보며 지낸 시간들이 있다 보니 웃음 뒤에 숨겨진 감정을 더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와일드씽을 보면서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도 결국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이고, 한때는 누구보다 빛났지만 지금은 잊힌 사람들인데, 그 외로움이나 상실감은 생각보다 깊게 다루지 않는구나. 물론 감독은 의도적으로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슬픔보다 웃음을 선택했고, 눈물보다 흥겨움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군요. 제가 중학교 때 서태지 노래에 맞춰 춤추던 친구들도 지금은 각자 생계를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당시 가요톱10을 보며 열광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부모를 돌보거나 자녀 학원비를 걱정하는 나이가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와일드씽이 조금 더 욕심을 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습니다. 그 시절을 웃음으로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의 마음까지 함께 보여줬다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를 좋아합니다.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크게 웃었고, 잠시나마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 기분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니가 좋아"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고, 그날 밤에는 오래전 친구들 얼굴까지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와일드씽의 가장 큰 힘은 웃음이 아니라 추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잊고 지내던 시간을 잠시 꺼내 보여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자기 역할을 해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