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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완벽할 수 있을까요. 《퍼펙트 데이즈》를 처음 봤을 때 저는 그 질문 앞에서 오래 멈췄습니다. 도쿄의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는 중년 남자 히라야마.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같은 일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나무를 바라봅니다. 처음에는 이런 삶이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무렵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계속 바라보게 된 것은 평온한 히라야마가 아니라, 그 평온함이 깨질 때마다 달라지는 그의 얼굴이었습니다.
코모레비, 같은 나무를 매일 찍는 이유
히라야마는 점심시간이면 필름카메라를 꺼내 나무를 찍습니다. 정확히는 나뭇잎과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바라봅니다. 일본어로 이런 빛을 코모레비(木漏れ日)라고 부릅니다.
처음에는 꽤 감성적인 장면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사람. 여기까지만 보면 《퍼펙트 데이즈》를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는 영화'라고 설명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니 저는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나무는 같은 자리에 있지만 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매번 똑같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움직이면 그림자의 모양도 달라집니다. 히라야마가 살아가는 방식도 그랬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지만 사람 하나가 들어오면 하루의 모양이 금방 달라집니다.
영화 초반 히라야마의 생활에는 빈틈이 거의 없습니다. 이불을 개고, 양치하고, 식물에 물을 줍니다. 집을 나와 캔커피를 하나 뽑고 차에 타면 그날 들을 카세트테이프를 고릅니다. 출근해서는 남들이 대충 지나칠 법한 곳까지 꼼꼼하게 청소합니다.
눈에 들어왔던 것은 평일 출근길에 손목시계를 챙기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영화가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않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반복한 생활이라 굳이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도 몸이 순서를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반면 주말에는 손목시계를 착용합니다. 저에게는 그 작은 차이가 평일과 다른 시간이 시작됐다는 표시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히라야마의 하루를 가장 자주 흔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었습니다.
동료 타카시와 여자친구 아야가 차에 타고, 아야가 카세트테이프를 고릅니다. 평소라면 히라야마가 직접 했을 일입니다. 그때 잠깐 지나가는 그의 뚱한 표정이 재미있었습니다. 늘 평온해 보이던 사람에게도 자기 방식이 깨지는 순간의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야가 음악을 듣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표정이 다시 풀립니다.
야쿠쇼 코지의 연기가 좋았던 것도 이런 순간들 때문입니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데도 카메라가 얼굴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감정이 조금씩 변하는 게 보입니다. 웃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딘가 쓸쓸하고, 무표정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작은 미소가 지나갑니다.
그래서 저는 히라야마가 아무 일도 없는 순간보다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그의 하루 안으로 들어왔을 때 더 궁금해졌습니다.
부러웠지만 히라야마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히라야마의 생활이 몇 번이나 부러웠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맡은 일을 끝내고, 목욕하고, 책을 읽고 잠듭니다. 새로운 물건을 계속 사지도 않고 남들에게 자신의 생활을 보여주려고 애쓰지도 않습니다. 누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크게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한참 뒤에야 제가 무엇을 부러워했는지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소박함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로 하루를 만들어놓은 삶이 부러웠던 겁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저는 히라야마에게 완전히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들어오면 그의 생활은 흔들립니다. 타카시 때문에 평소의 이동 경로가 달라지고, 아야에게 음악 선택권을 내주게 됩니다. 조카 니코가 갑자기 찾아왔을 때는 변화가 더 커집니다. 니코는 차에 잠깐 탔다가 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히라야마의 집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히라야마는 왜 왔느냐고 몰아붙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공간을 내주고 함께 출근합니다. 니코 역시 처음에는 삼촌의 생활을 스마트폰으로 바라보다가 나중에는 직접 청소를 돕고, 히라야마가 찍던 나무에도 관심을 갖습니다.
저는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들이 좋았습니다. 히라야마의 생활이 깨졌는데 이상하게도 이전보다 조금 더 따뜻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과 거리를 두면 상처받을 일도 줄어들 겁니다. 그런데 그런 평온함까지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물론 혼자 있는 삶이 잘못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혼자 밥을 먹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시간을 불안해하지 않는 히라야마의 모습은 단단해 보였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는 세상에서 도망친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한 삶의 크기를 스스로 결정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더 많은 돈, 더 좋은 물건, 더 넓은 인간관계가 반드시 더 좋은 하루를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 부분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영화가 그의 과거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 만큼, 저는 히라야마의 현재를 곧바로 '행복한 삶'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특히 화장실에서 혼자 울고 있는 아이의 손을 잡아주는 장면과 그날 밤 꿈속에 어른과 아이가 함께 등장하는 순간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저는 두 장면을 따로 보기 어려웠습니다. 히라야마가 입으로 설명하지 않는 어떤 기억이 잠깐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히라야마는 행복해서 말이 없는 사람이라기보다, 말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오래 익힌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 텐데 왜 그렇게까지 닦을까
《퍼펙트 데이즈》에서 의외로 가장 오래 남은 건 화장실을 청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히라야마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을 것 같은 부분까지 살핍니다. 거울을 확인하고, 비데 노즐을 닦고, 변기 안쪽까지 청소합니다. 동료가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 텐데 왜 저렇게까지 할까.
그런데 히라야마는 특별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칭찬해 주기를 기다리는 모습도 없습니다. 그냥 자기 일을 합니다.
오히려 그래서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 중에는 한 번 해놓으면 영원히 남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청소는 다시 해야 하고, 정리한 방은 다시 어질러집니다. 오늘 해결한 문제가 내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어차피 다시 해야 할 일이니 오늘 대충 해도 된다는 결론으로 가면 하루는 금방 엉망이 됩니다.
저는 이 부분만큼은 히라야마에게 동의했습니다.
결과가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와 지금 내가 어떻게 하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해서 자기 기준까지 낮출 필요는 없습니다.
영화에는 개성 있게 설계된 여러 공공 화장실이 등장하지만, 저는 공간 자체보다 그곳을 매일 다시 깨끗하게 만들어놓는 히라야마가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화장실이라는 공간과 히라야마의 삶도 어딘가 닮았습니다.
완벽하게 만들어놓아도 다시 흐트러집니다.
그리고 다음 날 또 정리합니다.
저는 그 반복을 무조건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지겹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반복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히라야마는 다음 날 다시 청소 도구를 듭니다.
그 모습에서 제가 본 것은 '작은 것에 만족하면 행복해진다'는 교훈보다는 완벽하게 유지되는 삶 같은 것은 애초에 없다는 사실에 가까웠습니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었던 얼굴
그래서 마지막 출근길이 좋았습니다.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 흐르고 카메라는 히라야마의 얼굴을 오래 바라봅니다. 그는 웃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습니다. 다시 미소가 나타났다가 또 사라집니다.
저는 그 표정을 행복의 증거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 사람 안에 여러 감정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얼굴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면서도 외로울 수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길을 후회하지 않으면서도 가끔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가 괜찮았다고 해서 힘든 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히라야마의 삶을 행복과 불행 중 하나로 골라 설명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저도 이 영화를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얼굴을 보고 나서는 그 해석만으로는 조금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닮고 싶었던 것도 히라야마의 생활방식 자체는 아니었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흔들린 다음에도 다시 자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히라야마에게서 제가 가져가고 싶었던 건 그쪽에 더 가까웠습니다.
영화를 보고 남은 두 가지 질문
Q. 퍼펙트 데이즈에서 코모레비는 어떤 의미인가요?
A. 코모레비(木漏れ日)는 나뭇잎이나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을 가리키는 일본어입니다. 영화에서 히라야마가 점심시간마다 필름카메라로 기록하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저는 매일 같은 나무를 찍지만 빛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진다는 점이 히라야마의 하루와 닮았다고 봤습니다. 반복되는 것처럼 보여도 완전히 같은 하루는 없다는 식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Q. 히라야마는 왜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나요?
A. 영화는 히라야마의 과거를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조카 니코와 여동생이 등장하면서 가족과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는 사실과 아버지와의 관계를 짐작하게 하는 단서가 조금씩 나타날 뿐입니다. 그래서 히라야마가 지금의 삶을 선택한 이유를 하나로 단정하기보다는, 설명되지 않은 과거까지 포함해 그의 현재를 바라보는 편이 이 영화와 더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날에도 그는 다시 문을 열 겁니다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제가 닮고 싶었던 건 히라야마의 생활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멀리하고 혼자 살아야 행복하다는 생각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더 많은 것을 가져야 좋은 삶이 된다는 생각 역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조금 시시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오래 기억하게 된 것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 것을 알면서도 오늘 청소하는 사람.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들어와 하루가 흔들려도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는 사람. 그리고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또 출근하는 사람.
마지막 히라야마의 얼굴이 행복한지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굳이 답을 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히라야마는 이불을 개고 식물에 물을 준 뒤 문을 열고 나갈 것 같습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은 그다음 아침이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