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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흔히 전쟁이 총성과 함께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헌터 킬러》를 보고 나니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잠수함도, 어뢰도, 핵전쟁의 위기도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의 욕심이 진실을 가리고, 서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과정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몇 년 전 회사 회의실에서 겪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자신의 책임부터 피하려던 사람들. 규모는 전혀 달랐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이용하는 모습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현실과 닮아 있었습니다.



    잠수함 전술, 영화가 보여주는 실제 긴장감

    《헌터 킬러》의 배경은 러시아 바렌츠 해입니다. 바렌츠 해란 북극해 남서쪽에 위치한 해역으로, 러시아 북방함대의 핵심 작전 구역입니다. 냉전 시절부터 미국과 러시아 잠수함이 서로를 추적하던 역사적인 긴장 수역이죠. 영화는 바로 이 공간에서 미 해군 공격형 잠수함 USS 아칸 소함이 러시아 잠수함의 침몰 현장을 마주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눈여겨본 건 음파탐지(sonar) 장면이었습니다. 소나란 수중에서 음파를 발사하거나 주변 음향을 수동으로 수신해 적 잠수함의 위치를 파악하는 장비입니다. 영화 속에서 아칸 소함 승조원들이 숨을 죽이며 "ultra quiet(극정숙)" 상태를 유지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실제 잠수함 전술에서 패시브 소나(passive sonar), 즉 능동적으로 음파를 쏘지 않고 수동으로만 탐지하는 방식을 사용할 때 필수적인 행동 수칙입니다. 쉽게 말해, 먼저 소리를 내는 쪽이 먼저 들킨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잠수함 영화는 과장이 심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그 안에서도 제법 현실적인 묘사를 유지하는 편이었습니다. 조 글래스 함장이 어뢰를 피하기 위해 급강하를 선택하는 장면도, 카운터메저(countermeasure), 즉 적 어뢰를 혼란시키는 교란 장비를 발사하는 전술도 실제 잠수함 교전 원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카운터메저란 음향 미끼나 버블 방어막을 이용해 유도 어뢰의 탐색 기능을 속이는 방어 기술입니다.

    • 패시브 소나(passive sonar): 음파를 발사하지 않고 수동으로 적 위치를 탐지하는 방식
    • 카운터메저(countermeasure): 어뢰를 유인하는 음향 미끼 혹은 기포 방어막
    • 울트라 콰이엇(ultra quiet): 적 탐지를 피하기 위해 함내 소음을 극도로 줄이는 전술 상태

    실제로 미 해군은 잠수함 승조원 훈련에서 소음 관리와 심층 기동을 핵심 교육 항목으로 다루고 있습니다(출처: U.S. Navy 공식 홈페이지). 영화가 이런 요소들을 드라마화한 방식은 과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구조 자체는 꽤 설득력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요약: 헌터 킬러는 패시브 소나·카운터메저 등 실제 잠수함 전술을 비교적 충실히 묘사한 액션 영화입니다.

     

    신뢰와 권력, 위기를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었습니다

    영화의 실제 갈등은 러시아 잠수함이 아니라 러시아 국방부장관의 쿠데타에서 시작됩니다. 자국 대통령을 감금하고, 미국을 도발해 전쟁을 유도하려는 음모였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그 회사 회의실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신제품 출시 직후 문제가 생겼을 때, 회의는 해결 방향을 찾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생산, 설계, 구매 부서가 서로 책임을 넘기는 10분이 지나고 나서야 저는 깨달았습니다. 문제의 크기보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일이 먼저인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조직은 위기에서 더 느리게 움직인다는 것을요.

    영화 속 쿠데타를 일으킨 국방부장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 구조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거짓 정보를 만들었습니다. 정보 조작으로 양국 함대가 러시아 영해에서 충돌 직전까지 치달았고, 오판(misperception)이 실제 전쟁으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 됐습니다. 여기서 오판이란 상대방의 의도를 잘못 해석해 불필요한 갈등이 확대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국제 관계 연구에서도 전쟁의 상당수는 능력의 차이가 아닌 오판에서 비롯된다는 분석이 주요 연구 결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출처: RAND Corporation).

    반면 조 글래스 함장은 달랐습니다. 그는 러시아 함장 안드로포프를 처음부터 적으로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제 경험상, 위기 상황에서 가장 빠르게 판단력이 흐려지는 순간은 상대를 이미 적으로 정해놓고 대화를 시작할 때였습니다. 글래스는 그 반대였습니다. 진실을 확인하기 전까지 사람을 쉽게 적으로 만들지 않았고, 그 선택이 결국 전쟁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단순히 잠수함 전술을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라, 신뢰가 위기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다만 영화를 보면서 아쉬웠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영화는 조 글래스와 안드로포프의 신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가지만, 러시아 대통령이나 쿠데타 세력 내부의 시선을 조금 더 보여줬다면 갈등 구조가 훨씬 입체적으로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선과 악이 분명한 전개도 장점이지만,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인물들의 고민까지 담았다면 긴장감뿐 아니라 설득력도 한층 높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약: 권력을 지키려는 오판과 정보 조작이 위기를 만들고, 신뢰를 먼저 선택하는 리더십이 그 위기를 끝냅니다.

     

    조직 문화, 영화가 끝난 뒤 회의실이 더 오래 남은 이유

    일반적으로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현실과 너무 다르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저도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쿠데타가 일어나거나 국가 간 전쟁 직전까지 가는 상황은 일상에서 흔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제 경험상, 그 심리 구조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책임 회피(blame-shifting)라는 행동이 있습니다. 이는 조직 내 문제 발생 시 자신의 책임 범위를 축소하고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심리 방어 기제입니다. 이 현상은 직장, 학교, 지역 사회 어디에서도 관찰되는 보편적인 인간 행동 패턴으로, 조직심리학 연구에서도 반복적으로 다루어지는 주제입니다. 저는 그 회의실에서 이 패턴이 작동하는 걸 실시간으로 보았습니다.

    반대로 제가 오래 기억하는 조직은 달랐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 잘못인가?"보다 "어떻게 같은 일이 다시 생기지 않게 할까?"를 먼저 물었습니다. 그런 조직에서는 실수를 숨기기보다 빨리 공유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습니다. 책임을 먼저 따지는 곳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게 됩니다. 문제가 커질 때까지 기다리는 문화가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조직에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도 필요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제가 아쉽게 느끼는 것은 권력 자체가 아니라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이용하는 문화입니다. 회사에서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먼저 "우리 부서 책임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을 여러 번 봤습니다. 그 순간부터 문제는 해결 대상이 아니라 방어 대상이 됩니다. 영화 속 쿠데타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국민은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고 결국 모두를 위험하게 만들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이었습니다. 영화가 잠수함 전투보다 조직 안에서의 신뢰 문제를 더 선명하게 건드릴 줄은 몰랐거든요. 요즘은 SNS 게시글 하나, 기사 제목 하나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습니다. 확인보다 속도가 우선시 되는 환경에서, 글래스처럼 끝까지 사실을 확인하고 신뢰를 먼저 선택하는 태도는 오히려 더 어려운 결정이 되어버렸습니다.

    다만 조금 아쉬웠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영화는 잠수함 전투와 탈출 작전을 긴박하게 보여주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정작 쿠데타를 일으킨 국방부장관이 왜 그렇게까지 권력에 집착하게 되었는지는 깊게 다루지 않습니다. 단순히 '악당'으로 소비되기보다 그의 선택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조금 더 보여줬다면, 권력이 사람을 어떻게 변하게 만드는지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요약: 책임 회피 문화는 조직을 침묵하게 만들고, 신뢰를 먼저 선택하는 문화만이 실질적인 위기 대응력을 만들어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헌터 킬러 영화, 실제 잠수함 전술이랑 얼마나 비슷한가요?

    A. 일반적으로 할리우드 잠수함 영화는 과장이 많다고 알려져 있는데, 헌터 킬러는 패시브 소나 운용, 극정숙 상태 유지, 카운터메저 발사 등 핵심 전술 개념을 비교적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드라마적 과장이 없다고는 할 수 없고, 실전 교전 속도나 통신 절차는 실제와 차이가 있습니다.

     

    Q. 영화 속 쿠데타 설정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인가요?

    A. 영화적 허구가 강하게 개입된 설정이지만, 군부 내 권력 갈등이 국제적 긴장으로 이어진 실제 역사 사례는 존재합니다. 오판(misperception)이 전쟁을 유도한다는 개념은 국제 안보 연구에서도 오래된 핵심 주제입니다. 영화가 이 구조를 단순화해 보여주는 방식은 현실의 축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조 글래스 함장 캐릭터는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건가요?

    A. 영화 속 조 글래스는 원작 소설 《헌터 킬러》의 가상 인물입니다. 다만 사관학교가 아닌 현장 경험으로 함장 자리에 오른 인물 설정은, 미 해군 내 엔리스티드(enlisted) 출신 장교 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엔리스티드란 사관학교 입학 없이 일반 수병으로 입대해 경력을 쌓아 장교로 진급하는 경로를 말합니다.

     

    Q. 이 영화가 단순 액션 영화가 아닌 이유가 뭔가요?

    A. 표면적으로는 잠수함 전술과 특수부대 작전을 다루지만, 영화의 핵심 갈등은 신뢰와 권력 남용 사이의 구도입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인물과 마지막까지 신뢰를 선택한 함장의 대비가 영화 전체를 관통합니다. 그 구도가 직장이나 일상 조직에서도 쉽게 대입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갖고 있어서, 저는 이 영화를 단순 오락물로만 기억하지 않습니다.

     

    결론

    《헌터 킬러》를 보고 나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권력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지만, 위기를 끝내는 건 결국 신뢰라는 것입니다. 글래스 함장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가 끝까지 사실을 확인하려 했고 사람을 쉽게 적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이 막혔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저에게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잠수함이 아니라 질문 하나였습니다. 위기가 왔을 때 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일까, 아니면 내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일까. 《헌터 킬러》는 전쟁을 다루지만, 결국 사람을 다루는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잠수함 액션보다 신뢰와 책임에 관한 이야기로 더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8fir2oAso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