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5년 전 제 어머니가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할 뻔한 적이 있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뒤 가리봉 쪽에서 범인을 직접 추적했고, 다행히 큰 피해는 막았습니다. 그날 이후 보이스피싱이라는 말을 들으면 뉴스보다 먼저 당시의 전화와 다급했던 분위기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시민덕희〉를 보면서도 범인을 잡아가는 과정의 시원함보다 한 가지 의문이 먼저 남았습니다.
왜 피해를 입은 사람이 범인을 직접 찾아 나서야 했을까.
중국으로 향하는 순간, 응원보다 걱정이 앞섰다
작품 속 주인공은 집에 불이 난 데다 돈까지 잃으며 순식간에 벼랑 끝으로 밀립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던 재민이 다시 연락해 조직을 신고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움직입니다.
좋았던 점은 주인공을 처음부터 강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범죄 조직의 움직임을 미리 읽는 특별한 능력도 없습니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어진 한 사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선택할 뿐입니다.
이 대목은 제 경험과 가장 가까웠습니다.
어머니 사건 당시에도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전화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상황을 파악한 뒤 움직여야 할 곳으로 움직였습니다.
다만 스크린과 실제 삶 사이에는 분명한 거리가 있습니다.
극 중 행동은 관객에게 쾌감을 줄 수 있지만, 실제로 피해자가 범죄 조직을 직접 추적하는 일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범인에게 가까워질수록 응원보다 걱정이 앞섰습니다.
라미란을 계속 웃기지 않은 선택
〈시민덕희〉에는 코미디가 적지 않지만 웃음을 주인공 한 사람에게 몰아주지는 않습니다.
염혜란과 장윤주가 맡은 인물들이 분위기를 풀어주는 동안 라미란이 연기한 주인공은 사건의 무게를 붙잡습니다.
이 배치가 꽤 효과적이었습니다.
만약 중심인물까지 계속 웃음을 담당했다면 돈을 잃고 아이들과 떨어지며 삶이 흔들리는 감정까지 가벼워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장윤주가 연기한 숙자는 높은 에너지로 분위기를 바꾸면서도 혼자서는 꺼내기 어려운 감정을 대신 드러냅니다.
덕분에 추적극에서 코미디로 넘어가도 장면이 따로 노는 느낌이 적습니다.
반면 조직 총책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그려졌습니다. 핵심 대립 인물임에도 인물 자체의 복잡함보다는 위협적인 기능에 머무는 순간이 많습니다.
주인공의 감정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과 비교하면 이쪽은 다소 평면적으로 보였습니다.
한 사람의 용기가 커질수록 작아 보인 것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주인공이 직접 해결해야 하는 일은 점점 늘어납니다.
단서를 모으고, 사람을 만나고, 결국 해외까지 향합니다. 장르적으로는 한 사람의 집념이 커지는 과정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응원하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에서 다른 질문이 생겼습니다.
평범한 시민이 여기까지 해야 한다면, 그보다 먼저 작동했어야 할 것은 무엇이었을까.
보이스피싱은 사람이 당황하거나 조급해진 순간을 파고듭니다.
제 어머니 역시 평소라면 이상하다고 여겼을 말을 급한 상황에서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일을 겪은 뒤에는 “조심하면 된다”는 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남았습니다.
누구든 순간적으로 판단을 놓칠 수 있고, 피해 이후의 대응까지 혼자 감당하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개인의 용기를 칭찬하는 이야기로만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주인공이 더 강하게 행동할수록 오히려 “왜 이 사람이 여기까지 떠맡아야 하지?”라는 의문이 커졌습니다.
물론 범죄 추적극에서 주인공이 움직이지 않으면 이야기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반론도 가능합니다. 장르의 재미를 위해 어느 정도 과감한 선택이 필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제게 오래 남은 것은 범인을 잡는 쾌감보다 피해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 지나치게 크다는 불편함이었습니다.
5년 전 가리봉에서 끝난 일이 아니었다
마지막은 관객이 어느 정도 기대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범인을 쫓아온 시간이 보상받고, 주인공의 선택에도 의미가 생깁니다. 극영화로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마무리입니다.
그런데 엔딩이 지나고 나니 오히려 5년 전 일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당시에는 범인을 찾았고 피해도 막았으니 잘 끝난 사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운이 좋았다는 것입니다. 상황을 비교적 빨리 알아챘고, 직접 움직일 수 있었으며, 결과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조건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끝까지 기억에 남은 모습은 범죄자를 잡은 영웅이라기보다 처음에는 당황하고 무너졌지만 다시 자기 삶을 붙잡으려 했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선택은 분명 용감합니다.
다만 실제 삶에서는 그런 용기를 시험받지 않아도 되는 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짧게 정리하면
〈시민덕희〉는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직접 조직을 추적한다는 설정을 코미디와 범죄 추적극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범인을 잡는 과정의 시원함보다, 왜 피해자가 이 정도까지 움직여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기억에 남은 지점
라미란이 맡은 인물을 과장된 영웅이나 코미디 캐릭터로 소비하지 않은 점, 그리고 주변 인물들이 웃음을 맡으면서도 중심인물의 절박함은 끝까지 유지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알라딘 실사판 (거짓된 모습, 진정성, 자유) (0) | 2026.03.22 |
|---|---|
| 극한직업 리뷰 (본업망각, 치킨장사, 마약반전) (0) | 2026.03.22 |
| 영화 소방관 (홍제동 참사, 불법주차, 장비부족) (1) | 2026.03.21 |
| 명량 해전 (이순신, 울돌목, 리더십) (1) | 2026.03.21 |
| 국제시장 (흥행비결, CG기술, 황정민연기) (1) | 2026.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