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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그때 한 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하고 후회한 순간,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을 겁니다."
영화 《컨트롤러(The Adjustment Bureau)》에서 데이빗 노리스는 선거 패배 당일, 화장실에서 낯선 여자를 만납니다. 그 짧은 만남 하나가 세상을 뒤흔드는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누군가 정해 놓은 계획이 어긋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러브스토리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건 사랑이 아니라, 내가 지금 정말 나의 선택으로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운명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쉬웠던 엇갈림들
영화 속 조정국(Adjustment Bureau)은 신의 계획이 제대로 흘러가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조율하는 조직입니다. 여기서 '조정(adjustment)'이란 단어가 핵심인데, 이는 단순히 방해하는 게 아니라 커피를 쏟게 만들고, 버스를 놓치게 하고, 도로를 막는 식으로 아주 사소한 변수들을 조작해 원하는 결과로 유도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우연처럼 보이는 조작"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복도 끝 자판기 앞에서 어깨를 부딪쳤던 친구, 그 뒤로 쉬는 시간마다 괜히 그 복도를 한 번씩 더 걸었지만 단 한 번도 다시 만나지 못했던 기억이었습니다. 그때는 당연히 인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게 운명이 아니라 용기를 내지 못한 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이름 하나 묻지 못하고 교실로 돌아온 건 계획된 엇갈림이 아니라 그냥 제 망설임이었을 겁니다.
자유의지(free will) 논쟁은 철학에서 오래된 주제입니다. 자유의지란 외부의 강제나 결정 없이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데, 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에 따르면 자유의지 개념은 결정론(determinism)과 충돌하면서 수천 년간 철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이어져 왔습니다. 결정론이란 모든 사건이 이전 원인에 의해 필연적으로 결정된다는 관점으로, 쉽게 말해 "모든 건 이미 정해져 있다"는 생각입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인생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걸까,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미래를 바꾸는 걸까.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두 생각 사이에서 저도 계속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컨트롤러》는 단순한 SF 로맨스가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을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끝까지 붙잡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 데이빗이 버스를 타지 않았더라면 앨리스를 다시 만나지 못했을 것
- 커피를 쏟는 사소한 '조정'이 인생 전체를 바꿀 뻔한 변수가 됨
- 3년간 같은 버스를 탄 것은 운명이 아닌 데이빗 본인의 선택
보이지 않는 기준이 선택을 조종한다
영화 속 조정국 요원들이 모자를 눌러쓰고 거리를 누비는 장면이 있습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느낀 건 공포가 아니라 이상한 익숙함이었습니다. 현실에서도 저는 비슷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전공 대신 취업이 잘된다는 학과를 고른 것, 하고 싶던 일을 미루고 안정적인 직장을 먼저 찾은 것, 결혼할 나이·집을 살 나이 같은 누군가 정해 놓은 시간표를 따라가려 애썼던 것. 이것들은 조정국이 시킨 게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 의지로 선택했다고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가끔 우리가 자유롭게 살아간다고 믿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착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학교에서는 정답을 빨리 맞히는 법을 배우고, 사회에 나오면 남들보다 늦지 않는 법을 배웁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원하는 삶'보다 '남들이 인정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해집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지만, 돌아보면 대부분은 '괜찮은 선택'이 아니라 '욕먹지 않을 선택'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보이지 않는 기준은 명령보다 훨씬 강하게 사람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규범 압력(social normative pressure)이라고 부릅니다. 사회적 규범 압력이란 집단의 기대와 표준에 맞추려는 무의식적 동기로, 개인이 자신의 진짜 선호보다 타인의 시선을 우선하게 만드는 심리적 힘을 말합니다. 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에서도 이 압력이 개인의 의사결정에 얼마나 깊이 침투하는지를 다수의 연구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의 톰슨은 데이빗에게 말합니다. 앨리스와 함께한다면 상원의원도, 대통령도 될 수 없다고. 그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는 "네가 원하는 것보다 네가 이뤄야 할 것이 더 중요하다"는 논리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그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됩니다. 저 역시 한동안 그랬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계획을 어기고 문을 열고 달리는 그 모습이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이유는, 그것이 사실 우리 모두가 한 번쯤하고 싶었던 행동이기 때문일 겁니다.
자유의지는 거창한 게 아니었습니다
데이빗이 결국 운명을 바꾸는 방식은 놀랍도록 단순합니다. 그냥 계속 걷고, 계속 찾고, 포기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3년간 같은 버스를 탄 것, 결혼식장으로 뛰어간 것, 옥상 문을 연 것. 어느 것도 초능력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한 번 더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하고 싶던 동아리에 지원하지 못했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직접 느껴봤는데, 당시에는 떨어질까 봐 두려워서 아예 지원을 안 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원래 내 것이 아니었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가장 편한 해석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선택하지 않은 것과 선택했다가 실패한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라고 부릅니다. 현상 유지 편향이란 변화를 선택하는 것보다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쪽을 무의식적으로 선호하는 인지적 경향으로,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 클수록 행동 자체를 회피하게 만든다는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지원하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으니까 더 안전하다는 착각입니다.
마지막에는 조정국의 계획보다 두 사람의 선택이 더 큰 힘을 가지게 됩니다. 제가 이 결말에서 읽은 건 해피엔딩이 아니라 메시지였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운명이 바뀌었다기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 결국 다른 길을 만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컨트롤러는 실제로 자유의지를 지지하는 영화인가요?
A. 영화는 자유의지와 결정론 사이에서 명확한 편을 들지 않습니다. 조정국이라는 결정론적 설정을 깔아두면서도, 데이빗이 계획을 어기고 결말을 바꾸는 방식으로 자유의지의 가능성을 열어 둡니다. 관객이 어떤 쪽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구조입니다.
Q. 영화 결말에서 조정국이 데이빗을 놔준 이유가 뭔가요?
A. 영화 마지막에 해리가 톰슨에게 건넨 것은 데이빗과 앨리스의 헌신이 계획 자체를 바꾸었다는 근거였습니다. 즉 두 사람이 모든 것을 버리고 서로를 선택한 행위 자체가 새로운 계획의 조건을 충족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 결말은 자유의지적 선택이 운명까지 재설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Q. 이 영화가 철학적으로 다루는 개념이 어렵진 않나요?
A. 자유의지나 결정론 같은 개념이 배경에 깔려 있지만, 영화 자체는 그것을 논문처럼 전달하지 않습니다. 쫓고 쫓기는 장면과 로맨스가 중심이라 철학을 몰라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영화를 먼저 보고 나서 개념을 찾아보면 더 깊이 즐길 수 있습니다.
Q. 현실에서도 사람들이 사회적 압력 때문에 자신의 선택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나요?
A. 그렇습니다. 심리학 연구들에 따르면 사회적 규범 압력은 개인의 진짜 선호보다 타인의 기대를 우선하게 만드는 강한 동기로 작용합니다. 진로, 결혼, 직업 선택처럼 중요한 결정일수록 이 압력이 더 강하게 작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론
영화는 끝났는데 이상하게 머릿속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데이빗이 바꾼 것은 운명이 아니라,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선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오히려 제 삶을 먼저 돌아보게 됐습니다.
혹시 지금까지 제 인생에서 '운명'이라고 믿었던 일들 가운데, 사실은 제가 겁이 나서 선택하지 않았던 일들이 더 많았던 건 아닐까. 고등학교 시절 이름 한 번 묻지 못했던 친구도, 떨어질까 봐 지원조차 하지 않았던 동아리도, 지나고 보니 운명이 아니라 제 망설임이 만든 결과였습니다.
현실의 가장 강력한 조정국은 거대한 조직이 아닙니다. "나이에 맞게", "보통은 이렇게",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는 말들이 어느새 우리의 선택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돌아보면 남들의 기준 안에서 안전한 답을 고르려 했던 순간이 더 많았습니다. 실패가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실패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더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는 정해진 계획도, 운명을 조종하는 조정국도 없을지 모릅니다. 남아 있는 것은 오늘 내가 내리는 아주 작은 선택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운명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말보다, '그날 나는 어떤 선택을 했는가'를 먼저 떠올리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