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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열심히 한 사람이 항상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가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인원은 넉넉하지 않은데 일정까지 빠듯한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부족한 만큼 더 많이 움직이면 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이 끝난 뒤 돌아보니 부족했던 것은 노력의 양이 아니었습니다. 어디에 힘을 집중하고 어느 순간에 판단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잡지 못했던 겁니다.
《F1 더 무비》를 보면서 그때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소니 헤이스의 레이스를 계속 보다 보니 한 가지 의문도 생겼습니다.
상황을 이용하는 영리한 판단과 결과를 위해 선을 넘는 행동은 어디에서 갈라질까.
남들과 다르게 움직인 첫 번째 순간
소니 헤이스가 합류한 APXGP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팀입니다. 소니 역시 한때 F1 무대에서 달렸지만 큰 사고 이후 오랜 세월 그 무대를 떠나 있던 베테랑입니다.
그런 그가 다시 레이스에 들어와 처음부터 보여주는 것은 압도적인 속도보다 상황을 읽는 방식입니다.
다른 드라이버들과 똑같이 움직이기보다 자신에게 필요한 조건을 만들려고 합니다. 타이어와 경기 상황을 이용하고, 남들이 정석이라고 생각하는 흐름에서 일부러 벗어납니다.
처음에는 이런 소니가 꽤 통쾌했습니다. 꼴찌에 가까운 팀이 강한 팀과 똑같은 방식으로 싸워서는 결과를 뒤집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가진 것이 부족하다면 적어도 사용하는 방법은 달라야 한다는 그의 판단에는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참여했던 프로젝트도 비슷했습니다.
인원도 부족했고 일정도 빠듯했는데 처음에는 부족한 만큼 더 많이 일하면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작업량만 늘었고 정작 중요한 문제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되돌아보니 필요한 것은 모든 일을 더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먼저 해야 할 일을 골라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니가 남들과 다른 타이밍에 움직이는 장면이 단순한 레이싱 기술처럼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같은 조건에서도 무엇을 먼저 보고 어디에 힘을 쓸 것인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회사의 프로젝트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영리한 전략이라고 보기 어려웠던 이유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소니의 방식에 계속 박수를 보내기는 어려웠습니다.
특히 사고와 세이프티카 상황까지 자신의 레이스 전략에 이용하려는 모습에서는 처음 느꼈던 통쾌함보다 불편함이 먼저 생겼습니다.
영화 안에서는 베테랑의 노련함과 예측 불가능한 전략으로 표현되는 부분이지만, 저는 오히려 여기에서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 생긴다고 봤습니다.
결과가 좋다면 과정에서 사용한 방법까지 좋은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회사에서도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일정만 맞추기 위해 검토해야 할 부분을 건너뛰거나, 당장의 성과를 위해 다음 공정에 부담을 넘긴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당장은 프로젝트가 끝난 것처럼 보여도 문제는 다른 곳에서 다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니의 행동을 전부 ‘경험 많은 사람이 보여주는 전략적 판단’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습니다. 상황을 읽는 능력은 분명 뛰어나지만, 그 능력을 어디까지 사용해도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느꼈습니다.
스포츠 영화라서 가능한 과장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 경기의 모든 규칙과 현실성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영화의 목적은 아니니까요. 다만 이 과장 덕분에 오히려 소니라는 인물을 무조건 멋진 베테랑으로만 보지 않게 됐습니다.
조쉬아와 부딪히면서 드러난 소니의 다른 얼굴
소니와 신예 드라이버 조쉬아 피어스의 관계도 처음부터 아름다운 선후배 관계와는 거리가 멉니다.
조쉬아는 자신의 재능을 믿고 있고 소니 역시 쉽게 자신의 방식을 굽히지 않습니다. 같은 팀인데도 서로를 이겨야 할 경쟁자처럼 움직이고, 결국 두 사람이 충돌하면서 팀 전체가 손해를 보는 순간까지 찾아옵니다.
처음 봤을 때는 팀원들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조쉬아보다 태연한 소니가 더 노련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화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팀을 생각하는 사람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니 역시 자신이 옳다는 확신 때문에 다른 사람의 판단을 밀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회사에서 업무 방식이 다른 사람과 부딪혔던 경험과도 연결됐습니다.
처음에는 상대의 방식이 답답하게만 보였는데 함께 일을 계속하다 보니 제 방식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적이 있습니다. 상대를 설득하는 것과 상대의 방식을 틀렸다고 판단하는 것은 꽤 다른 일이었습니다.
소니와 조쉬아도 서로를 바꾸는 과정에서 조금씩 달라집니다. 중요한 것은 둘이 갑자기 친해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과 다르게 달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앞서 달리는 것보다 비켜주는 일이 어려울 때
후반 레이스에서 제가 가장 눈여겨본 것도 누가 더 빠르게 달리는가가 아니었습니다.
소니가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조쉬아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순간이었습니다.
영화 초반의 소니였다면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끝까지 밀어붙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베테랑의 역할은 조금 달라집니다. 자신이 앞으로 나가는 것만큼 다른 사람이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팀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 변화가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회사에서도 경력이 쌓이면 직접 일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순간이 생깁니다. 내가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도 다른 사람이 판단할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때로는 내가 처리하는 것보다 누군가가 해볼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는 편이 더 나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현실에서는 영화처럼 한 번의 결정으로 관계가 극적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소니와 조쉬아의 갈등이 후반부에 빠르게 정리되는 부분도 스포츠 영화의 익숙한 전개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같은 방식의 드라이버가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은 좋았습니다. 조쉬아는 조쉬아의 방식으로 달리고, 소니는 그걸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소니는 좋은 전략가였을까
《F1 더 무비》를 보고 나서 제게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빠른 자동차도 화려한 레이스도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소니가 영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이 보지 못한 틈을 발견하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결과를 만들어내니까요. 하지만 영화가 끝났을 때는 그 평가에 조건 하나를 붙이고 싶어 졌습니다.
좋은 판단은 결과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만드는 과정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것.
제가 프로젝트에서 배웠던 것도 비슷했습니다. 무작정 많이 움직인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타이밍을 읽어야 했고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킬지도 결정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를 빨리 만들겠다고 지켜야 할 과정까지 건너뛰면 그건 전략이 아니라 다음 문제를 미루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소니의 첫 레이스를 떠올려봅니다. 남들과 다른 순간에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여전히 멋있습니다. 다만 이제는 그가 얼마나 빨리 달리는가 보다 한 가지를 더 보게 됩니다.
그 선택으로 누가 앞으로 나가고, 누가 그 대가를 치르는가.
저에게 《F1 더 무비》의 승부는 그 지점에서 더 재미있어졌습니다.
참고 자료
FIA Formula One World Championship Regulations
영화 속 경기 전략은 극적 재미를 위해 구성된 부분이 있으므로 실제 F1 경기 규정 및 운영과 동일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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