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마지막 총성도, 쿠키영상의 천국도 아니었습니다. 눈밖에 보이지 않는 설원을 혼자 걸어가던 김대위였습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지원을 얻기 위해 '가짜 찬양단'을 만든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노래하던 한 사람이었습니다. 《신의 악단》을 저는 그 장면에서부터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가짜 찬양단에서 시작된 이야기《신의 악단》의 설정은 꽤 아이러니합니다. 대북 제재로 외화 확보가 어려워진 북한이 국제사회에 종교의 자유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주기 위해 신앙과 거리가 먼 사람들을 모아 찬양단을 조직합니다.영화는 1990년대 북한의 종교 관련 사례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박교순과 악단원들의 구체..
1998년 작품 《프랙티컬 매직》이 28년 만에 속편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오래된 영화를 다시 꺼내 보게 됐습니다. 산드라 블록과 니콜 키드먼도 다시 샐리와 질리언으로 돌아옵니다. Variety의 《프랙티컬 매직 2》 관련 보도에서도 두 배우의 복귀와 속편 소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처음 봤을 때는 니콜 키드먼의 얼굴에 정신이 팔려 이야기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마음에는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생긴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그런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샐리를 연기한 산드라 블록의 얼굴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같은 영화를 보고 있는데 기억에 남는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잃지 않을 수 있을까《프랙티컬 매직》의 오언스 가문에는 ..
영화를 검색하다가 오랜만에 공포영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말에 수원 롯데시네마까지 가서 《옵세션》을 봤는데, 극장을 나오면서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무섭다는 말 하나로 설명하기에는 찝찝함이 훨씬 컸습니다. 공포영화를 꽤 많이 보다 보니 웬만한 고어나 점프스케어에는 예전만큼 놀라지 않는데, 이 영화는 좀 달랐습니다. 보고 있을 때보다 끝난 뒤에 자꾸 장면들이 생각났습니다. 특히 베어가 빌었던 소원을 떠올릴수록 '저게 정말 사랑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원 위시 윌로우, 사랑을 소원으로 빌면처음에는 왜 니키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했습니다. 사건이 시작되는 계기는 베어가 사용한 원 위시 윌로우(One Wish Willow)입니다.베어가 원하는 것도 처음 들으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좋아하는..
루카스는 병원 안을 뛰어다니며 낯선 사람들의 이름을 묻습니다. 정작 자신의 아빠와 두 동생은 살아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엄마도 수술이 필요할 만큼 크게 다친 상태입니다. 《더 임파서블》에서 제가 멈춘 곳은 거대한 파도가 호텔을 삼키는 순간이 아니라, 자기 가족을 잃어버린 아이가 다른 사람의 가족을 찾아주는 이 장면이었습니다.엄마 곁을 떠난 루카스, 잔인한 부탁이었을까병원에 도착한 루카스는 마리아 곁에서 좀처럼 움직이지 못합니다. 파도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이제는 엄마까지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 아들에게 마리아는 주변을 둘러보고 도움이 될 일을 찾아보라고 말합니다.루카스는 병상을 돌며 이름을 묻고, 서로 다른 곳에서 가족을 찾는 사람들의 말을 이어줍니다. 잠시 뒤 떨어져 있던..
《덩케르크》를 두 번째로 봤을 때 이상하게 토미도 파리어도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자꾸 눈이 갔습니다. 처음 볼 때는 배경처럼 지나쳤던 인물, 방파제 위에서 쌍안경을 들고 서 있던 지휘관 볼턴이었습니다. 케네스 브래너가 연기한 그는 대사도 많지 않고 화면에 오래 머물지도 않습니다.그런데 다시 보니 이 영화에서 가장 무거운 질문을 들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였습니다. 책임진다는 건 정확히 언제까지를 말하는 걸까요.방파제 위에서 순서를 정하는 사람볼턴은 총을 쏘지도, 물에 빠지지도, 폭격을 피해 뛰어다니지도 않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방파제 위에 서서 어느 부대를 먼저 태울지, 부상병을 어디에 실을지, 밀려드는 병력을 어떻게 통제할지를 계속 판단하는 것입니다.처음 볼 때는 이런 장면들이 토미의 탈출이나 파리어의 ..
사랑하는 사람과 닮은 점을 찾으면 이상하게 안심이 됩니다. 같은 음식을 좋아하거나 웃는 포인트가 비슷하면 저도 모르게 '이 사람이랑은 잘 맞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더 랍스터》를 보고 나서 그 익숙한 감각이 조금 불편해졌습니다. 공통점이 사랑을 시작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그 이유가 사라진 뒤에도 우리는 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공통점이 사랑의 자격이 되는 이상한 세계《더 랍스터》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2015년 작품입니다. 영화 속에서 혼자가 된 사람들은 호텔로 보내지고 45일 안에 새로운 짝을 찾아야 합니다. 실패하면 자신이 선택한 동물로 변하게 됩니다.처음에는 이 설정이 황당해서 웃겼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사람이 동물로 변한다는 것보다 사람들이 사랑을 찾는 방식이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