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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디오, 낯선 사람에게 솔직해지는 이유

가까운 사람에게는 말하기 어려운데, 다시 볼 일 없는 사람 앞에서는 이상할 만큼 입이 가벼워질 때가 있습니다. 《대디오》의 케이지도 그랬습니다. 뉴욕의 택시 안에서 그녀가 휴대전화 속 연인보다 처음 만난 기사 클라크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이 이상하게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이라 가능한 이야기케이지는 처음부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승객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휴대전화에는 계속 메시지가 도착하고, 화면을 확인했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합니다. 분위기가 바뀌는 건 클라크가 상대 남자가 기혼자라는 사실을 알아챈 뒤부터입니다.저라면 처음 만난 기사가 연애 문제를 이렇게 깊게 파고들면 "그만하세요"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케이지 역시 불쾌한 기색을 보입니다. 이상한 건 그다음입니다. 입을..

영화리뷰 2026. 9. 15. 17:46
어느 가족, 사랑만으로 가족이 될까

《어느 가족》을 보고 가장 먼저 마음에 걸린 사람은 오사무도 노부요도 아니었습니다. 쇼타였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생활 방식 안에서 가장 먼저 이상함을 느끼고, 자신이 배운 행동을 의심하기 시작한 사람이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혈연과 비혈연의 대결보다, 누군가를 품는 것과 제대로 책임지는 것의 차이에 더 가까운 이야기로 봤습니다. 가장 먼저 이 집을 의심한 건 쇼타였다오사무는 쇼타에게 도둑질을 자연스럽게 가르칩니다. 처음에는 둘만의 규칙처럼 보이고, 쇼타 역시 별다른 의심 없이 따라갑니다. 그런데 유리까지 그 행동에 끌어들이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집니다.쇼타는 자신이 해오던 일을 처음으로 한발 떨어져 바라봅니다. 특히 유리가 혼자 물건을 훔치려 할 때 쇼타가 보이는 반응은 이..

영화리뷰 2026. 9. 14. 10:50
추방 결말, 알렉스가 묻지 않은 한마디

저도 베라가 불륜을 고백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당신의 것이 아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알렉스가 느낀 배신감부터 이해됐습니다. 그런데 결말까지 보고 나니 처음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됐습니다. 베라는 왜 그렇게 어렵게 표현했고, 알렉스는 왜 한 번도 뜻을 되묻지 않았을까. 저는 두 사람 사이에 빠져 있던 그 한 번의 질문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저도 베라의 고백을 그대로 믿었습니다베라는 임신 사실을 알리며 아이가 알렉스의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다른 의미를 떠올리기 어려웠습니다. 남편 입장에서 충격을 받는 것도, 관계가 무너졌다고 느끼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하지만 마지막에 로버트를 통해 아이가 실제로 알렉스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초반의 고백이 전혀 다르게 들렸습니다. 베..

영화리뷰 2026. 9. 13. 22:13
밀양, 상실·용서·다시 시작하기

용서는 피해자의 권리일까, 아니면 피해자의 마음과 상관없이 먼저 이루어질 수도 있는 걸까. 《밀양》을 보면서 이 질문 앞에서 오래 멈췄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2007년작 《밀양》에서 가장 오래 남은 것도 아들을 잃는 순간보다 교도소 면회 장면이었습니다.신애(전도연 분)가 그 자리에서 무너졌을 때, 이상하게도 그 분노만큼은 이해가 됐습니다.밀양에 내려온 신애는 무엇을 바꾸고 싶었을까신애는 남편을 잃고 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옵니다. 피아노 학원을 열고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땅을 사고 싶다는 말까지 합니다. 겉으로는 새로운 삶을 꽤 적극적으로 시작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그런데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수록 오히려 그녀가 떠나고 싶었던 과거가 더 선명해졌습니다.여기서 뜬금없이 제가 헬스장을 세 번 등록했던 일이..

영화리뷰 2026. 9. 12. 09:43
텐더 바, 기다림을 끝낸 JR의 마지막 선택

《텐더 바》의 마지막에서 JR은 자동차에 올라 집을 떠납니다. 그 장면만 보면 흔한 성장영화의 출발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앞에서 벌어진 일을 다시 떠올려보면 이 자동차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어린 JR은 오랫동안 누군가 자신을 데리러 오기를 바랐습니다. 그 대상은 무엇보다 아버지였습니다. 그래서 제게 이 영화는 성공한 작가의 시작보다 한 아이가 오래 붙들고 있던 기대에 관한 이야기로 남았습니다.JR은 언제 아버지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를 내려놓게 되었을까. 마지막에서 거꾸로 올라가 보니 《텐더 바》는 누군가가 비어 있는 자리를 대신 채워준 이야기라기보다, 그 자리에 더 이상 자신의 다음 선택을 맡기지 않게 되는 과정에 가까웠습니다.얼굴보다 목소리가 익숙했던 아버지어린 JR에게 아버지는 함께 밥을 먹고 생..

영화리뷰 2026. 9. 11. 16:57
열여덟 번의 선물, 사랑도 부담이 될까

죽은 엄마가 딸의 열여덟 번의 생일을 위해 선물을 남겼다. 이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애틋한 모성애를 다룬 영화라고 예상했습니다. 실제 엘리사 지로토의 사연에서 영감을 받은 《열여덟 번의 선물》을 보고 나니 정작 다른 쪽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엄마에게는 사랑이었던 열여덟 번의 선물이 딸에게도 똑같은 의미였을까. 저는 안나가 선물을 밀어내는 순간부터 그 질문을 따라가게 됐습니다.생일마다 엄마의 빈자리도 도착했다엘리사는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딸 안나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매년 받을 생일 선물을 준비합니다.처음에는 안나의 반응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만나보지도 못한 엄마가 자신을 생각하며 남긴 물건인데 조금 더 소중하게 받아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그런데 생일을..

영화리뷰 2026. 9. 1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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