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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혼자 옷도 입지 못하게 된다면, 그때도 사랑은 영화처럼 아름다울까요. 몇 년 전 여자친구가 사고로 어깨 수술을 받았고, 저는 옷을 갈아입히고 샤워를 도왔습니다. 그때는 사랑보다 미안함이 더 컸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만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러브 어페어》 속 테리가 사고를 숨기는 장면에 완전히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20대였다면 두 사람의 재회에 설렜겠지만, 40대가 된 지금은 다른 게 궁금합니다. 다시 만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그다음에도 계속 곁에 있는 일이 아닐까요. 영화는 재회에서 끝나지만 현실의 사랑은 그다음 날부터 시작됩니다.
감정의 무게 — 설렘보다 오래가는 것
영화에서 마이크와 테리는 비행기에서 처음 만납니다. 문제는 둘 다 이미 다른 사람과 미래를 약속한 상태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두 사람의 감정을 마냥 응원하기 어려웠습니다. 저 역시 보면서 '아무리 마음이 끌려도 이건 선을 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처음의 불편함과는 다른 감정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두 사람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기보다, 서로를 통해 지금까지 자신이 선택한 삶이 정말 원하는 삶이었는지를 처음 의심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히려 그 불편함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를 더 집중해서 보게 됐습니다.
저도 한 사람을 10년 가까이 만나고 있습니다. 처음 몇 년은 만나기 전부터 괜히 기분이 좋았고, 주말이 되면 어디를 갈지 찾아보는 것부터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10년 가까이 지나면 매번 그럴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만나서 한참 고민하다 결국 늘 먹던 음식을 먹을 때도 있고, 특별히 할 일이 없어 밥만 먹고 헤어지는 날도 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익숙함을 두고 '사랑이 식은 건가'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오히려 반대로 생각합니다. 아무 일도 없는 날에도 자연스럽게 만나고 있다는 것, 저는 그게 오래된 관계가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설명하는 방법은 많겠지만, 저는 10년 가까이 한 사람을 만나면서 오히려 사랑을 훨씬 단순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얼마나 보고 싶은가'가 중요했습니다. 지금은 '별일 없는 날에도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설렘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 위에 너무 많은 시간이 쌓였습니다. 서로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고, 피곤하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오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눈치챌 때도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그런 익숙함을 권태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것도 사랑이 시간이 지나면서 만들어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러브 어페어》를 보면서 그래서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이크와 테리는 이제 막 서로에게 빠져드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반면 저는 한 사람과 거의 10년을 지나온 뒤 이 영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화면 속 두 사람에게는 앞으로의 시간이 궁금했고, 제 옆에 있는 사람에게는 지나온 시간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같은 사랑을 보고 있는데 영화 속 두 사람과 제가 서 있는 시간은 정반대였습니다.
사랑의 지속성 — 약속보다 어려운 것
영화에서 마이크와 테리는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 뒤, 5월 8일 오후 5시 2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합니다. 서로 연락하지 않고 그날 약속 장소에 나타나는 것으로 마음을 확인하자는 방식입니다. 20대의 제가 봤다면 아마 이 장면을 가장 낭만적으로 기억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제 마음에 더 걸리는 장면은 따로 있었습니다. 사고를 당한 테리가 그 사실을 마이크에게 알리지 않은 선택입니다. 다시 걸을 수 있을 때 만나고 싶었던 마음은 이해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괜찮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 선택을 아름다운 희생이라고만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몇 년 전 여자친구가 전동 퀵보드를 타다가 넘어져 어깨가 골절됐고 결국 수술까지 받았습니다. 함께 있다가 벌어진 사고라 한동안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조심했으면'이라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수술이 끝나면 한숨 돌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퇴원하고 나서가 더 현실적이었습니다. 한쪽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하니 혼자 옷을 갈아입는 것도 쉽지 않았고, 샤워할 때도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제가 옷을 입혀주고 씻는 것을 도왔습니다.
솔직히 영화처럼 아름다운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여자친구는 몸이 불편하니 예민한 날도 있었고, 저 역시 회사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피곤했습니다. 그래도 다음 날이 되면 또 필요한 것을 챙겼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행동을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테리를 보면서 자꾸 반대 상황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만약 여자친구가 저를 걱정시키기 싫다는 이유로 사고와 수술 사실을 숨겼다면 나는 고마웠을까.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마 더 속상했을 겁니다. 그 일을 겪고 나서 사랑에 대한 질문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걱정시키지 않는 것이 배려일까. 아니면 그 사람에게 나를 걱정할 기회까지 주는 것이 사랑일까.' 저는 지금은 후자에 조금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테리는 마이크를 위해 침묵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침묵 때문에 마이크는 자신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선택이라고 믿었던 행동이 오히려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테리의 선택을 이해하면서도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했습니다. 사랑에는 혼자 견디는 용기도 필요하겠지만,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함께 견딜 자리를 내어주는 용기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가 여자친구의 사고를 겪으면서 알게 된 사랑은 그쪽에 조금 더 가까웠습니다.
관계의 현실 — 엔딩 크레딧 이후의 이야기
영화는 참 좋은 순간에 끝납니다. 오해가 풀리고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 음악이 흐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현실에는 엔딩 크레딧이 없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오고, 출근해야 하고, 병원에 갈 일이 생기고, 돈 이야기도 해야 합니다. 전날 아무리 사랑한다고 말했어도 피곤하면 짜증이 나고, 별것 아닌 말 한마디 때문에 서로 기분이 상할 때도 있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연애하면서 오히려 그런 평범한 날을 더 많이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관계를 오래 이어가는 데 필요한 것이 특별한 하루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싸우지 않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서운했고 연락하기 싫었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연락했습니다. 그리고 또 만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관계에는 이런 '다시'가 참 많았습니다. 다시 연락하고, 다시 밥을 먹고, 다시 다음 주 약속을 잡았습니다. 특별한 방법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시간이 쌓였습니다.
사고도 지나갔고 여자친구도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만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일을 겪은 뒤 갑자기 영화 같은 연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만나면 “뭐 먹을까?”부터 시작합니다. 서로 먹고 싶은 게 없어서 한참 휴대전화만 보다가 결국 전에 갔던 곳으로 갈 때도 있습니다. 피곤한 날에는 밥을 먹으면서 대화가 별로 없을 때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날을 재미없는 데이트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오히려 그런 날이 편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같이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하루. 사고가 났던 하루보다 그런 수많은 평범한 날들이 지금의 우리를 더 많이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러브 어페어 결말이 해피엔딩인가요?
A. 두 사람의 재회라는 점에서는 해피엔딩에 가깝습니다. 약속 장소로 향하던 중 사고를 당한 테리는 걷는 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되고, 자신의 상태를 마이크에게 알리지 않은 채 재활을 이어갑니다. 이후 마이크가 테리를 찾아오고, 자신이 그린 그림이 테리의 집에 있다는 사실을 통해 그녀가 약속 장소에 오지 못했던 이유를 알아차립니다. 두 사람은 결국 서로의 마음을 다시 확인합니다.
Q. 러브 어페어가 원작이 있나요? 리메이크인가요?
A. 1994년 《러브 어페어》는 1939년 동명의 영화 《러브 어페어》를 다시 만든 작품입니다. 이 이야기는 1957년 《어페어 투 리멤버》로도 리메이크됐습니다. 세 작품 모두 서로에게 끌린 두 남녀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 뒤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사건 때문에 그 약속이 어긋난다는 핵심 서사를 공유합니다.
Q. 사랑의 설렘이 식으면 관계가 끝난 건가요?
A. 적어도 제 경험에서는 설렘이 예전과 달라졌다고 관계가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10년 가까이 만나면서 처음처럼 매번 설렐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서로의 습관을 알고, 힘들 때 챙기고, 별일 없는 날에도 자연스럽게 만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익숙함을 권태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오래된 관계가 만들어낸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Q. 영화처럼 극적인 약속이 관계에 도움이 될까요?
A. 영화에서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약속이 두 사람의 사랑을 상징하지만, 현실에서는 한 번의 거창한 약속보다 그 이후의 행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연애하면서 특별한 약속 때문에 관계가 이어졌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다. 싸운 뒤 다시 연락하고, 아프면 챙기고, 아무 일 없는 주말에도 만났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런 작은 선택들이 쌓여 지금까지 관계가 이어진 것 같습니다.
결론
《러브 어페어》는 참 좋은 순간에 끝납니다. 오해가 풀리고 두 사람이 다시 만나면 음악이 흐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갑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다음 날이 옵니다.
저와 여자친구도 사고와 수술을 함께 겪었지만, 그 뒤 갑자기 영화 같은 연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회복하고 나서는 다시 밥을 먹고, 사소한 일로 서운해하고, 가끔 싸우면서도 또 만났습니다. 그렇게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지금도 우리는 만나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사고가 났던 하루보다 아무 일도 없었던 수많은 날이 우리 관계를 더 많이 설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20대였다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기다리는 사랑을 기억했을 겁니다. 하지만 40대가 된 지금은 다르게 보입니다. 몇 시간을 기다리는 것보다 한 사람의 곁에서 몇 년을 보내는 일이 더 어렵습니다.
20대에는 다시 만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40대가 된 지금은 그다음 날에도 다시 만나는 쪽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러브 어페어》는 재회에서 끝납니다. 하지만 제가 살아본 사랑은 그다음 날에도 또 만나는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