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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로이》를 처음 봤을 때 헥토르를 제대로 보지 않았습니다. 눈이 온통 아킬레스에게 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주말에 《오디세이》를 보고 집에 돌아와 늦은 밤 《트로이》를 다시 틀었더니, 이번엔 전혀 다른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같은 신화에서 출발한 두 이야기를 하루 사이에 이어 본 건 처음이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많은 걸 흔들어 놨습니다.



    헥토르가 다시 보인 밤 — 전쟁의 배경과 맥락

    영화 《트로이》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에게 전해지는 서사시 《일리아스》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일리아스》는 전설적인 트로이 전쟁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한 역사서가 아니라, 전쟁 막바지의 짧은 기간과 아킬레스의 분노를 중심으로 풀어낸 서사시입니다. 영화는 여기에 다른 신화와 전승의 요소까지 더하면서, 신들의 개입은 크게 줄이고 인간의 욕망과 선택이 비극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로 바꿨습니다.

    이야기는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렌이 트로이 왕자 파리스와 함께 트로이로 떠나면서 시작됩니다. 파리스의 형 헥토르는 이 선택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낳을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동생을 말렸지만 막지 못했고, 결국 가장 앞줄에 서서 그 결과를 온몸으로 받아냈습니다.

    제가 직접 다시 보니, 헥토르의 표정이 이번에는 달라 보였습니다. 전투 전날 밤 아내와 갓난아이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영웅의 비장함보다 그냥 지쳐 있는 가장의 얼굴이 있었습니다. 예전엔 그게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요.

    그리고 미케네의 아가멤논이라는 인물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그에게 헬렌 문제는 전쟁의 명분일 뿐이었습니다. 트로이를 차지하려는 야심이 먼저였고, 동생 메넬라오스의 명예 회복은 그다음이었습니다. 결국 전쟁의 진짜 이유와 내세워진 이유가 달랐다는 것, 그 구조는 현실에서도 꽤 자주 보이는 방식입니다.

    • 《트로이》의 원작 《일리아스》는 역사서가 아닌 고대 그리스 문학 작품
    • 영화는 원작에서 중요했던 신들의 직접적인 개입을 크게 줄이고 인간 중심의 드라마로 재구성
    • 헥토르는 자신이 시작하지 않은 전쟁을 끝까지 책임진 인물
    • 아가멤논의 목적은 명예 회복이 아닌 트로이 정복이었다는 점에서 전쟁의 이중 구조가 드러남
    요약: 《트로이》는 호메로스 《일리아스》를 인간 중심으로 재해석한 영화로, 헥토르는 자신의 선택이 아닌 결과를 끝까지 짊어진 인물이다.

     

    아킬레스와 헥토르 — 두 영웅의 선택을 다시 읽다

    아킬레스는 처음부터 전쟁을 거부했습니다. 아가멤논의 야심도 싫었고, 남의 전쟁에 목숨 걸기도 싫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테티스의 예언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지금 가면 짧게 살지만 수천 년 동안 이름이 남는다는 말. 아킬레스는 불멸(immortality)을 선택했습니다. 여기서 불멸이란 육체적 생존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속에 이름을 새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선택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실제로 2,700년이 넘은 지금까지 우리가 아킬레스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까요. 현대 의학에서 발꿈치 힘줄을 뜻하는 아킬레스건(Achilles tendon)이라는 용어도 그의 신화에서 비롯됐습니다. 오늘날에도 어떤 사람의 치명적 약점을 가리켜 '아킬레스건'이라 부르는 건 이 때문입니다(출처: Britannica — Achilles).

    반면 헥토르는 불멸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신도 믿지 않았고, 전쟁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가족과 백성이 있는 성을 지키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번에는 헥토르가 영웅이라기보다 현실에서 한 번쯤 봤던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가족에게 갑작스러운 일이 생기면 이상하게 가장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보호자를 정하고, 필요한 물건을 챙기고, 다른 가족들에게 상황을 알립니다. 그 사람이 문제를 만든 것도 아닌데 결국 가장 많은 일을 맡게 됩니다.

    살다 보니 책임은 잘못한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이 벌어졌을 때도 누군가는 앞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헥토르가 성문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단순히 용감하게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나가지 않으면 결국 가족이 위험해진다는 걸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헥토르의 선택을 무조건 멋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번에는 오히려 한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가족이 만든 문제를 어디까지 대신 책임져야 하는 걸까. 현실에서도 “가족이니까”라는 말로 한 사람의 희생을 너무 쉽게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 번 도와주는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 그 사람이 계속 책임지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헥토르도 비슷하게 보였습니다. 동생의 잘못을 외면하지 않은 좋은 형이었지만, 결국 그 책임 때문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헥토르가 성문을 나서는 장면이 멋있기보다 조금 답답하고 슬펐습니다. 책임감이 강하다는 것과 모든 책임을 대신 짊어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킬레스의 사촌 페트로클로스가 아킬레스의 갑옷을 입고 전장에 나갔다가 헥토르에게 쓰러지는 장면은 이번에 특히 오래 남았습니다. 아킬레스가 이성을 잃고 헥토르에게 달려드는 장면보다, 그전에 페트로클로스가 고집을 부리며 전장으로 나가는 장면이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한 사람의 선택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연쇄적으로 끌어들이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었으니까요.

    요약: 아킬레스는 불멸의 이름을 위해 전쟁을 선택했고, 헥토르는 선택하지 않은 전쟁을 끝까지 책임졌다 — 두 영웅의 차이는 결국 선택의 동기에 있었다.

     

    귀환이라는 기준 — 《오디세이》와 이어서 본 뒤 남은 것

    《트로이》를 보고 난 뒤에도 전날 본 《오디세이》가 계속 머릿속에 걸렸습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10년이 걸립니다. 승리한 영웅에게도 귀환(nostos)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귀환, 그리스어 노스토스(nostos)란 단순히 집으로 돌아가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곳,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복귀하는 서사 전체를 의미하는 개념입니다. 《오디세이》는 이 노스토스 서사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힙니다(출처: Theoi Greek Mythology — Odysseus).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두 영화를 이어서 보고 나서 제 머릿속에 남은 단어가 '영웅'이 아니라 '귀환'이었으니까요. 아킬레스는 이름을 남겼고,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예전의 저라면 당연히 아킬레스 쪽이 더 멋있다고 했겠지만, 요즘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트로이 목마도 이번에는 다르게 보였습니다. 거대한 목마 안에 병사들을 숨겨 성 안으로 들어간다는 발상은 힘으로 성벽을 무너뜨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이 작전을 떠올리는 사람이 오디세우스라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아킬레스처럼 가장 강한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다른 방법을 생각했던 사람이 결국 전쟁의 흐름을 바꿉니다. 《오디세이》를 먼저 보고 와서인지 이번에는 아킬레스의 칼보다 오디세우스의 생각이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두 영화를 이어서 보면서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온 건 의외로 전투가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의 선택이 주변 사람들의 삶까지 바꿔버리는 모습이었습니다. 파리스는 사랑을 선택했습니다. 두 사람만 놓고 보면 낭만적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선택의 계산서는 파리스에게만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헥토르가 싸워야 했고, 가족이 위험해졌고, 결국 아무 관계도 없던 수많은 사람까지 전쟁에 휘말렸습니다.

    현실에서도 비슷한 일을 어렵지 않게 봅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지면 다른 가족들이 함께 돈을 마련하기도 하고, 누군가 순간적인 감정으로 관계를 깨뜨리면 남겨진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 후유증을 감당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가족 중 누군가 갑자기 아프면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모두의 일상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내 인생이니까 내가 알아서 한다”는 말을 예전처럼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선택의 결과까지 언제나 혼자 감당할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트로이》에서 제가 가장 무섭게 느낀 것도 이것이었습니다. 전쟁을 결정한 사람은 몇 명뿐인데, 가장 큰 대가는 선택권조차 없었던 사람들이 치렀습니다.

    요약: 《오디세이》와 이어서 보고 나니, 진짜 긴 싸움은 전쟁 이후에 있었고 — 귀환이라는 기준이 영웅을 보는 제 시선을 바꿔놓았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트로이》는 그리스 신화 원작과 얼마나 다른가요?

    A. 꽤 많이 다릅니다. 원작 《일리아스》에서는 아테나, 아폴론, 아프로디테 같은 신들이 전투에 직접 개입하지만, 신들의 직접적인 개입을 대부분 걷어내고 인간 중심 드라마로 재구성했습니다. 아킬레스의 사망 시점도 원작에서는 트로이 성 함락 이전이지만, 영화에서는 목마 작전으로 성에 들어간 뒤로 바뀌었습니다. 원작과 비교하면서 보면 전혀 다른 재미가 있습니다.

     

    Q. 아킬레스건이라는 단어가 신화에서 나왔다는 게 사실인가요?

    A. 그렇습니다. 아킬레스에게 유일한 약점으로 남았던 발뒤꿈치에 관한 신화에서 유래한 표현입니다. 오늘날에는 실제 신체 부위의 명칭뿐 아니라, 강한 사람이나 조직이 가진 결정적인 약점을 가리킬 때도 '아킬레스건'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Q. 영화 《트로이》 감독판과 일반판의 차이가 큰가요?

    A. 감독판은 3시간 16분으로, 일반 상영판보다 상당히 깁니다. 인물들의 관계와 심리가 더 세밀하게 묘사되고, 일부 장면의 맥락이 훨씬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원작 서사에 관심이 있다면 감독판으로 보는 편이 훨씬 풍부한 경험을 줍니다.

     

    결론

    늦은 밤 《트로이》를 끄고 나니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와 전혀 다른 사람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예전에는 아킬레스가 어떻게 싸웠는지가 기억났다면, 이번에는 헥토르가 왜 싸울 수밖에 없었는지가 남았습니다. 그리고 주말에 먼저 만났던 오디세우스까지 떠올리고 나니 세 사람은 같은 전쟁을 지나면서도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킬레스는 이름을 향했고, 헥토르는 가족을 지키려 했고, 오디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누구의 삶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헥토르처럼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삶도, 아킬레스처럼 자신의 이름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삶도 제가 쉽게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지금 하나를 선택하라면 저는 불멸보다 귀환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멀리 갔더라도 다시 돌아갈 곳이 있고, 그곳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 두 편의 영화를 이어서 본 이번 주말에는 그것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처럼 보였습니다.

    아마 몇 년 뒤 《트로이》를 다시 보면 또 다른 인물이 눈에 들어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는 그대로인데 보는 사람이 달라지면 영웅도 달라진다는 것. 이번 재관람에서 제가 가장 크게 느낀 건 그것이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2ak3-uNGr9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