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영상미로 가득한 뮤지컬 영화가 쏟아지는 시대에, 2002년작 《물랑 루즈!》는 왜 아직도 다시 찾게 될까요. 처음 봤을 때 저는 줄거리보다 니콜 키드먼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첫 장면 하나에 완전히 압도됐습니다. 음악과 영상, 배우의 감정이 이렇게까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습니다. 1900년 파리의 화려한 공연장 물랑 루즈를 배경으로, 가난한 작가 크리스천과 최고의 스타 세틴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 앞에는 신분과 돈, 그리고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이 놓여 있습니다. 뮤지컬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예술과 욕망, 희생을 함께 담아낸 작품입니다.니콜 키드먼이 빛난 이유, 운이 아니었습니다많은 분들이 물랑 루즈!를 니콜 키드먼의 미모 덕분에 ..
홍채(iris) 패턴은 지문보다 정밀한 생체 식별 정보로, 전 세계 80억 인구 중 동일한 홍채를 가진 두 사람은 이론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화 〈아이 오리진(I Origins, 2014)〉은 바로 그 '불가능'을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반응이 좀 늦게 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반려묘 바론과 쿠키의 눈을 바라보다가, 그제야 뭔가 묵직하게 마음에 걸리는 게 느껴졌습니다.눈으로 사람을 기억한다는 것 — 영화의 배경과 맥락영화의 주인공 이안(Ian)은 눈의 기원을 연구하는 생물학자입니다. 그는 진화 과정에서 눈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밝히는 데 인생을 걸고 있는 사람이죠. 그런데 할로윈 파티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독특한 홍채를 가진 여자 소피(Sop..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사람이 문득 떠오를 때, 혹시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없으신가요? "그때 내가 먼저 한마디만 했더라면."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질문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연인의 재회를 그린 일본 멜로 영화이지만, 제게는 사랑 이야기보다 '침묵이 얼마나 많은 것을 빼앗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남았습니다.첫사랑은 왜 그렇게 오래 남는 걸까요영화 속 준세이와 아오이는 1990년 봄, 시모키타자와에서 처음 만납니다. 19살이었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고, 좋아하는 음악과 책을 나누며 함께 시간을 쌓아갔습니다. 저도 처음 이 장면들을 보면서 순간 멈칫했습니다. 제가 처음 진지하게 누군가를 좋아했던 시절과 너무 닮아 있었거든요.심리학에서는 이를 '초두 효과(..
《클루리스》를 보기 전에는 90년대 하이틴 영화라길래 그저 예쁜 배우와 화려한 패션만 나오는 가벼운 청춘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미국 고등학교가 아니라 제 중학교 운동장이 떠올랐습니다. H.O.T. 음악만 나오면 친구들과 안무를 따라 추고, 젝스키스 모자를 쓰려고 용돈을 모으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셰어의 화려한 패션보다, 유행을 함께 즐기던 분위기가 더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영화 속 배경은 미국 베벌리힐스였지만, 이상하게도 제가 다녔던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영화가 끝난 뒤 가장 오래 남은 건 체크무늬 교복도 화려한 패션도 아니었습니다. 유행을 함께 즐기던 사람들과, 그 시절에는 미처 몰랐던 '성장'이라는 단어였습니다. 그래서 《클루리스》는 저에게 단순한 ..
공익근무 시절, 저는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에게 매일 도시락을 전달했습니다. 그분들이 문을 열자마자 가장 먼저 꺼낸 질문은 늘 같았습니다. "오늘은 고기 반찬 들어 있어요?" 영화 를 보는 내내 그 질문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노인 세 명이 고기 한 점을 먹기 위해 무전취식을 반복하는 이 이야기가, 과장된 설정이 아니라 제가 직접 목격한 현실의 다른 이름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고기 한 점이 말해주는 것들 — 독거노인과 노인빈곤영화는 폐지를 수거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노인 장우식의 모습으로 문을 엽니다. 슈퍼마켓에서 고기를 집어 들었다가 결국 서울우유 한 팩만 사서 돌아오는 장면이 오프닝 시퀀스의 전부입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멈칫했습니다. 제가 공익근무를 하던 동사무소, 지금의 주민센터 담당 구역에도 그런..
솔직히 저는 《스타 이즈 본》을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하고 봤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머릿속에 남은 건 두 사람의 사랑이 아니라, 음악이 한 사람을 어떻게 버티게 하고 또 어떻게 무너지게 하는지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연스럽게 이어폰을 꺼내 든 저 자신을 보며, 이 영화가 제 음악 습관과 꽤 많이 닿아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잭슨 레인이라는 사람, 그리고 무대 위의 균열혹시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 보이는 사람이 사실 가장 많이 무너져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잭슨 레인은 수천 명의 관객을 가득 채운 공연장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스타입니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고 혼자 귀가하는 길, 그의 귀에는 이명(耳鳴)이 들립니다. 여기서 이명이란 외부 소리 자극 없이 귀 안에서 울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