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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는 이상하게도 일을 잘 끝낸 사람이 다음 일까지 맡게 됩니다. 《길버트 그레이프》를 보면서 저는 가족 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9명이 사는 작은 마을 앤도라에서 길버트는 동생을 돌보고, 돈을 벌고, 집까지 고칩니다. 그런데 영화를 볼수록 ‘길버트가 얼마나 착한가’보다 다른 질문이 생겼습니다. 왜 다음 차례는 항상 길버트일까.
잘 해낸 사람이 왜 더 많이 맡게 되는 걸까
길버트는 가족 안에서 가장 많은 책임을 떠안고 있는 인물로 보입니다. 장애를 가진 동생 아니를 돌보고, 식료품점에서 일해 생계를 유지하고, 무너져 가는 집을 수리하는 일까지 맡습니다. 어머니 보니는 남편을 잃은 뒤 7년째 집 밖을 나오지 않는 상태입니다. 나머지 가족들도 각자의 몫을 하고 있지만, 결국 막힌 곳이 생기면 길버트를 향합니다.
제가 오랫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불편하게 여겼던 장면이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한 번 빠르게 해결한 사람이 있으면, 다음번에도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찾습니다. "저번에도 했으니까 이번에도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처음 한두 번은 별생각 없이 도왔습니다. 그런데 두 번이 세 번이 되고 나면 이상해집니다. 부탁받아서 하던 일이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되어 있었습니다.
더 답답한 건 누구도 일부러 짐을 떠넘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회사에서는 빨리 해결되는 쪽을 찾았고, 가족은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 선택이 반복됐을 뿐인데 어느 순간 한 사람의 몫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구 한 명을 탓하기도 어렵습니다.
이상한 건 부탁이 업무로 바뀌는 순간에는 아무도 그것을 결정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회의에서 담당자를 정한 것도 아닌데 어느 날 보면 제가 그 일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지난번에 하셨으니까”라는 말이 몇 번 반복됐을 뿐입니다. 길버트의 집도 제게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가족회의를 열어 아니를 길버트가 책임지기로 정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길버트가 가장 잘했고, 가장 많이 움직였고, 그래서 다음 일도 자연스럽게 그의 차례가 됐습니다.
회사에서는 그것을 업무라고 부르고, 길버트의 집에서는 가족의 몫이라고 부를 뿐, 잘하는 사람이 다음 차례까지 맡게 되는 과정은 묘하게 닮아 있었습니다.
그날 길버트가 화낸 상대는 정말 아니었을까
아니가 생일 케이크를 망가뜨리고 나서 길버트가 동생에게 손을 올리는 장면.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길버트가 정말 케이크 때문에 화가 난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회사에서 저도 비슷한 패턴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큰 프로젝트를 처리할 때는 오히려 이상하게 침착해집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것도 아닌 작은 부탁 하나에 속에서 '왜 또 나야?'라는 말이 먼저 올라오는 날이 있습니다. 상대방은 분명 고작 한 가지를 부탁했는데, 저는 이미 한계선을 넘어서 있던 겁니다. 생각해 보면 그 사람에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전에 “알겠습니다”라고 넘겼던 일들이 그 부탁 하나에 같이 딸려 나온 겁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왜 큰 문제는 버티면서 사소한 부탁에는 예민해지는지. 지금 돌아보면 그 부탁 하나가 힘들었던 게 아니라 그전에 쌓인 일까지 한꺼번에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길버트가 케이크 앞에서 무너지는 장면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저는 길버트의 행동을 두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저는 길버트가 끝까지 참고 견디는 캐릭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지켜야 할 사람에게 가장 먼저 상처를 줬습니다. 쌓인 사정이 폭발의 이유를 설명해 줄 수는 있어도, 그 행동을 옳게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장면에서 길버트의 폭발보다 그 이전까지의 날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던 그 수백 개의 날들. 아니를 씻기고, 위험한 곳에서 내려오게 하고, 카버 부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집수리까지 감당하던 그 날들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베키를 길버트의 구원자처럼 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베키가 특별해서라기보다 그녀 앞에서는 길버트가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도 하루 종일 문제를 처리하고 나면 퇴근 후 사소한 결정 하나를 더 하는 것조차 피곤한 날이 있습니다.
그래서 베키 옆에서 웃는 길버트가 제게는 사랑에 빠진 청년이면서 동시에, 오랜만에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누군가의 아들도 형도 생계 책임자도 아닌 몇 시간. 어쩌면 길버트가 원했던 것은 마을 밖의 거창한 삶보다 그런 시간이 먼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엔 내가 못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관계를 지키는 방법일 수 있다
영화를 다 보고도 길버트를 두고 ‘가족을 위해 희생한 좋은 형’이라고만 정리하기는 싫었습니다. 그렇게 말해버리면 케이크 앞에서 무너졌던 길버트의 모습이 너무 쉽게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길버트는 너무 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가족을 위해 참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참는 동안 가족은 길버트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 알 기회조차 갖지 못합니다. 회사에서도 그랬습니다. 일이 몰렸을 때 아무 말 없이 처리하고 나서 속으로 '왜 나만 하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는데, 돌이켜보면 상대는 제가 힘들다는 사실을 제대로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계속 "알겠습니다"라고 했으니까요.
예전에는 일을 맡고도 힘들다고 말하면 능력이 부족해 보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알겠습니다”부터 말하고 나중에 혼자 방법을 찾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래 일하고 나니 그것도 항상 책임감 있는 태도는 아니었습니다. 내가 계속 괜찮다고 말하면 상대는 정말 괜찮은 줄 압니다.
길버트를 보면서 그래서 조금 답답했습니다. 가족이 길버트에게 지나치게 의지한 것은 맞지만, 길버트 역시 너무 오래 괜찮은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가족에게만 책임을 돌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말하지 않은 길버트’에게 돌리는 것도 이상합니다. 가족 안에서 가장 많이 움직이는 사람이 자기 한계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야만 주변이 알아줘야 하는 걸까요. 회사에서도 일이 특정 사람에게 계속 몰리고 있다는 사실은 당사자가 쓰러져야만 보이는 문제가 아닙니다.
주변에서도 충분히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길버트에게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라고 묻기 전에 가족에게도 “왜 아무도 먼저 묻지 않았을까?”라고 묻고 싶었습니다.
물론 가족 관계는 직장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회사라면 업무를 다시 나누자고 제안할 수도 있고, 담당자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업무분장표가 없습니다. 누가 조금 더 잘하면 그 사람이 더 많이 하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원래 그의 몫이었던 것처럼 굳어집니다.
저도 예전에는 일을 거절하면 결국 다른 사람이 대신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냥 맡는 쪽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몇 번 해결하고 나면 다음에는 부탁을 받기도 전에 제 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는 ‘못 하겠다’는 말을 늦게 하는 것 역시 좋은 책임감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길버트가 조금 일찍 “못 하겠다”라고 말했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니는 여전히 돌봄이 필요하고, 보니의 상황도 그대로였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길버트에게 쉽게 해결책을 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말한다고 곧바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한계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가족이 집을 태우는 장면도 저는 마냥 아름답게 보지는 못했습니다. 어머니의 시신이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막으려는 선택에는 가족의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집에는 길버트가 떠나지 못했던 시간까지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길을 보며 ‘이제 자유다’라는 생각보다 ‘이 정도까지 해야 끝낼 수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게 오히려 씁쓸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길버트 그레이프는 어떤 영화인가요?
A. 1993년 라세 할스트롬 감독의 작품으로, 인구 109명의 작은 마을 앤도라에서 장애를 가진 동생 아니와 집 밖을 나오지 않는 어머니를 돌보며 가족 전체를 떠받치는 청년 길버트의 이야기입니다. 조니 뎁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았으며, 디카프리오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큰 사건보다 길버트가 매일 반복하는 작은 일들이 쌓이면서 인물의 피로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저는 사건보다 그의 표정을 더 많이 보게 됐습니다.
Q. 길버트가 아니에게 손을 올린 이유가 뭔가요?
A. 케이크는 직접적인 계기였지만, 저는 그 장면을 케이크 하나 때문에 벌어진 일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전까지 길버트가 아니를 돌보고 가족의 생계와 집안 문제까지 계속 감당해온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게는 오래 눌러두었던 짜증과 피로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잘못된 방식으로 터진 순간처럼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아니에게 손을 올린 행동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해할 수 있는 이유와 용납하기 어려운 행동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 때문에 이 장면이 더 불편했습니다.
더는 자기 차례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얼굴
영화를 보고 나니 회사에서 들었던 “이번에도 좀 봐주세요”라는 말이 전과 조금 다르게 들렸습니다. 부탁한 사람이 나쁜 것도 아니고, 맡은 사람이 지나치게 착해서 생긴 일만도 아니었습니다. 이상한 건 아무도 중간에서 “왜 계속 이 사람이 하고 있지?”라고 묻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불타는 집보다 케이크를 앞에 둔 길버트를 더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동생에게 손을 올린 순간보다 그 직전의 얼굴입니다.
화가 난 사람의 얼굴이라기보다, 이번만큼은 자기 차례가 아니었으면 하는 사람의 얼굴.
회사에서 비슷한 표정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저도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던 날이 있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