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엄마와 며칠 동안 말을 하지 않은 적이 있습니다. 싸운 것도 아니었는데 같은 집에서 필요한 말조차 꺼내지 못했던 그 며칠이, 《레이디 버드》를 보는 내내 계속 떠올랐습니다. 2017년 그레타 거윅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새크라멘토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열일곱 살 소녀입니다. 그런데 저는 크리스틴의 뉴욕행보다, 서로 아끼면서도 번번이 가장 아픈 말을 골라 하는 엄마와 딸에게 더 오래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탈출하고 싶다는 것, 그 마음의 정체
크리스틴은 부모가 지어준 이름조차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고 부릅니다. 저는 처음에는 이것을 흔한 사춘기 반항 정도로 봤습니다. 그런데 집 주소까지 숨기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 아이가 바꾸고 싶었던 것은 이름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이름도, 집도, 친구도, 자신이 사는 도시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자신을 이루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바꾸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새크라멘토,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 자신이 속한 학교와 친구들. 크리스틴의 눈에는 지금 자신을 둘러싼 것보다 다른 곳에 있는 것들이 더 좋아 보입니다. 제가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크리스틴이 자기 집 주소를 속이고, 오래된 친구 줄리를 밀어내는 장면에서는 솔직히 불편했습니다. 더 좋은 환경을 원하는 마음 자체는 자연스럽지만, 그 방식이 다른 사람을 도구처럼 쓰는 것으로 이어지는 순간 선을 넘는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틴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정작 인기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하자 그들의 눈치를 보며 집까지 숨깁니다.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자신에게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만 신경 쓰고 있는 겁니다. 저는 이 모습 때문에 크리스틴을 마냥 당당한 아이로 볼 수 없었습니다. 남에게서 벗어나겠다고 뛰쳐나왔는데 또 다른 남의 시선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으니까요.
엄마와 딸이 싸우는 진짜 이유
제가 엄마와 며칠 동안 말을 하지 않았던 건 할머니를 함께 돌보던 시기였습니다. 처음부터 크게 싸운 건 아니었습니다. 사소한 말 하나가 거슬렸고, 거기에 한마디를 보태고, 상대도 지지 않으려 받아쳤습니다. 평소 같으면 넘겼을 말들이 그날은 이상하게 전부 아프게 들렸습니다. 결국 해서는 안 될 말까지 나왔고, 돌아서고 나서 바로 후회했지만 먼저 말을 걸진 못 했습니다.
《레이디 버드》에서 크리스틴과 엄마 매리언의 갈등을 보면서 그 며칠이 겹쳐 보인 이유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싫어해서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가까워서 상대가 어디서 상처받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아픈 말을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남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을 엄마에게는 했습니다.
매리언은 딸이 현실에서 다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 걱정이 크리스틴에게는 "너는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평가처럼 들립니다. 여기서 제가 매리언에게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 한 말이라고 해서 그 표현까지 모두 옳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적 형편을 알려주는 것과 상대의 가능성을 먼저 깎아내리는 것은 다릅니다.
그런데 저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저만 힘들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문제 때문에 싸운 게 아니라, 같은 무게를 들고 있으면서 자기 쪽이 더 무겁다고 소리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영화에서 크리스틴과 매리언이 옷을 고르다 잠깐 같은 표정을 짓는 장면이 그걸 보여줍니다. 날을 세우던 두 사람이 마음에 드는 옷 앞에서 금세 같은 얼굴이 됩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확실해졌습니다. 이 모녀에게 부족했던 건 마음이 아니라, 그 마음을 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는 방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떠나야 보이는 것들, 그리고 크리스틴이라는 이름
영화는 크리스틴을 결국 뉴욕으로 보냅니다. 이 선택에 저는 동의합니다. 부모의 형편을 이해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가능성까지 접는 것이 반드시 성숙한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야 그곳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장면이 나옵니다.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뉴욕에서 크리스틴은 스스로를 다시 '크리스틴'이라고 소개합니다. 처음에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벗어던지고 싶었던 아이가, 가장 멀리 가서 오히려 원래 이름을 꺼냅니다. 저는 이것을 엄마의 뜻을 받아들인 결말로 읽지 않았습니다. 이제 자신의 출발점을 창피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변화에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영화 중간에는 크리스틴이 새크라멘토를 얼마나 세심하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짚는 대목이 있습니다. 관심과 사랑이 어쩌면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말을 따라가면 크리스틴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새크라멘토를 싫어하지 않았던 셈입니다. 새크라멘토에 있을 때 크리스틴은 그곳에서 벗어날 이유만 찾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뉴욕에 도착하자 반대로 자신이 두고 온 것들이 하나씩 생각납니다. 매일 지나던 길은 그곳에 있을 때 특별하지 않습니다. 떠나고 나서야 어느 모퉁이에 무엇이 있었는지 이상할 만큼 선명해질 때가 있습니다. 크리스틴에게 새크라멘토가 바로 그런 장소였던 것 같습니다.
줄리에게 돌아가는 장면도 그래서 좋았습니다. 화려한 반성도, 감동적인 선언도 없습니다. 애써 들어가려 했던 무리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꾸밀 필요가 없는 사람에게 갑니다. 저는 그 순간부터 크리스틴의 변화가 시작됐다고 봤습니다. 마지막에 엄마에게 전화하는 크리스틴도 좋았습니다. 떠난 걸 후회한다고 말하지도 않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예전에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새크라멘토의 거리를 이야기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크리스틴에게 고향이 무엇이었는지는 그 전화 한 통에 거의 다 들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레이디 버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완전한 실화를 옮긴 작품은 아닙니다. 다만 그레타 거윅 역시 새크라멘토에서 성장했고, 영화의 배경에도 그 지역이 중요하게 등장합니다. 그래서 실제 감독의 삶과 영화 사이의 공통점을 찾는 재미는 있지만, 크리스틴의 이야기를 감독 자신의 경험과 그대로 동일시해서 볼 필요는 없습니다.
Q. 레이디 버드 엄마 매리언이 너무 심하다는 의견도 있던데, 어떻게 보셨나요?
A. 저도 처음에는 답답하게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매리언을 딸을 억압하는 엄마라고만 보기도 어려웠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딸을 걱정하는 마음과 자신의 불안이 뒤섞이면서, 그것이 자꾸 날카로운 말로 튀어나오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매리언의 마음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표현 방식까지 옳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Q. 마지막에 왜 다시 '크리스틴'이라고 이름을 말하나요?
A. 저는 이 장면을 크리스틴이 '레이디 버드'를 포기했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영화 초반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름과 환경을 밀어내야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뉴욕에 도착한 뒤에는 과거를 지우지 않고도 앞으로 갈 수 있다는 쪽으로 조금 달라집니다. 그래서 마지막의 '크리스틴'은 부모에게 돌아가는 선언이라기보다 자신의 출발점을 더 이상 감출 필요가 없어졌다는 변화로 읽었습니다.
같은 집에 있었는데도 멀리 돌아왔다
《레이디 버드》를 다 보고 나니 며칠 동안 엄마와 말을 하지 않았던 시간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당시에는 누가 먼저 말을 거느냐가 이상하게 중요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 자존심이었습니다.
크리스틴은 새크라멘토를 떠나서야 자신이 무엇을 두고 왔는지 봅니다. 저는 다행히 그렇게 멀리까지 갈 필요는 없었습니다. 같은 집에 있었으니까요.
영화가 끝난 뒤 제 머릿속에 남은 것도 대단한 교훈은 아니었습니다.
"나도 힘들었는데, 엄마도 힘들었겠네."
그 말을 싸우기 전에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가족에게는 이상하게 이런 짧은 문장이 가장 늦게 나옵니다.
함께 참고한 영상
《레이디 버드》의 주요 장면과 이야기 흐름을 다시 살펴볼 때 참고한 영상입니다. 이 글에서는 특히 크리스틴과 매리언의 관계,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제 경험과 생각을 담았습니다.
《레이디 버드》 영화 리뷰 영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