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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마지막 총성도, 쿠키영상의 천국도 아니었습니다. 눈밖에 보이지 않는 설원을 혼자 걸어가던 김대위였습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지원을 얻기 위해 '가짜 찬양단'을 만든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노래하던 한 사람이었습니다. 《신의 악단》을 저는 그 장면에서부터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가짜 찬양단에서 시작된 이야기
《신의 악단》의 설정은 꽤 아이러니합니다. 대북 제재로 외화 확보가 어려워진 북한이 국제사회에 종교의 자유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주기 위해 신앙과 거리가 먼 사람들을 모아 찬양단을 조직합니다.
영화는 1990년대 북한의 종교 관련 사례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박교순과 악단원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화적 각색이 포함되어 있어 실제 사건과 영화 설정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명령 때문에 움직입니다. 찬양도 믿어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외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외워야 하는 노래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함께 연습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금씩 균열이 생깁니다.
저는 여기서 조금 다른 게 궁금해졌습니다. 명령 때문에 시작한 찬양이 어느 순간 진심이 되었다면, 그 변화는 어디에서 확인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으면서 박교순과 김대위를 따라가게 됐습니다.
설원의 김대위가 가장 오래 남았다
가장 기억에 남은 사람은 정진운이 연기한 김대위였습니다. 특히 눈 덮인 설원을 홀로 걸으며 '광야를 지나며'를 부르는 장면이 오래 남았습니다.
김대위는 처음부터 믿음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박교순과 악단원들을 감시하는 쪽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그런데 설원에 혼자 남는 순간 그런 위치도 잠시 사라집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눈밖에 없습니다. 저는 노래보다 그가 혼자 걷고 있다는 사실에 더 눈이 갔습니다. 체제의 명령과 자기 마음 사이에서 이제 어느 쪽으로 갈 것인지 스스로 정해야 하는 사람 같았습니다.
그래서 후반부 김대위의 행동도 뜬금없지 않았습니다. 단원들의 탈출을 돕는 모습을 보고 나니 앞의 설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완전한 확신을 얻었다기보다,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 없게 된 사람이 마침내 자기 쪽을 정한 것에 가까웠습니다.
오히려 《신의 악단》은 이럴 때 가장 좋았습니다. 인물이 변했다고 설명하는 대신 혼자 걷는 모습 하나를 보여줄 때였습니다.
박교순의 마지막 질문이 좋았던 이유
후반부에는 승리악단을 향한 처형 명령이 내려지고 박교순과 김대위는 단원들을 탈출시키려 합니다. 김대위는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고, 박교순 역시 붙잡혀 죽음을 앞두게 됩니다.
여기서 박교순이 전과는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국제사회를 속이기 위한 찬양단을 만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자신이 살아남는 대신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쪽으로 갑니다.
그래서 총살을 앞두고 자신의 행동이 옳았는지 묻는 순간이 좋았습니다.
목숨까지 걸었는데도 확신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 망설임 때문에 박교순이 더 사람답게 보였습니다. 처음부터 선한 사람도 아니었고 어느 순간 갑자기 완벽한 신앙인이 된 것도 아닙니다. 잘못 살아온 시간이 있는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이전과 다른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가짜 신앙이 진짜 신앙이 되는 이야기'라고만 정리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믿음이 진짜인지 말로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에게 가장 불리한 쪽으로 가는 행동은 말보다 훨씬 선명했습니다.
쿠키가 답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질문
여기까지는 영화의 방향에 상당히 공감했습니다. 다만 쿠키영상에 대해서는 생각이 조금 달랐습니다.
쿠키에서는 죽은 박교순이 과거 자신과 얽혀 있던 사람들과 다시 만나고 김대위와 함께 찬양하는 모습이 이어집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본다면 본편에서 이어진 희생과 용서, 구원을 완성하는 장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 해석에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습니다. 종교를 중요한 축으로 삼은 영화가 끝까지 자신의 방향을 유지했다는 점도 이해합니다.
그런데 저는 본편에서 끝났다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박교순은 죽음을 앞두고도 자신이 옳았는지 묻습니다. 그 질문에는 확실한 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순간이 더 좋았습니다. 그런데 쿠키가 죽음 이후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면서 영화가 스스로 답을 붙여주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비종교인에게는 특히 이 지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찬양이나 구원을 직접 설명하는 순간보다 박교순과 김대위가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움직이는 순간에 더 마음이 갔습니다.
종교영화에 종교적인 결말이 있다는 것을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신의 악단》은 모든 것을 설명했을 때보다 조금 덜 설명했을 때 제게 더 강한 영화였습니다.
관람 전 궁금했던 두 가지
Q. 신의 악단은 실화인가요?
1990년대 북한의 종교 관련 사례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알려진 작품입니다. 다만 영화 속 박교순과 악단원들의 구체적인 사건은 영화적 각색이 포함되어 있어 실제 사건과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Q. 신의 악단 쿠키영상이 있나요?
쿠키영상이 있습니다. 본편 이후 박교순과 김대위를 비롯한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죽음 이후의 구원과 재회를 보여줍니다.
아무도 없던 설원으로 다시 돌아가면
《신의 악단》은 개봉 37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어선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런 숫자보다 제가 이 영화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훨씬 작은 장면입니다.
눈밖에 없는 길을 혼자 걷던 김대위입니다.
영화가 끝난 뒤 생각해 보니 박교순도 김대위도 처음부터 좋은 사람이었던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믿고 있는지도 처음에는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에게 가장 불리한 쪽으로 갑니다.
그 행동 때문에 두 사람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믿음이 먼저였는지,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였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굳이 하나를 고를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쿠키가 구원이라는 답까지 보여주지 않았어도 저는 충분했습니다. 박교순의 마지막 질문과 아무도 없는 설원을 혼자 걷던 김대위. 저는 그 두 장면 사이에 조금의 빈칸이 남아 있는 쪽이 더 좋았습니다.
참고 자료: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 넷플릭스 《신의 악단: 찬가》 작품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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