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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엄마가 딸의 열여덟 번의 생일을 위해 선물을 남겼다. 이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애틋한 모성애를 다룬 영화라고 예상했습니다. 실제 엘리사 지로토의 사연에서 영감을 받은 《열여덟 번의 선물》을 보고 나니 정작 다른 쪽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엄마에게는 사랑이었던 열여덟 번의 선물이 딸에게도 똑같은 의미였을까. 저는 안나가 선물을 밀어내는 순간부터 그 질문을 따라가게 됐습니다.
생일마다 엄마의 빈자리도 도착했다
엘리사는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딸 안나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매년 받을 생일 선물을 준비합니다.
처음에는 안나의 반응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만나보지도 못한 엄마가 자신을 생각하며 남긴 물건인데 조금 더 소중하게 받아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생일을 안나의 자리에서 바라보니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는 감동적인 선물이지만 안나에게는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해마다 다시 꺼내보는 물건일 수도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감동할수록 정작 당사자는 기뻐해야 한다는 부담까지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때부터 안나의 반항이 철없는 행동으로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엘리사는 딸에게 사랑을 남겼지만, 안나는 그 사랑과 함께 엄마의 부재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같은 상자 하나를 두고 엄마와 딸이 전혀 다른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랑으로 시작했다고 방법까지 옳을까
그렇다고 엘리사의 선택을 쉽게 비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함께하지 못할 딸의 미래를 상상하면서 열여덟 번의 선물을 준비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저라도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려 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사랑하는 마음과 그 방법은 따로 볼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엘리사는 열 살의 안나가 무엇을 좋아할지 알 수 없었고, 열여덟 살에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결국 선물에는 엄마의 사랑뿐 아니라 아직 만나지 못한 딸의 미래를 대신 상상한 선택도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열여덟 번의 선물을 무조건 아름답다고만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주는 사람에게는 사랑이어도 받는 사람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안나가 그 선물을 싫어했다고 해서 엘리사의 마음까지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둘 중 한쪽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아도 두 감정은 함께 존재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불편한 간격 때문에 이 작품을 흔한 모성애 이야기로만 보기 어려웠습니다.
열여덟 번의 선물보다 평범한 하루가 보였다
이 대목에서 외할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외할머니를 집으로 모시기로 했을 때 제가 붙잡았던 생각은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살아계시는 동안만큼은 후회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지낸다고 해서 특별한 일이 매일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같이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별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는 날이 대부분입니다.
예전에는 그런 시간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열여덟 번의 선물》에서 엘리사가 자신이 함께할 수 없는 미래를 물건으로 채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오히려 제가 지금 보내고 있는 평범한 하루가 먼저 보였습니다.
누군가는 떠난 뒤를 위해 사랑을 남기고, 누군가는 아직 함께 있는 시간을 위해 오늘을 내어놓습니다.
어느 쪽이 더 크다고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지금의 저에게는 후자가 조금 더 가까웠습니다.
나중에 남겨진 물건을 바라보며 그때 더 잘할 걸 생각하는 것보다 오늘 같이 밥 한 끼 먹는 일이 더 중요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영화 제목처럼 제게 오래 남은 것은 열여덟 번의 선물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아무 일 없이 같이 지나간 하루였습니다.
과거로 돌아가면 정말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는 여기서 현실에 판타지를 섞습니다. 열여덟 번째 생일날 사고를 당한 안나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시간에서 젊은 엘리사를 만나게 됩니다. 실제 사연에서 가져온 부분이 아니라 영화가 만든 설정입니다.
이 장치는 꽤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동안 완성된 선물만 받아왔던 안나가 이번에는 엄마 옆에서 그것을 고르는 과정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건만 알던 딸이 처음으로 그 물건을 준비한 사람을 알게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부분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했습니다.
현실에서는 떠난 사람에게 돌아가 그때 왜 그랬느냐고 물어볼 수 없습니다. 뒤늦게 상대의 사정을 이해한다고 해도 오랫동안 쌓인 섭섭함까지 한꺼번에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안나가 엄마를 조금 덜 이해한 채 돌아왔어도 괜찮았을 것 같습니다.
엄마의 선택을 받아들이는 것과 엄마 없이 자란 자신의 외로움을 인정하는 일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그 틈을 조금만 더 남겨두었다면 저는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를 오래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 상자를 닫고 나서 남은 것
《열여덟 번의 선물》은 실제 엘리사 지로토의 사연에서 영감을 받은 2020년 이탈리아 영화입니다. 딸의 미래 생일을 위해 선물을 준비한 엄마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안나가 과거의 엘리사를 만나는 과정은 영화가 더한 판타지입니다.
이 둘을 구분하고 나니 작품이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제게는 실화라서 더 슬픈 영화라기보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같은 행동을 얼마나 다르게 기억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였습니다.
엘리사는 자신이 없는 미래에도 딸과 연결되고 싶었습니다. 반면 안나는 상자를 열 때마다 만나지 못한 엄마를 떠올려야 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틀렸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외할머니와 함께 지내는 지금의 저에게는 그래서 하나의 질문만 남았습니다.
내가 사랑이라고 믿으며 하고 있는 일이 그 사람에게도 같은 마음으로 닿고 있을까.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질문에는 쉽게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참고 자료: Lucky Red — 18 Regali 공식 작품 소개
Netflix — 열여덟 번의 선물 공식 작품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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