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와, 영상 진짜 예쁘다” 이 정도였다. 사랑도 되게 고급스럽고, 절제된 느낌이라서 뭔가 멋있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근데 다시 보니까 전혀 다르게 보였다. 이건 예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끝까지 사랑을 못 해본 사람들 이야기였다. 좋아하면서도 말 못 하고,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결국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는 사람들. 이상하게 그게 요즘 내 모습이랑 겹쳤다. 나는 하루를 살면서 계속 신경을 쓴다. 실수하면 안 되고, 문제 생기면 안 되고,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니까 그걸 내가 잡고 있어야 한다. 위에서는 결과만 얘기하고, 아래에서는 힘들다는 티가 올라오고, 그 사이에서 나는 그냥 조용히 정리한다. 누가 보면 “중심 잡는 사람”,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아무 이유 없이 버텨야 할 때, 사람들은 뭘 붙잡을까요. 저는 그 답을 다큐멘터리 한 편에서, 그리고 매일 아침 저를 깨우는 고양이 두 마리에게서 찾았습니다. 워낭소리 속 할아버지가 40년 된 소를 놓지 못하는 장면이 단순히 짠하게만 느껴지지 않은 건, 그게 제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삶의 무게 — 워낭소리가 보여주는 것워낭소리는 2009년 개봉한 독립 다큐멘터리입니다. 70대 노부부와 40년을 함께한 늙은 소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당시 독립 다큐 사상 최초로 관객 수 2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힘든 농촌 삶'을 담은 영화겠거니 했습니다.근데 막상 보니 전혀 달랐습니다.할아버지는 혈압이 높아서 의사에게 "심하면 심장마비까지 올 수 있으니 일을 줄여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
누군가 "대부는 마피아 영화"라고 말한다면, 저는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직접 세 편을 다 봤을 때 느낀 건 총격이나 권력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조금씩 달라지는가'에 대한 묘하게 불편한 현실감이었습니다. 그 불편함이 오래 남아서 이 글을 씁니다.마이클 콜레오네는 정말 타락한 것인가일반적으로 마이클 콜레오네를 두고 "순수했던 청년이 권력에 물들어 타락했다"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 대부를 봤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보다 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건 타락이 아니라 적응에 가깝습니다.마이클은 처음부터 총을 들겠다고 나선 인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족의 사업과 거리를 두려 했던 유일한 대학생이었습니다. 그가 솔로조와 부패한 경찰 서장을 직접 처단하겠다고..
당신은 지금 자유롭습니까? 문이 잠겨 있지 않은데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올드보이를 보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린 질문이 그것이었습니다. 피가 튀는 장면보다, 아무것도 없는 방 안에서 혼자 15년을 버티는 오대수의 모습이 훨씬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감금 심리: 이유를 모른 채 갇히면 사람은 어떻게 무너지는가영화 속 오대수는 이유도 모른 채 어딘가에 감금됩니다. 14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바깥공기를 마시는 장면, 솔직히 저는 그게 그냥 극적 장치가 아니라 심리학적으로 정확한 묘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감금 상태에서 인간이 겪는 심리적 반응을 심리학에서는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학습된 무력감이란 반복적으로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노출될 ..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제가 날마다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영화 렌탈 패밀리는 도쿄에서 7년째 단역을 전전하는 미국인 배우 필립의 이야기입니다. 돈을 받고 가짜 관계를 파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보는 내내 제 얘기처럼 느껴져서 좀 불편했습니다.관계 연기: 우리가 모르는 사이 맡아온 역할필립은 장례식장에서 '슬픈 미국인 역'을 맡으면서 렌탈 패밀리라는 서비스를 알게 됩니다. 여기서 렌탈 패밀리란 결혼식 하객, 가짜 부모, 연인, 심지어 상사까지 사람 자체를 대여해 주는 서비스를 말합니다. 실제로 일본에는 이런 서비스가 존재하고, 수요도 꾸준합니다.처음엔 저도 이게 낯설고 기이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저 역시 오래전부터 비슷한 일을 해왔더군요. 직장에서는 '일 잘하는 ..
잘 나가던 에이전트가 하루아침에 해고된다. 그 이유가 "사람답게 일하자"는 제안서 한 장 때문이었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때 웃음이 나오면서도, 동시에 뭔가 찔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1996년 개봉한 영화 제리 맥과이어는 그렇게 첫 장면부터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시스템이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가스포츠 에이전트(Sports Agent)란 선수와 구단 사이에서 계약 협상, 스폰서십 유치, 커리어 관리 등을 대행하는 직종입니다. 쉽게 말해 선수의 모든 비즈니스적 창구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영화 속 제리 맥과이어는 72명의 선수를 혼자 관리하는 거대 매니지먼트 회사 SMI 소속 에이전트였습니다. 숫자만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그 내면은 전혀 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