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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인턴》 원작과 한국판, 달라진 건 나였다

dailyroutine15 2026. 9. 19. 22:50

목차


    《인턴》 원작과 한국판, 달라진 건 나였다

    원작 《인턴》을 처음 봤을 때는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벤이 부러웠습니다. 회사에 저런 사람이 한 명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 최민식의 기호가 등장하는 한국판 《인턴》을 보고 나니 시선이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이번에는 좋은 선배를 찾기보다 지금의 제가 어떤 선배에 가까운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번에는 기호의 자리가 먼저 보였다

    기호는 출판사에서 30년 넘게 일한 뒤 패션 스타트업 우투에 실버 인턴으로 들어갑니다.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일했지만 새로운 회사에서는 다시 막내입니다.

    메신저와 축약어가 익숙하고 AI까지 업무에 사용하는 직원들 사이에서 기호의 정장과 느린 말투는 금방 눈에 띕니다. 여기서 마음에 들었던 건 그가 젊은 직원들의 방식을 평가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도 품질관리 일을 오래 하면서 익숙해진 방식이 있습니다. 비슷한 불량을 여러 번 보다 보면 증상만 보고도 몇 가지 원인이 먼저 떠오릅니다. 오래 일해서 생긴 감각이 분명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상이 너무 빨리 확신으로 바뀌면 오히려 확인해야 할 것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시간이 쌓이면 답을 많이 알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기호를 보면서는 많이 알게 된 뒤에도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더 어려운 문제처럼 보였습니다.

     

    길을 알면서도 앞장서지 않는 사람

    한국판에서 특히 재미있었던 변화는 기호가 과거에 전국 지도를 만들었다는 설정입니다. 한때 수많은 길을 다뤘던 사람이지만 선우에게 자신의 지도를 펼쳐놓고 따라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선우는 정반대에 있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길을 따라가기보다 자신의 회사를 만들고 빠르게 키웠습니다. 겉으로는 거침없어 보여도 중요한 선택 앞에서는 계속 흔들립니다.

    기호는 그런 선우 옆에서 먼저 운전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필요한 것을 챙깁니다. 조언보다 행동이 앞섭니다. 저는 이 순서에 동의했습니다. 오래 일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의 선택까지 대신 결정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일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남에게 해줄 말도 많아집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이 항상 정답은 아닙니다. 때로는 스스로 판단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편이 더 어려운 도움일 수도 있습니다.

     

    기호에게 동의하면서도 걸렸던 부분

    그렇다고 기호의 모든 모습이 현실적으로 느껴진 것은 아닙니다. 그는 상대가 필요한 순간을 너무 잘 알아채고, 대부분 적당한 거리에서 기다렸다가 필요한 말을 꺼냅니다.

    실제 회사에서는 그렇게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누구나 자기 업무와 일정에 쫓기고,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설명하다 보면 답답해질 때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익숙한 방법이 빠르다는 이유로 후배에게 그대로 따르라고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호는 현실에서 흔히 만나는 사람이라기보다 우리가 만나고 싶어 하는 선배에 조금 더 가까워 보였습니다. 영화이기에 가능한 인물이라는 반론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저 역시 그 부분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기호가 조금 더 자주 실수하고, 자신이 믿어온 방식 때문에 잘못 판단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러고도 다시 상대의 말을 듣는 사람이었다면 저는 이 인물을 더 현실적으로 받아들였을 것 같습니다.

     

    원작과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던 이유

    원작을 봤던 당시에는 벤 같은 사람이 제 옆에 있기를 바랐습니다. 한국판을 보고 극장을 나올 때는 질문의 방향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어떤 선배일까.

    그래서 두 작품 중 어느 쪽이 더 좋다고 순위를 매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벤을 봤던 때와 기호를 만난 지금 사이에 제 회사 생활도 그만큼 길어졌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오래 일했다는 게 정답을 많이 갖는다는 뜻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알고 있는 것을 바로 말할 때와 한 번 더 확인해야 할 때, 그리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순간을 구분하는 일이 오히려 어려워졌습니다.

    원작에서는 만나고 싶은 선배를 봤습니다. 한국판에서는 앞으로 제가 어떤 선배가 될지를 생각했습니다.

    같은 《인턴》을 다시 만난 줄 알았는데, 극장을 나오고 보니 달라져 있던 건 영화보다 저였습니다.

     

    참고 자료: 김도영 감독 인터뷰 - 기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