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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S 대원들이 장비를 챙깁니다. 영사관은 이미 공격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출발하지 못합니다. 《13시간》에서 가장 답답했던 순간입니다. 화면만 보고 있으면 답은 쉬워 보입니다. 당장 가야 합니다. 다만 저는 이미 사건의 결과를 알고 그 장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결과를 알고 보는 사람의 판단
《13시간: 더 시크릿 솔저스 오브 벵가지》는 2012년 리비아 벵가지에서 발생한 미국 시설 공격을 바탕으로 합니다. 사건 전체를 설명하기보다 현장에 있던 GRS 대원들을 가까이 따라가는 영화입니다.
대원들이 기다리는 몇 분은 길게 느껴집니다. 표정도 보이고 무전도 들립니다. 반면 왜 바로 출발할 수 없는지는 그만큼 가까이 보여주지 않습니다. 저도 어느 순간 대원들 편에서 “왜 아직도 안 가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후반부에서 그 생각이 한번 걸렸습니다. 기지로 접근하는 차량이 보이는데 누가 타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군일 수도 있고 공격자일 수도 있습니다. 기다리면 위험하고 먼저 공격했다가 틀리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몇 초 뒤에 벌어질 일을 모르는 사람이 내리는 선택은 결과를 알고 영화를 보는 제 선택과 같을 수 없었습니다. 실제 조사에서도 Annex 보안팀의 출발이 잠시 지연된 사실은 확인됐지만, 의도적으로 출발을 지연하거나 방해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영화에서 느낀 답답함만으로 그날의 상황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었습니다.
확인할 시간과 움직여야 할 시간 사이
이 애매함은 제 일에서는 훨씬 작은 규모로 경험해 봤습니다. 품질관리 업무를 하다 보면 후배가 불량품을 들고 와서 어디부터 확인해야 하느냐고 물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바로 원인을 정하기보다 같은 현상이 다시 나오는지부터 봅니다. 작업, 자재, 설비 가운데 어디서 문제가 시작됐는지도 하나씩 좁혀갑니다.
그런데 생산라인은 그 답이 나올 때까지 멈춰 있지 않습니다. 확인하는 사이에도 제품은 만들어집니다. 반대로 근거가 부족한데 공정을 세우면 정상 제품과 생산계획까지 영향을 받습니다.
전쟁과 제조 현장을 비교하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제가 알아본 건 상황이 아니라 그때의 감각이었습니다. 확신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한데 가만히 있기에는 불안한 순간. 현장에서는 이런 시간이 생각보다 자주 생깁니다.
그래서 대원들의 조급함에는 공감하면서도 반대편을 쉽게 무능하다고 부르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영화가 누구의 시간을 더 가까이 보여주는지는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다리는 대원들의 몇 분은 길고 답답하게 보여주지만, 그들을 기다리게 만든 쪽의 사정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긴장감은 강해지지만 그만큼 관객의 감정도 한쪽으로 기울 수 있습니다.
옥상에서 아래를 바라보던 몇 초
마이클 베이 영화답게 후반부 총격전은 거칠고 빠릅니다. 그런데 기억에 박힌 건 폭발보다 옥상에서 어둠을 살피던 대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멀리서 차량이 다가옵니다. 총은 준비돼 있지만 바로 쏘지 않습니다. 누가 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초반에는 빨리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을 답답하게 바라봤는데, 여기서는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13시간》을 “지원이 늦어서 벌어진 비극”이라고 한 줄로 정리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영화는 GRS 대원들이 보고 겪은 상황을 아주 가까이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날의 모든 사정을 알게 된 것은 아닙니다.
총을 든 여섯 명을 영웅처럼 보이게 만드는 장면은 많습니다. 제 눈에는 누군가 다가올 때마다 적인지 아군인지 다시 확인해야 했던 모습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쏠 것인가, 조금 더 기다릴 것인가.
《13시간》에서 제가 가장 오래 바라본 건 총알이 날아가는 순간보다 그 직전의 몇 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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