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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어느 가족, 사랑만으로 가족이 될까

dailyroutine15 2026. 9. 14. 10:50

목차


    어느 가족, 사랑만으로 가족이 될까

    《어느 가족》을 보고 가장 먼저 마음에 걸린 사람은 오사무도 노부요도 아니었습니다. 쇼타였습니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생활 방식 안에서 가장 먼저 이상함을 느끼고, 자신이 배운 행동을 의심하기 시작한 사람이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혈연과 비혈연의 대결보다, 누군가를 품는 것과 제대로 책임지는 것의 차이에 더 가까운 이야기로 봤습니다.

     

    가장 먼저 이 집을 의심한 건 쇼타였다

    오사무는 쇼타에게 도둑질을 자연스럽게 가르칩니다. 처음에는 둘만의 규칙처럼 보이고, 쇼타 역시 별다른 의심 없이 따라갑니다. 그런데 유리까지 그 행동에 끌어들이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쇼타는 자신이 해오던 일을 처음으로 한발 떨어져 바라봅니다. 특히 유리가 혼자 물건을 훔치려 할 때 쇼타가 보이는 반응은 이전과 다릅니다. 어른이 가르친 방식을 아이가 먼저 의심하기 시작한 셈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오사무를 마냥 좋은 사람으로 볼 수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밥을 주고 웃게 만드는 것도 어른의 역할이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려주는 것도 같은 책임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오사무가 쇼타를 아끼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은 있었을 겁니다. 다만 누군가를 좋아하고 걱정하는 감정이 그 사람에게 잘못된 방법을 가르친 행동까지 괜찮게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쇼타가 이 집의 도덕적인 기준점처럼 보였습니다. 어른들이 익숙해져 버린 잘못을 아이가 먼저 불편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오래 남았습니다.

    한 장면: 쇼타가 절도를 의심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저는 이 집을 이전과 같은 눈으로 볼 수 없었습니다.

     

    LA갈비보다 오래 남은 건 그 집의 분위기였다

    고등학교 때 유난히 자주 놀러 가던 친구 집이 있었습니다. 늦으면 그냥 자고 오는 날도 많았고, 밥때가 되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식탁 한쪽에 자리가 생겼습니다.

    친구 어머니가 해주시던 LA갈비와 떡볶이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맛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그 집에 있을 때의 기분입니다. 친구 어머니와 아버지가 저를 불편하게 대하지 않았고, 저 역시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눈치를 보지 않았습니다.

    남의 집인데도 어느 순간부터 남의 집 같지 않았습니다.

    《어느 가족》에서 유리가 처음 오사무의 집에 들어오는 장면을 보면서 그 기억이 겹쳤습니다. 이미 여러 사람이 붙어살아 비좁은 곳인데도 아이 한 명이 들어갈 자리가 생깁니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아도 한 사람 몫은 따로 놓입니다.

    물론 제가 친구 집에서 느꼈던 편안함과 유리의 상황을 같은 선에 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닮아 있었습니다. 어떤 공간을 내 자리처럼 느끼게 만드는 건 넓이도, 성씨도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자연스럽게 한 자리를 내어주고, 밥을 먹었는지 먼저 챙기는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기억을 아름답게만 두지 않습니다. 유리가 편안함을 얻은 집이 동시에 잘못된 행동을 배우게 되는 공간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집을 쉽게 좋은 곳이라고 부르기도, 나쁜 곳이라고 잘라 말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내 기억: 친구 집에서 오래 남은 건 음식의 맛보다, 손님처럼 느끼지 않았던 분위기였습니다.

     

    아빠라고 불렀지만, 좋은 아빠였다는 뜻은 아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누가 더 올바른 가족인가를 따지는 일이 별 의미가 없게 느껴졌습니다. 혈연으로 이어졌다고 아이에게 안전한 곳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피가 섞이지 않았다고 그 안에서 생긴 애정까지 거짓이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쇼타가 버스 안에서 오사무를 향해 혼자 “아빠”라고 부르는 장면이 더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오사무는 끝내 그 말을 듣지 못합니다.

    저는 오히려 그게 좋았습니다. 만약 그 한마디를 듣고 두 사람의 관계가 아름답게 정리됐다면, 그동안의 잘못까지 한꺼번에 지워지는 느낌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쇼타가 오사무를 아빠라고 불렀다는 것과 오사무가 좋은 아빠였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오사무에게 받았던 애정은 분명 쇼타에게 남아 있었을 겁니다. 동시에 절도를 배웠던 기억과, 위기 상황에서 버려질 뻔했던 상처도 함께 남아 있었을 겁니다.

    저는 이 두 감정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에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은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실망할 수 있고, 고마워하면서도 그 사람의 잘못까지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오래전 친구 집 식탁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LA갈비와 떡볶이도 기억나지만, 지금 더 선명한 건 그 집의 어른들이 어린 저를 어떻게 대해줬는가입니다.

    그래서 《어느 가족》을 보고 난 뒤 제게 남은 질문은 누가 진짜 가족인가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가족이 되고 싶다면,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 걸까요.

     

    참고: Festival de Cannes - Shoplif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