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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추방 결말, 알렉스가 묻지 않은 한마디

dailyroutine15 2026. 9. 13. 22:13

목차


    저도 베라가 불륜을 고백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가 당신의 것이 아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알렉스가 느낀 배신감부터 이해됐습니다. 그런데 결말까지 보고 나니 처음 장면을 다시 떠올리게 됐습니다. 베라는 왜 그렇게 어렵게 표현했고, 알렉스는 왜 한 번도 뜻을 되묻지 않았을까. 저는 두 사람 사이에 빠져 있던 그 한 번의 질문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추방 결말, 알렉스가 묻지 않은 한마디

     

    저도 베라의 고백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베라는 임신 사실을 알리며 아이가 알렉스의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다른 의미를 떠올리기 어려웠습니다. 남편 입장에서 충격을 받는 것도, 관계가 무너졌다고 느끼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로버트를 통해 아이가 실제로 알렉스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초반의 고백이 전혀 다르게 들렸습니다. 베라가 꺼내고 싶었던 이야기는 친부가 누구냐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가족 안에 있으면서도 혼자였고, 남편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라기보다 그의 삶 안에 묶여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던 자신의 상태에 가까웠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도 베라의 표현에 완전히 공감되지는 않았습니다. “당신의 아이가 아니다”라는 한마디에 그렇게 복잡한 마음을 담아놓고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건 너무 어려운 요구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고 있던 저부터 정반대로 받아들였으니까요.

    한 줄 생각: 베라의 마음은 이해됐지만, 그 한마디만으로 속뜻까지 알아차리기는 어려웠습니다.

     

    알렉스가 화난 것까지는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첫 반응만 놓고 알렉스를 몰아붙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아내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흔들리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제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건 그다음 행동입니다. 알렉스는 베라에게 돌아가 무슨 뜻인지 확인하기보다 형 마크를 찾아갑니다. 두 형제가 죽일지 용서할지를 이야기하는 동안 정작 당사자인 베라가 왜 그런 고백을 했는지는 점점 뒤로 밀립니다.

    여기서 문제의 성격이 바뀝니다. 어느 순간부터 ‘베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보다 ‘배신한 아내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집니다.

    모르면 다시 물을 수도 있었고, 화가 났다면 차라리 크게 싸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렉스는 확인보다 판단을 먼저 선택합니다. 저는 그 순간부터 두 사람의 관계가 돌이키기 어려운 방향으로 넘어갔다고 봤습니다.

     

    용서한다고 했지만 누구를 위한 선택이었을까

    알렉스는 결국 베라와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가정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선택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붙습니다. 아이를 없애고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알렉스의 ‘용서’가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용서하는 사람도 알렉스이고, 관계를 다시 시작하는 조건을 정하는 사람도 그였습니다. 베라의 몸과 아이에 관한 일인데도 가장 중요한 결정에서 그녀의 의사는 좀처럼 자리를 얻지 못합니다.

    알렉스는 가족을 지키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불편했습니다. 자신은 관계를 되돌린다고 믿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전부터 이어져온 방식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위한 선택이라고 믿더라도 그 사람에게 묻지 않는 순간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알렉스는 베라를 받아들이려 했지만, 정작 베라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는 끝까지 듣지 않았습니다.

    한 줄 생각: 알렉스의 용서는 관계를 회복하는 선택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도 베라가 결정할 자리는 거의 없었습니다.

     

    둘 다 답답했지만 같은 잘못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결말을 알고 나면 베라가 얼마나 외로웠는지는 분명해집니다. 그렇다고 그녀의 행동까지 모두 납득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조금만 더 직접적으로 털어놓았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왜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잘못 받아들이기 쉬운 방식으로 이야기했을까. 그런 답답함은 마지막까지 남았습니다.

    반대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미 오랫동안 자신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 관계였다면 베라에게 평범한 대화가 가능했을까. 그 부분은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두 사람의 책임을 똑같은 무게로 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마음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과, 확인하지 않은 채 상대의 몸과 앞으로의 삶까지 결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추방》을 보고 난 뒤 베라의 죽음보다 초반의 짧은 대화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저 역시 그녀의 뜻을 잘못 받아들였습니다. 베라의 한마디만으로 그 속뜻까지 알아채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모르면 물어볼 수는 있습니다.

    알렉스가 끝내하지 않았던 그 한 번의 질문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 《추방(The Banishment)》은 안드레이 즈뱌긴체프 감독의 2007년 작품입니다.
    참고: Festival de Cannes - The Banish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