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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가능한 사랑, 달 사진은 보냈을까

dailyroutine15 2026. 9. 30. 22:45

목차


    가능한 사랑, 달 사진은 보냈을까

    164분을 따라갔는데 마지막에 붙잡힌 건 달 사진 한 장이었습니다. 미옥은 달을 찍고 예지와의 채팅창을 엽니다. 그런데 전송 버튼을 눌렀는지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해고와 파업, 계급과 욕망을 지나온 영화가 마지막에는 손가락 하나의 망설임 앞에서 멈춥니다. 저는 오히려 그 애매함 때문에 《가능한 사랑》이라는 제목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 달려오는 사람

    미옥이 예지의 비싼 가방을 검색해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해고 노동자를 찍으러 오면서 그런 옷을 입는 것이 맞느냐고 지적합니다. 부러워하면서 비판하는 셈입니다. 저는 그 모순 때문에 오히려 미옥이라는 사람이 현실적으로 보였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졌다고 좋은 것을 갖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더 강하게 남은 물건은 상우 집안의 호루라기였습니다. 영화에서는 일제강점기 순사였던 상우의 할아버지가 사용했던 물건으로 등장합니다. 어린 상우가 호루라기를 불러 별장 관리인의 아들 민식을 불렀고, 어른이 된 뒤에도 부르는 사람과 오는 사람의 위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별장 정원에서 미옥의 아들 철이가 민식과 함께 화단에 물을 주는 모습도 그냥 지나가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두고 '가난은 반드시 대물림된다'고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미옥의 눈에는 자신이 서 있던 자리가 아들에게도 이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먼저 보였습니다.

    OECD는 세대 간 사회이동을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자녀가 성인이 되어 도달하는 위치의 관계를 살펴보는 개념으로 다룹니다. 최근 연구에서도 여러 국가에서 부모의 배경과 자녀의 소득·교육·직업적 결과 사이에 연관성이 이어지는 문제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OECD 세대 간 사회이동 연구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통계부터 떠오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철이가 정원에 물을 주는 몇 초가 먼저였습니다. 누가 이 공간의 주인이고 누가 관리하는 사람인지, 그리고 자신의 아이는 어느 쪽에 서게 될지 바라보는 미옥의 표정이면 충분했습니다.

    제가 본 핵심: 《가능한 사랑》의 계급은 가진 돈의 액수보다 누가 부르고 누가 움직이는지, 그 관계가 다음 세대에는 어떻게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카메라를 든 사람에게도 선은 필요하다

    호석이 별장 인터뷰 도중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장면에서는 예지를 어느 쪽에 놓아야 할지 망설였습니다. 호석을 바라보는 걱정스러운 표정은 거짓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촬영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확인합니다.

    저는 이 순간 예지에게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습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고 상대의 가장 아픈 순간까지 촬영할 권리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카메라를 내려놓는 것만이 옳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아무도 기록하지 않는다면 밖에서는 영영 알기 힘든 삶도 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위로하고 싶은데, 기록하는 사람에게는 바로 그 순간이 놓쳐서는 안 될 장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지를 착한 사람이나 타인의 고통을 이용하는 사람 중 하나로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사이에서 흔들리기 때문에 기억에 남았습니다.

    영화 속 예지는 미옥과 호석의 삶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만 결국 카메라 뒤에 있습니다. 필요하면 촬영을 멈출 수도 있습니다. 반면 미옥과 호석에게 카메라에 담긴 사건은 촬영이 끝난 뒤에도 계속되는 자신의 삶입니다.

    그 차이는 선한 마음만으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불편했던 지점: 타인의 삶을 기록한다는 일에는 관심과 선의뿐 아니라, 어디까지 들어가도 되는지를 스스로 묻는 태도도 필요해 보였습니다.

     

    10년을 만나도 모르는 마음은 있었다

    저는 한 사람과 10년 가까이 연애를 이어왔습니다. 그 정도 시간이면 상대를 꽤 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오래 함께했다는 사실이 상대의 마음을 전부 안다는 증명서는 아니었습니다.

    같은 일을 두고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때도 있었고,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마음을 시간이 지나서야 납득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지와 미옥을 보면서 둘이 서로를 얼마나 이해했는지를 따지는 것보다 다른 질문이 생겼습니다.

    모르는 부분을 남겨둔 채로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미국심리학회(APA) 심리학 사전은 공감을 상대의 관점에서 그 사람을 이해하거나 그 사람의 감정·생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저는 여기서 상대와 '같아지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자리에서 보려는 과정에 눈이 갔습니다. APA Dictionary of Psychology - Empathy

    예지는 미옥이 될 수 없고 미옥 역시 예지의 삶을 살아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가까워졌다고 경제적 조건이나 지나온 시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관계라는 게 꼭 모든 것을 알아야만 유지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지나온 시간은 그랬습니다.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계속 상대를 알려고 하는 것. 저는 두 사람 사이에서도 그 정도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봤습니다.

     

    달 사진 한 장이면 충분했던 결말

    마지막에 미옥과 호석은 나란히 앉아 달을 바라봅니다. 그동안 벌어진 일을 없었던 것처럼 만들지도 않고, 거창한 화해를 나누지도 않습니다. 미옥은 달을 찍은 뒤 예지와의 채팅창에 그 사진을 띄웁니다.

    여기서 영화가 멈춥니다.

    저는 이 사진을 두 사람의 화해 증명서처럼 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사진 하나 보낸다고 서로 다른 형편이 같아지는 것도 아니고, 카메라 앞뒤에서 생긴 불편함까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대신 아주 작은 변화는 남았습니다.

    미옥에게 예지는 여전히 좋은 것을 봤을 때 한번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현실의 관계도 생각보다 이런 상태에 오래 머무는 것 같습니다. 서운하지만 연락하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남겨둔 채 만나기도 합니다. 반대로 마음은 남아 있는데 메시지 하나를 보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게 《가능한 사랑》에서 더 중요한 단어는 '사랑'보다 '가능한'이었습니다.

    서로의 차이를 없애야 시작되는 관계가 아니라, 그 차이를 알고도 한 번 더 상대를 바라볼 수 있는 상태. 미옥이 사진을 실제로 보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그 답을 보여주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전송하기 직전까지 갔다는 것. 그 정도의 틈만 남아 있어도 두 사람 사이에는 아직 무언가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참고한 자료

    영화 속 장면에 대한 해석은 개인적인 관람 의견이며, 사회이동과 공감에 관한 개념을 확인하기 위해 아래 자료를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