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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카모메 식당, 빈자리를 지키는 방식

dailyroutine15 2026. 10. 20. 22:07

목차


    카모메 식당, 빈자리를 지키는 방식

    집 근처에 유명한 삼겹살집이 있습니다. 저녁이면 테이블이 거의 꽉 찹니다. 그런데 맞은편 고깃집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합니다. 지나가다 보면 주인이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궁금했습니다. 바로 앞집은 저렇게 붐비는데 불안하지 않을까. 메뉴를 바꾸거나 홍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카모메 식당》을 보고 난 뒤에는 그 풍경이 전과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손님 없는 한 달, 그래도 밥을 짓는 사치에

    핀란드 헬싱키에서 작은 식당을 연 사치에는 한동안 텅 빈 가게를 지킵니다. 매일 쌀을 씻고 물을 맞추고 음식을 준비합니다. 제가 처음 눈여겨본 건 여유라기보다 이상할 정도의 태연 함이었습니다.

    나라면 달랐을 것 같습니다. 음식이 문제인지, 가격 때문인지, 자리가 좋지 않은지 하나씩 따져봤을 겁니다. 월세와 재료비까지 떠올리면 저렇게 차분하게 밥을 지을 자신도 없습니다.

    그래서 초반의 사치에는 현실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텅 빈 식당에서 어떻게 저렇게 평온할 수 있을까. 집 앞 고깃집을 지나며 품었던 의문과 묘하게 겹쳤습니다.

    그런데 사치에는 멍하니 시간을 보내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오지 않아도 주방을 정리하고 음식을 준비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어줍니다.

    보다 보니 궁금한 것이 달라졌습니다.

    저 사람은 대체 무엇을 믿고 저 자리를 지키는 걸까.

     

    움직이자는 미도리, 자기 방식을 지키는 사치에

    미도리는 한산한 가게를 그냥 두고 보지 못합니다. 관광객에게 알려보자는 이야기도 하고,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 새로운 주먹밥을 만들어봅니다. 이 대목에서는 오히려 미도리 쪽이 이해됐습니다.

    장사가 안되면 일단 움직여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고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는 미도리가 훨씬 현실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사치에가 자기 방식만 고집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낯선 남자에게 커피 내리는 법을 배우고, 미도리의 새로운 시도에도 함께합니다. 가게에 사람이 늘면서 메뉴와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달라집니다.

    여기서 제가 초반에 잘못 본 부분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치에는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방향을 통째로 뒤집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것저것 해보면서도 자신이 어떤 식당을 만들고 싶은지는 놓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답답하게 보였던 태도가 이쯤부터 조금 다르게 들어왔습니다.

     

    빈 의자에 사람들이 하나씩 앉기 시작할 때

    처음에는 테이블도 의자도 비어 있었습니다. 토미가 찾아오고, 미도리가 주방에 들어오고, 짐을 잃어버린 마사코까지 머물면서 풍경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창밖에서 안쪽을 바라보기만 하던 현지인도 결국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그중 시나몬롤을 굽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따뜻한 냄새가 퍼지자 바깥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안으로 들어옵니다.

    물론 현실의 장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시나몬 향이 좋다고 다음 날부터 테이블이 꽉 찬다면 장사만큼 쉬운 일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이 장면을 식당 성공담으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눈에는 빈 의자가 채워지는 과정이 들어왔습니다. 처음 온 사람에게 사치에는 굳이 사정을 캐묻지 않습니다. 먼저 위로의 말을 꺼내지도 않습니다. 밥을 만들고 커피를 내리고 앉을 곳을 마련해 줍니다. 이야기는 그다음에 나옵니다.

    그 순서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누군가 힘들어 보이면 우리는 쉽게 “무슨 일 있어?”부터 묻습니다. 하지만 말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따뜻한 밥 한 끼 먹으면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을 곳이 더 편할지도 모릅니다.

    제게 카모메 식당은 그런 곳에 가까웠습니다.

     

    영화의 여유를 현실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영화가 너무 다정하게 흘러간다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실제 식당이라면 월세와 재료비를 감당해야 합니다. 사람이 오지 않는데 계속 자기 방식만 고수하는 것을 멋있다고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카모메 식당》을 ‘천천히 버티면 언젠가는 잘된다’는 이야기로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실제 장사라면 미도리처럼 알리고, 메뉴를 점검하고, 안 되는 이유를 찾아보는 행동도 필요합니다. 사치에처럼 운영한다고 모든 가게가 잘될 리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처음과 끝에서 사치에를 바라보는 제 시선은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없는 가게에서 태연하게 밥을 짓는 모습이 답답했습니다. 나중에는 같은 모습이 조금 다르게 보였습니다. 사람이 없을 때도 할 일을 하고 있었고, 새로운 방법을 배우면서도 처음 만들고 싶었던 식당의 모습까지 버리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집 앞 두 고깃집이 떠올랐습니다.

    내일 지나가도 한쪽에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맞은편 주인은 혼자 의자에 앉아 있을지 모릅니다. 예전 같으면 속으로 ‘왜 저렇게 가만히 있지?’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제는 그 말을 쉽게 못 할 것 같습니다.

    제가 그 가게 앞을 지나가는 시간은 기껏해야 몇 초입니다. 그 몇 초만 보고 그 사람이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치에도 처음에는 아무도 없는 식당에서 혼자 밥을 짓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