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10월 4일, 전날 예매해 둔 《부활남: 더 레드》를 보기 위해 수원 롯데시네마를 찾았습니다. 웹툰 원작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들어간 극장이었죠. 그런데 화려한 액션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면접에서 또 떨어진 31세 취준생 석환이었습니다.
저 역시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수없이 면접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습니다. 결과를 확인하고 다시 채용공고를 찾은 뒤 또 면접장으로 향했던 시간. 그래서 초반의 석환에게는 쉽게 마음이 갔습니다. 문제는 그가 진짜로 죽었다 살아나기 시작한 이후였습니다.
석환은 죽기 전부터 부활하고 있었다
석환(구교환)은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지면서도 다음 일상을 이어갑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예전 제 모습도 자연스럽게 겹쳐 보였죠. 취업 준비를 해보면 한두 번의 탈락보다 같은 과정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에 더 지치게 됩니다.
공고를 찾고, 지원서를 쓰고, 면접장에 가고, 떨어지면 다시 처음으로. 이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느 순간 능력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의심하게 되곤 합니다.
그래서 제게 석환의 '부활'은 초능력이 등장하기 전부터 시작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면접에서 떨어진 다음 날 다시 지원서를 여는 일도 현실에서는 꽤 많은 힘이 필요하니까요.
오히려 이 평범한 설정이 영화의 어떤 초능력보다 흥미로웠습니다. 31세 취준생과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남자. 영화가 이 두 모습을 조금 더 오래 연결했다면 석환이라는 인물이 훨씬 선명해졌을 것 같습니다.
72시간 뒤 살아났는데 너무 아무렇지 않았다
석환은 낯선 이들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은 뒤 72시간 만에 다시 깨어납니다. 부활을 거듭할수록 더 강해지는 능력까지 따라오죠. 아이디어만 놓고 보면 액션 영화와 꽤 잘 어울리는 설정입니다.
제가 걸렸던 건 능력 자체보다 석환의 반응이었습니다. 죽었다가 산속에서 깨어났다면 몸이 멀쩡하다는 안도보다 '내가 정말 죽었던 건가?'라는 공포부터 찾아오지 않았을까요. 이후 자신의 과거와 실험에 얽힌 사실을 알게 된 순간에도 석환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다음 상황으로 넘어갑니다.
물론 이 영화가 무거운 인간 드라마를 목표로 한 작품은 아닐 겁니다. 구교환 특유의 능청스러운 말투와 엉뚱한 행동을 살리려면 어느 정도 가볍게 밀어붙이는 선택도 이해되는 부분이고요.
그럼에도 죽지 않는 것과 죽는 게 무섭지 않은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죽음을 앞두고 잠깐이라도 망설이거나, 이번에도 정말 깨어날 수 있을지 의심하는 모습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런 작은 반응 하나만 있었어도 다음 액션을 바라보는 긴장감은 달라졌을 겁니다.
석환은 부활할수록 강해졌지만, 저는 반대로 그의 죽음에 점점 무감각해지는 쪽이었습니다.
구교환은 살아 있는데 석환은 희미해졌다
그래도 석환을 끝까지 보게 만든 힘은 구교환에게 있었습니다. 장난스럽게 말을 던지다가 갑자기 몸을 쓰는 특유의 리듬이 캐릭터와 꽤 잘 맞았죠. 부활이 반복되면서 달라지는 모습과 강한 색의 대비 역시 눈에 남았습니다.
다만 배우가 캐릭터를 재미있게 만드는 것과 영화가 한 사람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은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레드와 블랙의 대립, 실험과 혈청, 초인들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펼쳐질수록 제가 초반에 궁금했던 '31세 석환'은 오히려 뒤로 밀려났습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화가 났는지, 갑자기 생긴 능력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앞으로 그 힘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저는 화려한 싸움 사이에서 이런 것들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액션 판타지에 그런 고민까지 꼭 필요하냐는 반론도 가능하겠죠. 저 역시 복잡한 철학이나 긴 설명을 원했던 건 아닙니다. 몇 장면이면 충분했을 겁니다. 사람이 왜 주먹을 쥐었는지 알게 되면 같은 액션도 전혀 다르게 보이니까요.
화면은 점점 커지는데 인물은 오히려 작아지는 느낌. 제가 《부활남: 더 레드》에서 가장 아쉽게 본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마지막 취업이 그래서 더 아쉬웠다
수많은 죽음과 싸움이 지나간 뒤 석환은 결국 취업에 성공합니다. 다시 평범한 일상이 찾아오고 사람들과 떡볶이를 먹는 시간으로 돌아오죠.
저는 이 결말 자체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 역시 여러 번의 면접 탈락을 지나 지금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인지 석환의 마지막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취업 준비 당시에는 합격 한 번이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 같았지만, 지나고 보면 출근하고 밥 먹고 하루를 무사히 끝내는 생활도 저절로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초능력자가 된 석환이 다시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가는 모습에는 묘한 공감이 생깁니다. 다만 영화가 중간에서도 그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의 무게를 놓치지 않았다면 마지막 취업은 훨씬 세게 들어왔을 것 같습니다.
제가 《부활남: 더 레드》에서 오래 기억할 석환은 빨간 머리의 초인이 아닙니다. 면접에서 떨어지고도 다음 날 다시 움직였던 31세 취준생 쪽에 가깝습니다.
죽었다가 72시간 뒤 되살아나는 건 판타지입니다. 하지만 실패하고 다음 날 다시 지원서를 여는 일은 현실에서 많은 사람이 경험해 온 일이죠.
극장을 나오고 나서도 화려했던 액션보다 영화 초반의 석환이 먼저 생각났습니다. 영화가 그 평범한 부활을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면, 빨간 머리보다 석환이라는 사람을 훨씬 오래 기억했을 것 같습니다.
'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가능한 사랑, 달 사진은 보냈을까 (0) | 2026.09.30 |
|---|---|
| 끝장수사, 진범보다 서재혁이 남았다 (0) | 2026.09.28 |
| 《암살자들》 숫자부터 다시 세어봤다 (0) | 2026.09.25 |
| 타짜 벨제붑의 노래, 운이 만든 배신 (0) | 2026.09.24 |
| 82년생 김지영, 선의가 더 답답했던 순간 (0) | 2026.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