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휘날리며를 다시 본 뒤 가장 오래 남은 건 전투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외할머니 표정이었습니다. 지금 함께 살고 계신 외할머니는 6.25를 직접 겪으셨는데, 영화 속 피난 장면이 나올 때마다 평소와 다른 눈빛으로 TV를 바라보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이 영화가 단순한 전쟁영화가 아니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전쟁은 끝났는데 사람 몸은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일반적으로 전쟁영화는 전투 스펙터클이 핵심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태극기 휘날리며는 그 공식에서 벗어난 영화입니다. 제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장면은 탱크나 총격전이 아닙니다. 피난민들이 서로 밀치며 기차에 올라타는 장면, 밥 한 끼 없어서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병사들의 모습입니다. 어릴 때 외할머니는 종종 전쟁 이야기를..
1971년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흑인 학교와 백인 학교가 강제로 통합되면서 시작된 이야기인 리멤버 타이탄 은 단순한 스포츠 영화라기보다, 사람이 얼마나 쉽게 편을 가르고 또 얼마나 어렵게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경기 장면보다 제 학창 시절 운동장이 먼저 떠올랐습니다.편 가르기 웃고 떠들던 교실 안에도 보이지 않는 선은 있었다솔직히 저는 학창 시절 꽤 활발한 성격이었습니다. 친구도 많았고 반 분위기 띄우는 걸 좋아했습니다. 쉬는 시간만 되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장난쳤고, 체육 시간엔 누구보다 먼저 운동장으로 뛰어나갔습니다. 축구 한 판 시작되면 목이 쉬도록 소리 질렀고, 점심시간엔 친구들이랑 매점 빵 하나 두고도 시끄럽게 웃던 평범한 학..
영화 을 처음 봤을 때는 단순히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23년 외할머니 치매와 반려묘 바론이의 심장병을 동시에 겪고 난 뒤 다시 보니, 영화가 완전히 다르게 들어왔습니다. 그때부터는 샘의 표정 하나, 말투 하나까지 이상하게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양육권 박탈, 세상이 보는 “능력”의 기준지적장애를 가진 아버지가 딸의 양육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솔직히 그렇게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23년 외할머니의 치매 판정과 반려묘 바론이의 심장병을 겹쳐 버텨낸 뒤로, 이 영화가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를 끝까지 돌본다는 일이 얼마나 외롭고 지치는 일인지 직접 겪고 나서야 샘의 표정이 이해됐습니다.영화 속..
지금 만나러 갑니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냥 예쁜 멜로 영화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죽은 아내가 비 오는 계절에 돌아온다는 설정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고, 화면은 따뜻하고 감성적이어서 “잘 만든 로맨스 영화네” 정도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외할머니를 돌보며 살아가게 된 뒤 다시 보니, 이 영화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화면은 똑같았는데 제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사람은 결국 자기 현실만큼 영화를 이해하게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사랑|결국 사람은 곁에 있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간다영화 속 미오는 기억을 잃은 채 돌아옵니다. 하지만 타쿠미와 유지와 함께 밥 먹고 웃고 살아가며 다시 가족이 되어갑니다. 거창한 사건은 없습니다. 그냥 평범한 하루들이 이어질 뿐입니다. 그런데..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조용히 한숨부터 나오는 날이 있습니다. 누워 있고 싶지만 할머니부터 챙겨야 하고, 고양이 밥 주고 물 갈아주고 화장실 치우다 보면 어느새 밤이 늦어집니다. 가끔은 하루 동안 제 이름보다 “엄마”, “밥”, “약”, “고양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듣는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누굴 돌본다는 건 분명 따뜻한 일이지만, 동시에 자기 시간을 계속 잘라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날 우연히 리틀 포레스트를 다시 봤습니다. 예전엔 음식 예쁜 영화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전혀 달랐습니다. 이 영화는 밥 이야기가 아니라, 지쳐버린 사람이 다시 숨 쉬는 방법을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지침 — 누구를 돌보다 보면 정작 내 마음은 뒤로 밀려난다영화 속 혜원은 도시 생활에 지쳐 고향으로 ..
평점 8.93을 기록한 영화는 2007년 아일랜드에서 만들어진 저예산 뮤지컬 드라마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반신반의했습니다. 유명 배우도 없고, 화려한 장면도 거의 없는 영화가 왜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보고 나니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이 영화는 큰 사건보다 사람 안쪽 감정을 아주 현실적으로 건드리는 작품이었습니다.외로움, 사람은 결국 어디엔가 기대며 버팁니다영화의 주인공은 낮에는 청소기 수리공으로 일하고 밤에는 더블린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남자입니다. 거리 공연, 흔히 말하는 버스킹(busking) 형태인데 무대도 없이 길 위에서 노래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단순히 “음악 하는 청춘”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음악을 붙잡고 사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