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행복할 때 증명되는 감정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병원 냄새가 가득한 복도에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사랑이 언제 진짜가 되는지 오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더 초이스》를 보고 나서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설레는 감정이 정점일 때가 아니라, 상대가 가장 불편하고 아플 때 곁을 지키는 것. 그게 사랑이 책임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선택 — 트래비스가 포기하지 않은 이유혹시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으신가요. 로맨스 영화의 진짜 주제는 '누구를 선택하느냐'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저는 《더 초이스》를 처음 볼 때 당연히 삼각관계 이야기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보고 나니 전혀 달랐습니다.영화는 수의사 트래비스와 의대생 개비의 만남으로 시작됩니다. 두 사람은 첫 ..
외할머니 방문요양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제가 가장 먼저 배운 건 간병의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돌봄과 그냥 돌봄이 이렇게 달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을 보고 나서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전문 간병인이 아닌 뒷골목 청년이 전신마비 부호의 삶을 바꿔놓는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현실의 돌봄 현장에 던지는 질문이 꽤 묵직합니다.돌봄의 배경: 전문성과 태도 사이의 간극영화는 전신마비(tetraplegia) 상태의 부호 필립이 간병인을 면접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전신마비란 경추 손상 등으로 인해 목 아래 사지의 운동·감각 기능이 모두 소실된 상태를 말합니다. 지원자들은 나름의 자격과 경력을 내세우는데, 정작 채용되는 건 강도 혐의로 복역 후 출소..
예전에는 로맨스 영화를 보면 항상 '누가 누구와 이어질까'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마흔이 넘어서 다시 영화를 보기 시작하니, 사랑보다 사람의 불안이 먼저 보였습니다. 《I Capture the Castle》도 그랬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제가 오래 생각한 것은 로맨스가 아니라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그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성이나 드레스보다 사람들의 불안이 먼저 보였고, 그 감정이 이상하리만큼 제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자기기만: 로즈가 선택한 거짓말의 구조사람이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 중 가장 위험한 것은 '나는 현실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는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즈의 선택이 딱 그랬습니다.그녀는 가..
"나중에 하자."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언젠가는 가장 많이 후회하는 사람이 될지도 모릅니다.저도 그 말을 수도 없이 하며 살았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대화를 미루고, 손 한번 잡아드리는 일을 내일로 미뤘습니다. 그러다 영화 〈코튼테일〉을 보고 극장을 나오는데 이상하게 영화의 마지막 장면보다 내년이면 100세를 바라보시는 외할머니 얼굴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치매 진단을 받으신 외할머니를 어머니와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치매를 앓던 아내를 떠나보낸 켄자브로의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언젠가 제 가족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현실처럼 다가왔습니다.치매 간병이 가족 사이를 어떻게 바꾸는가켄자브로는 아내 아키코가 알츠하이머(Alzheimer's disease) 진단을 받은 이후..
"살면서 '그때 한 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하고 후회한 순간,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을 겁니다."영화 《컨트롤러(The Adjustment Bureau)》에서 데이빗 노리스는 선거 패배 당일, 화장실에서 낯선 여자를 만납니다. 그 짧은 만남 하나가 세상을 뒤흔드는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누군가 정해 놓은 계획이 어긋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러브스토리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건 사랑이 아니라, 내가 지금 정말 나의 선택으로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운명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쉬웠던 엇갈림들영화 속 조정국(Adjustment Bureau)은 신의 계획이 제대로 흘러가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조율하는 조직입니다..
외할머니가 응급실에 실려 가던 날, 저는 그날 아침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자에 앉아서야 떠올렸습니다. 《환상의 빛》은 바로 그 감각에 대한 영화입니다. 1995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미야모토 테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작품으로, 남편의 갑작스러운 자살 이후 살아남은 여자의 시간을 극도로 절제된 방식으로 담아냅니다. 설명 없는 죽음, 설명 없는 슬픔. 그 여백이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이유 없는 죽음이 남기는 것 — 상실의 구조솔직히 처음에는 이 영화가 불친절하다고 느꼈습니다. 주인공 유미코의 남편 이쿠오는 아이가 태어난 지 석 달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철로 위를 걷다 기차에 치여 죽습니다. 작품 속에서 유미코가 알고 있던 일상만 놓고 보면 이쿠오가 왜 그런 선택을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