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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를 떠나며, 한잔이 필요했던 이유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리모컨을 집지 못했습니다. 영화 속 벤이 슬펐던 것보다 퇴근 후 혼자 앉아 소주 한 병을 비우던 제 모습이 갑자기 다르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1995년 마이크 피기스가 연출하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삶을 포기한 듯 술에 매달리는 벤과 거리에서 살아가는 세라가 만나지만, 저는 두 사람의 관계보다 다른 질문 하나가 더 오래 남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면 어디까지 받아주는 것이 사랑일까요.소주 한 병보다 마음에 걸렸던 퇴근길제가 처음 이 영화를 본 건 꽤 어릴 때였습니다. 그때는 솔직히 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저렇게까지 술을 마시는지, 왜 조금이라도 살아보려고 하지 않는지 답답했습니다. 그냥 모든 것..

영화리뷰 2026. 8. 23. 10:25
사이드웨이, 잘 익는다는 것의 의미

와인병을 보면 맛을 알기도 전에 라벨부터 눈에 들어옵니다. 사람을 볼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몇 가지 보이는 조건만으로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사이드웨이》의 마일즈를 보면서 그 습관이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와인 한 잔은 향을 맡고 천천히 맛보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몇 번의 실패만으로 너무 빨리 점수를 매기는 사람.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와인보다 먼저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는 왜 사람에게는 와인 한 잔만큼의 시간도 주지 못하는 걸까.와인은 열어보면서 사람은 왜 미리 판단할까마일즈가 와인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꽤 까다롭습니다. 잔에 따르고, 향을 맡고, 천천히 맛을 확인합니다. 같은 품종이라고 모두 같은 맛이 나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

영화리뷰 2026. 8. 22. 09:18
언어의 정원, 나이 들어도 첫발은 무겁다

식당 문 앞까지 갔다가 혼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선 적이 있습니다. 배가 고픈데도 혼자 앉아 밥을 먹는 모습을 누가 쳐다볼까 신경 쓰였던 시절입니다. 혼자 영화를 보는 것도, 혼자 술을 마시는 것도 어색했습니다. 그때는 나이를 먹으면 이런 망설임쯤은 자연스럽게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니 사라진 자리에는 또 다른 망설임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언어의 정원》을 보면서 이상하게 그 생각이 났습니다.열다섯 살은 걷고, 스물일곱 살은 멈춰 있었습니다《언어의 정원》은 구두 만드는 일을 꿈꾸는 고등학생 타카오와 유키노가 비 오는 아침 정원에서 우연히 만나면서 시작합니다. 타카오는 비가 오는 오전이면 학교 대신 정원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유키노와 반복해서 마주칩니다.처음에는 비와 정원이 두 ..

영화리뷰 2026. 8. 21. 22:37
플로리다 프로젝트, 같은 공간 다른 출발선

디즈니월드 가까이에 있는 모텔촌에 여섯 살 무니가 살고 있습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고 제가 처음 느낀 것은 연민보다 묘한 거리감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인턴으로 사회에 발을 디뎠을 때 느꼈던 감각과 닮아 있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서 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같은 공간에 있다고 같은 출발선은 아니었다무니가 사는 매직 캐슬 모텔과 디즈니월드는 멀리 떨어진 두 세계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실제 영화도 디즈니월드 바깥의 저가 모텔에서 살아가는 무니와 엄마 핼리의 한여름을 따라갑니다.그런데 영화를 보는 동안 제게는 그 짧은 물리적 거리보다 두 공간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거리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누군가는 가족과 휴가를 보내기 위해 이곳을 찾아오고, 누군가는 하루 더..

영화리뷰 2026. 8. 21. 11:36
인 디 에어, 가벼운 삶은 정말 자유로울까

사회복무요원으로 동주민센터에 근무할 때, 저는 혼자 사는 어르신들 댁에 도시락을 배달하고 안부를 확인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그냥 일이었습니다. 정해진 집에 가서 도시락을 건네고, 별일 없는지 확인한 뒤 다음 집으로 이동하면 끝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인 디 에어(Up in the Air, 2009)》를 보고 나서 그 시간이 조금 다르게 떠올랐습니다. 관계를 무게로만 계산한다면 사람 없이 가벼워진 삶은 정말 자유로운 걸까. 라이언을 보면서 계속 이 질문이 남았습니다.배낭에서 사람까지 꺼내면 정말 편해질까《인 디 에어》의 주인공 라이언 빙엄(조지 클루니 분)은 기업을 대신해 해고 대상자에게 소식을 전달하는 일을 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말을 전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한 곳에 오래 머..

영화리뷰 2026. 8. 20. 22:20
맨체스터 바이 더 씨, 기억은 재개발되지 않았다

7~8년 만에 다시 찾아간 동네에서 사라진 골목을 찾다가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눈앞의 풍경은 달라졌는데 제 기억 속 풍경은 그대로였습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를 보면서 그때의 감각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이 영화에서 리를 괴롭히는 것은 과거의 사건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건을 계속 현재로 불러오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돌아왔을 때 기억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을까요.예고 없이 들어오는 과거가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졌다《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처음에는 과거 장면이 끼어드는 방식이 조금 낯설었습니다. 현재의 리를 따라가고 있는데 별다른 설명 없이 과거의 장면이 들어옵니다. '몇 년 전'이라는 자막으로 친절하게 구분해주지도 않습니다.영화를 따라가는 입장에서는 조금 불친절하게..

영화리뷰 2026. 8. 20.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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